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육아 분투기] ‘순실한’ 자식사랑

입력
2016.12.01 20:00
0 0

덩치는 컸지만 용기가 부족했던 나를 학교에 보내놓고 어머니는 걱정이 많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자주 학교에 오셔서 담임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때문인지 나는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늘 교실 앞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학교에 자주 오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어머니가 선생님들에게 촌지를 갖다 주고, 음식 대접을 하는 것이 못마땅하셨던 아버지가 이혼까지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 일로 자주 다투면서도 학교를 오가셨고, 부모님 사이에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던 나는 선생님들에게 주목받으며, 자주 반장도 하고, 여러 대회에 나가면 상도 꽤 받는 등 의기양양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나를 군대에 보내놓고도 어머니는 내가 걱정스러우셨던 것 같다. 병역을 면제받게 하거나 공익 요원으로 만들어 줄 힘까지는 없었던 어머니는 인맥을 총동원해 내가 군 생활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도록 도와주고 싶어 하셨다. 그 때문일까. 나는 비교적 좋은 특기를 받았고, 고향 집과 가까운 부대에 배속되었다. 물론 나 자신은 내가 특기 시험과 부대 배속 시험을 잘 치른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어머니는 자주 군에 지인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시곤 했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게 주어진 몫보다 더 많은 몫을 자식에게 주려고 하셨다. 촌지를 이용하고, 지인을 동원해서 아들이 손해 보지 않도록, 아니 기왕이면 아들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더 많은 특권을 얻게 하고자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셨다. 어머니는 물론 나 역시 그것을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순실한 마음으로’ 생각해 오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내 어머니의 순실한 마음은 아버지 어머니 잃고 힘들 때 함께 있어 준 사람이라고 국정까지 좌지우지하게 하고, 내 아이의 친구 아버지가 하는 사업체라는 이유로 대기업과 거래할 수 있도록 일감을 몰아주는 것과 어떤 차이가 나는 것일까.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정의라면, 특권은 각자가 얻어야 할 몫 이상의 몫을 자신의 지위와 권한, 누군가와의 관계를 이용해 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정치인이라면, 내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내게 자동차 할부 이자를 0.3%포인트 깎아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을 것인가. 내게 그럴 용기가 없었다는 것은 나 역시 최순실, 정유라, 차은택과 아는 사이였다면 내 몫보다 더 많은 몫을 주겠다는 제안을 내 몫으로 생각하고 수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만일 내가 대통령과 아는 사이였다면 “대통령과 내가 아는 사이라니 근사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의 극성을 싫어하셨지만,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하는 지인의 명함 한 장을 십여 년간 지갑의 중앙에 끼워 두셨다. 아버지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주겠다고 하셨고 걱정하지 말라며 언제나 그 명함을 보여주셨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내 몫이 아닌 우리의 것’을 친분과 돈을 이용해 전용하거나 이용할 수 있다는 믿음만큼은 공유하고 계셨다.

국공립유치원ㆍ어린이집에 ‘추첨’ 되기가 ‘당첨’보다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소아과에서 진료를 기다리며 불편한 병원 의자에서 잠을 자는 아이를 보며, 나도 ‘아는 사람’ 한 명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아이를 불편하게 만들려는 의도라기보다는 내 아이가 더 좋은 교육을 받고 편안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 내 자식에 대한 ‘사랑의 이름으로’ 정당화한 특권을 꿈꾸고 있었다.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의 순실한 마음을 나도 모르게 배우고, 그것을 내 아이에게 가르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만의 일이 아니다. 정의를 넘어선 사랑이, 내 아이는 손해 보지 않게, 다른 아이보다는 조금 더 많은 것을 누리도록 해주려는 그 사랑이 육아하는 우리 모두를, 자식을 키우는 우리 모두의 육아를 조금씩, 때때로는 너무도 힘들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권영민 철학연구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