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로힝야족 난민 캠프에 가다] “지옥 겨우 벗어났지만, 난민 캠프는 또 다른 지옥”

알림

[로힝야족 난민 캠프에 가다] “지옥 겨우 벗어났지만, 난민 캠프는 또 다른 지옥”

입력
2017.09.20 16:16
0 0

지난달 3만명 수용한 캠프

7만명 더 몰려 아수라장

아이들은 아무데서나 용변

오물ㆍ쓰레기로 길바닥 질척

의료시설엔 하루 수백명씩 몰려

위급 환자 치료받기도 어려워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난민을 위한 테크나프 나야파라 캠프의 커뮤니티 센터에서 새로 온 난민 어린이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다.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난민을 위한 테크나프 나야파라 캠프의 커뮤니티 센터에서 새로 온 난민 어린이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다.

미얀마 정부의 군사적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로힝야족 난민이 국도 1호선을 중심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지만 구호의 손길은 턱없이 부족하다. 구호품을 받기 위해 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여성과 아이들이 압사하는가 하면, 그 경쟁에 끼지 못하는 노약자들은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비극도 속출하고 있다. 유엔이 공식 지정한 테크나프 나야파라 난민 캠프의 총책임자 압둘로비(30)씨는 19일 “지금까지 45만명이 국경을 넘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난민들은 목숨을 근근이 붙이고 있으나 이곳도 지옥이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찾은 나야파라 난민 캠프는 숨이 막혔다. 지난달 25일 이전까지는 3만여명이 유엔으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비교적 평온하게 지냈다. 하지만 이후 7만명이 더 몰려 캠프는 아수라장이었다. 난민 커뮤니티센터는 신규 난민 수용소로 변했고, 학교 9곳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잠정 휴교에 들어갔다. 골목 구석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난민도 여럿 눈에 띄었다. 7개 구역 중 D구역을 책임지고 있는 노르 코빗(34)씨는 “난민 커뮤니티 센터 700명, 각 학교에 300명 가량씩 수용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며 “인근 가정에서도 새로 온 난민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커뮤니티 센터는 어린이, 임신부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캠프를 찾은 당시에도 방글라데시에 막 도착한 난민들이 밀려 들어 왔고, 난민 신분을 받으려 유엔사무소 앞에는 줄이 길게 이어졌다. 통역은 맡은 한 현지인은 “등록이라도 해야 먹을 것이라도 조금 얻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방글라데시 테크나프 내 로힝야족을 위한 유엔의 공식 난민캠프 중 하나인 나야파라캠프에서 19일 난민들이 배수 시설이 없어 각종 오물로 범벅이 된 길을 지나가고 있다.
방글라데시 테크나프 내 로힝야족을 위한 유엔의 공식 난민캠프 중 하나인 나야파라캠프에서 19일 난민들이 배수 시설이 없어 각종 오물로 범벅이 된 길을 지나가고 있다.

캠프가 한달 새 10만명을 관리하는 거대 수용소로 돌변하자 곳곳에서 ‘목불인견’의 참상도 연출됐다. 비까지 내리는 날씨였다. 아이들은 아무데서나 소변을 봤고, 길바닥은 오물과 쓰레기, 동물 배설물이 섞여 질척였다. 발가벗은 아이들은 닭, 개와 같이 뛰어 다녔다. 또 식수원으로 쓴다는 작은 연못 주변은 소 배설물로 넘쳐 흘렀다. 죽통을 끓이는 장소는 다름 아닌 화장실 옆이었다. 난민들은 유난히 머리와 사타구니를 계속 긁적였다. 압둘로비씨는 “그나마 여기는 비상 정수 시스템이 설치돼 물을 먹을 수 있고, 적지만 식량도 공급된다. 적어도 식량을 구하다 압사할 일은 없다. 밖에서 떠도는 것 보다 훨씬 낫다”고 설명했다. 근처에서 5명이 식량을 받으려다 압사해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였다.

공식 난민 캠프 바깥은 차라리 지옥이다. 콕스 바자르와 테크나프를 잇는 국도 1호선 천막에서 만난 수럿 알롬(32)씨는 자리를 잡은 지 열흘이 지났지만 구호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지나가는 자동차에서 던져주거나 식량보급 차량에서 쟁취한 음식으로 연명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날 현지 신문에는 어른 허리높이만큼 땅을 판 뒤 고인 물을 긷는 난민 여성의 사진이 1면을 장식했다. 지옥을 벗어나도 또 다른 거대한 지옥이 입을 벌리고 있다.

몸을 겨우 누일 텐트 하나를 짓는 데도 도움을 기대하기 힘들다. 알롬씨는 “비닐 천막과 대나무 모두 난민들이 스스로 구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텐트 100곳에 지내고 있는 약 1,000명의 난민 명단을 만들어 세계식량계획(WFP)에 제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 들어온 난민들은 보통 3,000타카(4만2,000원) 정도를 들여 텐트를 지었다. 텐트가 차지하는 땅 면적에 따라 월 500~1,000타카(약 7,000~1만4,000원)씩 내기로 했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 탓에 난민 캠프 근처 의료시설로 실려오는 환자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쿠투팔롱 캠프 근처 한 국제구호단체가 운영하는 영양센터의 모하메드(38)씨는 “하루 수백명이 몰려 오지만 영양제를 주는 일 외에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증언했다. 그는 “센터에 근무하는 간호사 4명이 과로사하기 직전”이라면서 “빠른 시일 안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로힝야족 난민들의 참상을 연일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현지 신문. 식수가 제때 공급이 안돼 땅을 판 뒤 고인 물을 긷는 장면이 실렸다.
로힝야족 난민들의 참상을 연일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현지 신문. 식수가 제때 공급이 안돼 땅을 판 뒤 고인 물을 긷는 장면이 실렸다.

인근 국경없는의사회(MSF)가 운영하는 정신병원과 부상자 치료 병원도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나 이미 환자가 넘쳐 입장은 하늘의 별 따기다. 병든 오빠와 병원 앞에서 서성이던 하시나(50)씨는 “겨우 병원까지 왔는데 그냥 (오빠를) 보내줘야 할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오빠는 끼니를 먹지 못해 전날부터 숨을 제대로 못 쉬었다고 했다.

방글라데시 정부에서 파견된 나야파라 캠프 보안 책임자 하룬(45)씨는 “우리 정부와 국민의 힘으로는 난민들을 모두 보살필 수가 없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인도적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국제분쟁 전문가 이유경씨는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은 미얀마에서 로힝야 탄압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며 “무엇보다 로힝야족에 대한 군사작전을 멈추게 할 국제적 압박이 시급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테크나프(방글라데시)=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