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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노닐던 절경…단풍 들면 진짜 적벽(赤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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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노닐던 절경…단풍 들면 진짜 적벽(赤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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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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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적벽의 평화로운 풍경. 동복댐 건설 이후 광주광역시 상수원으로 통제됐다가 2014년부터 제한적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화순=최흥수기자
화순적벽의 평화로운 풍경. 동복댐 건설 이후 광주광역시 상수원으로 통제됐다가 2014년부터 제한적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화순=최흥수기자

산 높은 화순엔 잔잔한 물이 빚은 평화로운 풍경이 유난히 많다. 그 중에서도 화순적벽이 대표적이다. 화순적벽은 동복천이 옹성산 자락을 휘감아 돌며 형성된 바위절벽 경관으로 물염, 창랑, 보산, 장항적벽(노루목적벽)을 통틀어 이르는데, 경관이 가장 빼어난 노루목적벽을 따로 화순적벽으로도 부른다.

‘붉은 벽’을 뜻하는 적벽(赤壁)은 소동파의 적벽부에 등장하는 중국 양쯔강에 있지만 충남 금산, 전북 부안 등 국내에도 여러 곳에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높이 90미터, 폭 200미터에 이르는 화순적벽은 규모와 풍광에서 단연 으뜸이다. 1519년 기묘사화 후 화순으로 유배됐던 신재 최산두가 이 절경을 적벽이라 명명한 것을 시작으로,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등 무수한 시인 묵객들이 칭송한 명승지이다.

다산 정약용도 빠지지 않는다. ‘해맑은 가을 모래 오솔길이 뻗었는데/ 동문의 푸른 산은 구름이 피어날 듯/ 새벽녘 시냇물엔 연지 빛이 잠기었고/ 깨끗한 돌 벼랑은 비단무늬 흔들린다.’ 화순현감으로 부임한 아버지 정재원을 따라왔던 16세 다산이 지은 '적벽강 정자에서 노닐며'의 한 대목이다. 이곳에서 생을 마친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의 여러 작품도 동복천과 옹성산의 조화로움을 노래한 것으로 화순군은 추측하고 있다. 1863년 사망한 그의 초분(草墳)이 동복면 구암리 마을 뒷산에 남아 있고, 근래에는 물염정 앞에 그의 석상과 시비를 세웠다.

수몰마을 주민들의 망향정 뒤로 웅장한 바위 절벽.
수몰마을 주민들의 망향정 뒤로 웅장한 바위 절벽.
망향정 아래 망미정으로 내려서면 화순적벽이 더욱 가깝다.
망향정 아래 망미정으로 내려서면 화순적벽이 더욱 가깝다.
옹성산과 화순적벽, 동복댐 호수가 조화롭다.
옹성산과 화순적벽, 동복댐 호수가 조화롭다.
망향정에서 본 화순적벽과 옹성산.
망향정에서 본 화순적벽과 옹성산.

풍광 좋은 노루목적벽에서 뱃놀이는 기본이고, 조선 중기부터 ‘적벽낙화놀이’를 즐긴 기록도 남아 있다. 매년 사월초파일 서너 명의 장정들이 적벽 위로 올라 밤이 되면 마른 풀에 돌을 넣고 불을 붙여 아래로 던지는 형식의 불꽃놀이다. 애초 불교 행사로 시작해 나중에는 벼슬아치들이 시기에 상관없이 즐겼다니, 낙화놀이의 장관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근대에 이르면 화순적벽은 지역 주민들의 여름철 피서지이자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로 이용됐다.

1985년 동복댐 완공 이후 지금은 적벽의 약 70%만 잔잔한 수면 위로 드러나 있다. 물에 잠긴 것은 적벽만이 아니다. 인근 15개 마을과 물굽이 안쪽으로 형성된 농지도 함께 수몰됐다. 멱감고 물고기 잡던 추억과 풍류도 함께 사라진 셈이다. 더구나 광주광역시의 식수원으로 지정되면서 30년간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다가 지난 2014년에야 제한적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불가능하고, 화순군에서 운영하는 ‘적벽투어버스’를 이용해야 갈 수 있다. 투어버스는 매주 수ㆍ토ㆍ일요일 하루 두 차례 운행하며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인터넷 예약이 필수고 이용료는 1만원.

