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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는 독한 여자? 아니, 딱 여성들이 겪는 현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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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는 독한 여자? 아니, 딱 여성들이 겪는 현실이야

입력
2018.03.01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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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티’ 주인공 고혜란

임신도 어머니 임종도 포기하고

“독하면 남자들이 싫어해” 등

성공 비꼬는 성희롱 발언에도

견고한 유리천장 깨려 발버둥

배우 김남주는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JBC 방송사의 ‘뉴스나인’ 앵커 고혜란을 연기한다. JTBC 제공
배우 김남주는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JBC 방송사의 ‘뉴스나인’ 앵커 고혜란을 연기한다. JTBC 제공

“고혜란을 응원합니다!”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의 홈페이지에는 커리어우먼 고혜란(김남주)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스티’는 살인과 불륜을 버무린 ‘막장’ 코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JBC 방송사 앵커 고혜란의 ‘직장생활 분투기’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며 예상 밖 호응을 얻고 있다. 7년간 대한민국 최고의 앵커로 군림한 고혜란이 과연 견고한 유리천장을 깨고 성공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는 여성시청자들이 많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4일 방송된 ‘미스티’(8회)는 7.1%(유료 플랫폼 기준)를 기록했다. 40대 여성이 5.9%, 60대 5.3%, 50대와 30대가 4%를 각각 나타내며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내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는 공감과 “고혜란의 분투를 이해한다”는 지지가 교차하며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다.

강요되는 희생, “과장 아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11년 동안 대형 유통업체에서 일하다 사직한 박선영(40)씨는 고혜란이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임신한 아이를 지웠다는 장면에서 그만 울고 말았다. 자신의 처지와 너무 비슷해서다. 셋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휴직했던 박씨는 그 해 승진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는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만약 임신하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고 했다. 아이를 출산하고도 계속 회사를 다닐 수 없었다. 두 아이를 봐주던 시어머니에게 “더 이상 짐을 지워줄 수 없어 사표를 냈다.”

‘미스티’ 속 주변환경도 잔인할 정도로 고혜란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고혜란은 일을 위해 아이를 포기하는 것도 모자라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다. 7년간 최고의 자리를 고수한 그녀를 끌어내리려는 무리에 맞서기 위해 골프선수 케빈 리(고준)를 섭외하기 위해서였다. 요양원으로부터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지만, 결국 케빈 리가 도착한 인천국제공항으로 차를 돌린다. 단순한 드라마적 설정이라고 단언하기엔 현실성이 강하다. 일하는 여성 대부분은 “과장이 아니”라고 말한다.

출판업계에서 13년간 일한 한세영(38)씨도 고혜란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아이들 생일 등 집안 행사를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는 현실을 떠올리면 ‘미스티’를 허구로만 볼 수 없다. 한씨는 “여전히 모성애를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구조에 상처를 입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기업 홍보대행사 부장 차현미(44)씨는 결혼 8년 동안 단 한번도 시댁 제사를 빼먹은 적이 없다. 제사 때 갑작스러운 일이라도 생길까 봐 전전긍긍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연차휴가까지 내서 제사에 필참”하며 “며느리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차씨는 “같은 직장생활을 하는 남자들이 부성애나 사위 역할을 강요당해 힘들다고 토로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혜란(김남주ㆍ오른쪽)은 7년 동안 최고의 앵커로 군림하지만 이를 견제하는 장규석(이경영) 보도국 국장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JTBC 제공
고혜란(김남주ㆍ오른쪽)은 7년 동안 최고의 앵커로 군림하지만 이를 견제하는 장규석(이경영) 보도국 국장과 사사건건 부딪힌다. JTBC 제공

‘미투’ 할 수 없는 권력ㆍ위계사회에 울기도

“그런 걸로 유명했지. ‘쌔끈’하게 주고.” 방송국 보도국 편집실에서 고혜란을 마주한 한 스포츠국 기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성희롱 발언을 한다. 최고의 앵커로 군림하는 고혜란에 대한 시기와 견제가 성적 수치심으로 이어졌다. 고혜란은 곧바로 “실력으로 주고, 인정받고”라고 받아치는 기지를 발휘한다. ‘미스티’에는 유독 여성의 성공을 비꼬는 시선이 많다. “독하면 남자들이 싫어한다” “그 나이에도 꿋꿋하게 버틴다” “아주 발악을 한다” 등 고혜란에게 대놓고 모욕감을 준다. 경력 9년이 된 한 방송사 기자는 “사내 성희롱 등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우선적으로 조언을 구할 만한 여자 선배가 없다”고 말했다. ‘미스티’ 속 방송국의 묘사가 상당히 사실적이라는 것이다. 방송기자연합회(2016년 기준)에 따르면 간부나 임원이 될 수 있는 21년 차 이상에서 여성 방송기자의 수는 5% 내외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직급이 낮을수록 여성 기자의 비율은 높은 편이다. 1~5년 차는 39%, 6~10년 차는 35%, 11~15년 차는 27% 정도다.

고혜란이 한 기업의 비리를 은폐하려는 보도국 국장 장규석(이경영)에게 “내가 왜 자꾸 위로 올라가려는지 아느냐”, “위에선 여자라고 막고”라며 핏대를 세우는 것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발버둥이다. 방송업계에서 7년째 일하는 나현정(35)씨는 “육아부터 술 문화까지 여자들이 위로 못 올라가게 만드는 구조들이 사회 도처에 너무 촘촘하다”고 방송에 공감을 표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김남주를 통해 커리어우먼이 여성으로서의 한계 등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카타르시스를 주는 대목”이라며 “결국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의 구현이 현 시대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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