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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유럽선수 끌어오고 명문팀 인수까지.. 中 축구굴기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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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유럽선수 끌어오고 명문팀 인수까지.. 中 축구굴기 일어선다

입력
2016.05.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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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이적시장 규모 3485억원

세계 최고 영국 리그보다 많이 써

AC밀란, 인터밀란 지분투자 눈앞

시진핑 취임 첫해 태국전 참패에

“결과 인정 못해” 패인 분석 지시

국가 차원의 축구 발전계획 세워

미국 등 누르고 존재감 과시 속셈

그림 12012년 2월 아일랜드를 방문한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 축구장을 찾아 시축하고 있다. 신경보
그림 12012년 2월 아일랜드를 방문한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 축구장을 찾아 시축하고 있다. 신경보

“이제 유럽에서 가장 콧대 높은 도시 밀라노를 우리가 접수한다.”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웨이보(微博)에 최근 한 중국 네티즌이 두오모 대성당 사진과 함께 올린 이 글에 4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하나같이 중국 축구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었다. 중국 대기업들이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 중 하나로 꼽히는 이탈리아 세리에A의 AC밀란에 이어 인터밀란 인수까지 추진한다는 소식이 중국 축구팬들을 흥분시킨 것이다.

세계 축구계를 휩쓰는 ‘황사머니’

지난 1월 세계 축구시장에는 중국발 ‘황사머니’가 몰아쳤다. 중국 슈퍼리그(1부리그) 16개 팀이 겨울 이적시장에 쏟아부은 돈이 무려 2억5,890만유로(약 3,485억원)로 지난해에 비해 2.7배 이상 늘어났다.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로 꼽히는 영국 프리미어리그(EPL)의 2억4,730만유로(약 3,312억원)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프리미어리그와 함께 유럽 축구를 호령하는 분데스리가(독일)ㆍ세리에A(이탈리아)ㆍ프리메라리가(스페인) 등 3개 리그가 쓴 돈을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액수다.

슈퍼리그 구단들이 쓴 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더욱 놀랍다. 16개 구단이 총 118명을 영입하는 데 쓴 평균액수는 1,618만유로(약 220억원)나 된다. 이 자체만 해도 한국 K리그 구단들의 연간 평균 운영비(188억원)를 훌쩍 넘는다.

특히 3,4년 전만 해도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에 연연했지만 지금은 유럽 명문구단에서 한창 활약하는 ‘싱싱한’ 선수들을 경쟁적으로 끌어오고 있다. 실제 올해 슈퍼리그로 승격한 허베이 화샤 싱푸가 AS로마(세리에A)에서 제르비뉴를 데려오는 데 1,800만유로(약 237억원)를 쓰자 장쑤 쑤닝은 첼시(EPL)의 미드필더 하미레스를 2,500만유로(약 430억원)에 영입했다. 그러자 지난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팀 광저우 헝다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프리메라리가)의 잭슨 마르티네즈를 위해 4,200만유로(약 563억원)를 지불했다.

이에 자극받은 장쑤 쑤닝은 리버풀(EPL)과 협상중이던 알렉스 테세이라를 무려 5,000만유로(약 667억원)에 낚아챘다. 역대 아시아클럽의 이적료로는 최고 액수다. 장쑤 쑤닝은 심지어 첼시의 오스카를 영입하기 위해 7,500만유로(약 1,020억원)을 제시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세계 축구의 권력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던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의 평가가 현실이 된 셈이다.

개별 선수뿐 아니라 아예 명문클럽을 직접 사냥하기도 한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그룹은 4억유로(약 5,189억원)를 들여?AC밀란의 지분 70% 인수를 추진중이다. 나머지 지분도 1년 안에 모두 매입할 방침이다. 오는 11월에는 가전유통업체인 쑤닝이 인터밀란 지분 20∼30%를 8,000만유로(약 1,378억원)에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문구단 2개를 모두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중국 최대 부동산기업인 완다그룹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구단의 지분 20%를 사들인 데 이어 월드컵 축구 중계권 독점 판매업체인 인프런트의 주식 68.2%도 인수했다.

