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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진의 영어 돋보기] 블라인드 채용(blind recruitment)은 콩글리시?

입력
2018.01.10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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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문재인 정부가 집권 2년차를 맞았다. 문 대통령의 국정 철학(administrative philosophies)을 한 마디로 꼽자면 ‘사람이 먼저다(Putting humans first)’이다.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한 간담회에서는 ‘삶이 먼저다’라는 구호도 나왔다.

사람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기조는 기업의 채용 절차(the employment processes)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에 따른 결과(consequence)가 이른 바 블라인드 채용(blind recruitment)이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지원자(applicant)들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선입견(prejudice)을 가질 수 있는 정보나 차별적 요소를 배제하고(exclude) 직무 관련 능력(job-related abilities)과 전문성(expertise) 위주로 사람을 채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배경 하에 기업들은 입사 지원서에서 외모(looks), 학력(school education), 성별(gender), 신체 조건(physical condition), 출신 지역(home), 생년월일(birthday), 업무 경력(career experience) 등의 입력란을 삭제했다. 또 블라인드 채용을 확실히 하기 위해 새로운 전산 시스템까지 개발하는 기업들도 있다고 한다.

국내 언론 매체(local media)에서 용어 사용이 굳어진 이 표현이 원어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호주 출신의 영어 전문 에디터(editor)에게 물어 보니 한국의 기업들이 맹인(the blind)을 채용하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독특한 현상(unique phenomenon)을 의미하는 적확한 표현(accurate expression)이 아쉽게도 영어권에는 없다고 했다. unverified recruitment(검증되지 않은 채용)나 unchecked recruitment(확인되지 않은 채용) 등이 그나마 떠올릴 수 있는 표현이 아니겠느냐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blind recruitment는 원어민들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표현이다. blind recruitment는 Oxford Dictionary 등에 아직 등재되지 않았지만 콩글리시라고 단정하기에는 살짝 아쉬운 감이 있다. BBC 등 해외 언론에서는 원어민들에게 생소한 이 표현을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블라인드 채용의 이면에는 한국 사회의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 잡고, 이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학연과 지연, 출신 배경을 중시해 온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인식과의 과감한 작별을 시도해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겠다는(remove undue discrimination) 것이다.

외국 사례를 보면 영어권 국가의 기업들은 채용 과정에서 ‘개인(individual)’을 ‘개인’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채용 과정에서 사적인 의도(private intention)가 개입되는 것은 불법적인(illegal) 일이 되기 때문에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블라인드 채용’이 지원자들에게 균등한 기회(fair opportunity)와 공정성(fairness), 중립성(neutrality)을 보장해 바람직한 채용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지원자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microscopic scrutiny or microscopic verification)을 통해 채용 분야에서 꼭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제대로 발굴해 낼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안성진 코리아타임스 어학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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