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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널뛰는 전력정책

입력
2015.05.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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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온이 슬슬 올라가면서 더워지고 있다. 일부 점포나 식당, 사무실들은 벌써부터 에어컨을 틀어 놓는 곳도 있다.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고 있노라면 2011년 9월15일 발생한 순환정전 사태가 생각난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전국적으로 정전 위기가 발생하자 정부는 지역별로 돌아가며 단전을 실시했다. 전쟁상황도 아니고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느닷없이 전기가 끊기는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사람들로서는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정부가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전력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전력설비예비율을 높이기 위해 기업들에게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소를 지으라고 유도했다. LNG 발전소는 소규모 건설이 가능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지을 수 있다. 대신 외국에서 들여온 천연가스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원자력이나 화력, 수력발전소보다 연료비가 많이 든다.

어쨌든 전기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정부의 독려에 다수의 대기업이 여러 기의 LNG 발전소를 건설했다. 그런데 요즘 LNG 발전소의 가동률은 40%대까지 떨어졌다. 발전소가 늘어나며 전력 공급도 증가하다보니 전기가 남아도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011년 순환정전 사태 당시 4%대였던 전력설비예비율은 올해 20%대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당장 필요한 전력 수요를 채우고도 20% 가량 전기가 남아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에서는 원료비가 낮은 순으로 발전소에서 전기를 공급받는다. 수력 원자력 화력 등 비교적 연료비가 싼 발전소에서 우선 전기를 공급받고 연료비가 비싼 LNG 발전소는 뒤로 밀리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국내에 전기를 공급하는 한국전력이 LNG 발전소에서 전기를 사와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가 남아도는 상황에서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한전이 LNG 발전소의 전기를 사 올 이유가 없다. 사오더라도 되도록 싼 값에 사오려 하다 보니 여간해서 가격을 올려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한전이 LNG발전소에서 전기를 사오는 도매 가격은 1㎾/h 당 2012년 160원에서 이달 90원대로 떨어졌다.

그러자 정부의 재촉을 받고 LNG 발전소를 건설한 기업들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LNG 발전소 가동률이 40%로 떨어지면서 해당 기업들은 발전소로 돈을 벌기는커녕 건설비 조차 회수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LNG 발전소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한전이 전기를 구입하는 가격이라도 올려줘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정부나 한전에서는 선뜻 이에 응하지 못하고 있다. 원가가 오르면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 없이 살아가기 힘든 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한 가지, 정부의 근시안적인 전력수급대책에 있다. 멀리 보지 못하고 당장 코 앞의 상황만 생각하다 보니 수십 조의 돈을 들여 발전소를 세워 놓고 놀리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달 정부에서 발표하는 제 7 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눈 여겨 봐야 한다. 많은 국민들이 정부에서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생각에 맡겨 놨더니, 결과적으로 알아서 잘 하지 못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한동안 모자라서 제한 송전 운운하던 전력이 이제 남아도는 상황이 됐다. 그렇다고 전기료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직도 한전 등에서는 국내 전기료가 너무 싸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 7 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기간인 2015년~2029년까지 약 40기의 원자력 및 화력발전소가 새로 들어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중장기적 전력 수요 예측은 제대로 된 상황에서 들어서는 것인 지 궁금하다. 가동률이 뚝 떨어진 LNG 발전소를 보면 이런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력은 남아 돈다고 물건 싸듯 포장해서 수출을 할 수도 없다. 사용하든 버리든 국내에서 모두 소진해야 한다. 제 7 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이런 점들이 반영돼, 그 비용이 결국 국민들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연진 산업부장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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