‘球迷’ 시진핑의 大國 전략

중국이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집권 시점과 대체로 일치한다. ‘추미’(球迷ㆍ축구광)를 자처하는 시 주석은 2011년 부주석 시절 월드컵 출전ㆍ개최ㆍ우승을 자신의 소원으로 언급했을 만큼 축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주석 취임 첫 해인 2013년 홈경기에서 태국에 1-4로 패한 ‘6ㆍ13 참사’를 현장에서 지켜본 뒤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패인 분석을 직접 지시했고, 이후 축구를 국가스포츠로 격상시킨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 11일 중국 정부는 2050년까지의 장기 비전을 담은 ‘축구 중장기 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축구협회ㆍ체육총국ㆍ교육부 등이 함께 참여한 이 계획의 실질적인 주도 기관은 경제ㆍ사회발전 계획을 총괄 기획ㆍ조정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였다. 그만큼 중국 정부가 무게를 두고 시행하려는 계획인 셈이다.

2014년 스포츠산업 촉진 방안, 지난해 2월 축구 개혁ㆍ발전 총체 방안에 이어 세 번째 나온 이번 계획에는 2020년까지 축구선수 5,000만명 육성, 2030년까지 아시아 축구 제패, 2050년까지 세계 제패 등 시기별 목표가 제시됐다. 여기에는 학교 축구 강화와 각종 인프라 구축, 축구협회 개혁, 국가 축구 훈련기지 신설 등이 총망라됐고, 교육ㆍ산어ㆍ문화ㆍ사회정책이 두루 포함됐다. 이들 계획의 실무를 맡은 류옌둥(劉延東) 부총리 중심의 축구개혁영도소조에는 올해 40억위안(약 7,120억원)의 특별예산이 배정됐다.

사실 중국은 국제무대에서 세계 최강국 미국을 위협하는 유일한 존재로 평가받는다. 외교ㆍ국방ㆍ산업통상 등은 물론이고 웬만한 스포츠 종목에서도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축구에서만큼은 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잦다. 지난 1월에만 해도 카타르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에서 23세 이하 대표팀이 본선행에 실패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도 탈락이 기정사실화했지만, 북한의 예상 못한 역전패 덕분에 겨우 최종예선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이 지향하는 ‘축구굴기’(蹴球堀岐ㆍ축구로 우뚝 일어섬)가 ‘중화 대국주의’와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스포츠인 축구에서 미국을 누르고 월드컵을 유치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중국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현실적인 기회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중국 지도부 입장에선 축구 진흥책이 한 자녀 정책에 따른 유약한 심성과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도 크다.

新정경유착 논란… 정치색채도 뚜렷

중국 축구가 최고 지도부의 육성 의지와 거대자본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외형상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엄존한다. 무엇보다 대기업들의 투자 목적이 지극히 정치적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 주석 체제에서 기업들의 투자 규모가 획기적으로 늘어난 게 우연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실제 시 주석의 축구굴기 의지에 가장 먼저 화답해 광저우 헝다에 매년 1,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온 쉬자인(許家印) 헝다그룹 회장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공위원에 발탁됐다. 그가 광둥(廣東)성 일대의 생수사업권을 따내 투자한 자본을 이미 보상받았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헝다그룹의 성공 이후 다른 재벌그룹들도 경쟁적으로 축구에 뛰어들었다. 특히 슈퍼리그 구단의 모기업에는 건설ㆍ부동산그룹이 유독 많다. 정치권의 의중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좌우될 가능성이 큰 분야다. 또 다른 정경유착의 고리가 될 공산이 큰 셈이다.

재계에서 마윈(馬云) 알리바바그룹 회장이 “시 주석의 눈 밖에 났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던 2014년 마 회장은 광저우 헝다의 지분 50%를 매입했다. 올 초에도 중국 공상총국이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가 각종 불법 거래와 온라인 검색어 순위 조작 등을 방조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황에서 마 회장 측의 AC밀란 인수설이 흘러나왔다.

중국 축구계에선 쉬밍(徐明) 다롄그룹 회장이 보시라이(薄熙來) 파문에 휩쓸리면서 자국 리그 최다우승팀이었던 다롄 스더가 공중분해된 일이 있었다. 중국 지도부가 중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자원을 배분함으로써 축구굴기를 현실화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중국에서의 축구가 매력적인 사업도구이자 정치적 산물에 가깝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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