평상시 철문으로 통제하고 있는 이서면 적벽 입구를 통과하면 차는 구불구불 산길과 호수길을 돌아 약 20분만에 전망대에 닿는다. 보산적벽 위 망향정 뒤편으로 화순적벽과 옹성산의 자태가 웅장하고 조화롭다. 망향정은 수몰마을 주민들이 고향을 기리는 장소로 적벽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지다. 정자 아래로 쪽빛 호수가 반짝이고 그 너머로 가물가물하게 ‘적벽동천’이라고 쓰인 바위 절벽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바로 아래 망미정(望美亭)으로 내려가면 적벽이 한층 더 가깝다. 수몰지역에서 옮겨온 정자와 오래된 배롱나무의 붉은 꽃잎 사이로 보이는 적벽에는 아련한 옛 풍경이 묻어난다. 절벽 주변이 붉게 물드는 가을이면 화순적벽의 풍광도 절정으로 치닫는다.

보는 것만으로 편안해지는 화순의 풍경들

때로는 잔잔한 풍경 하나만으로도 푸근해질 때가 있다. 세량지와 환산정이 그런 곳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숱하게 본 사진이 풍경의 전부인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맑아지고 치유된다. 대신 이렇다 할 즐길거리가 없어 큰 기대를 품고 가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해가 뜰 무렵의 세량지 풍경.
해가 뜰 무렵의 세량지 풍경.

세량지는 소룡봉 산자락에 축조한 작은 저수지다. 규모는 경북 청송의 주산지에 미치지 못한다. 물속에 뿌리내린 거대한 버드나무가 뿜는 압도적 기운도 없다. 대신 세량지 물가에는 산벚나무와 편백, 버드나무가 골고루 자라고 있다. 이른 아침 수면에서 피어 오르는 안개와 그 사이를 파고드는 햇살의 조화가 압권이다. 산벚꽃이 피어나는 봄을 최고로 치지만, 울긋불긋 단풍이 수면에 떨어지는 가을 풍경도 못지않다.

환산정에서 본 평화로운 가을 풍경.
환산정에서 본 평화로운 가을 풍경.
환산정을 중심으로 한 주변산세가 서성저수지에 비쳐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환산정을 중심으로 한 주변산세가 서성저수지에 비쳐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동면의 환산정(環山亭)은 이름처럼 아늑한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지형의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정자다. 1637년 류함(柳涵)이 지었고 2010년 복원했다. 정자 앞 실개천은 저수지(서성지)로 변해 지금의 환산정은 물과 산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변모했다. 주변으로는 별장이 들어서서 사뭇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정자에서 보는 모습도 편안하지만, 맞은편 별장에서 보면 환산정을 감싼 부드러운 산세까지 수면에 비쳐 위아래가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별장은 사유지여서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점이 아쉽다.

화순의 블랙푸드 다슬기와 흑염소

다슬기는 깨끗한 물에 자라는 연체동물로 충청과 강원 등지에서는 ‘올갱이’라 부른다. 화순에선 동복천, 화순천, 지석천 등지에서 다슬기를 잡는데, 특히 모후산과 천봉산에서 내려온 물이 만나는 남면 사평리 인근에서 많이 난다. 사평에서 화순읍으로 자리를 옮긴 ‘사평다슬기수제비’ 식당은 20년 넘게 다슬기 요리로 명성을 쌓아 온 지역 맛집이다. 탕, 전, 비빔밥도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다슬기 수제비다. 파르스름한 국물의 시원 쌉쌀한 맛과 수제비의 쫄깃함이 잘 어우러진다.

화순의 맛, 다슬기 수제비
화순의 맛, 다슬기 수제비
다슬기 비빔밥.
다슬기 비빔밥.
다슬기 전.
다슬기 전.
부추를 푸짐하게 얹은 흑염소 수육.
부추를 푸짐하게 얹은 흑염소 수육.

흑염소 요리도 지역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화순읍의 약산흑염소, 외갓집, 도곡면의 하늘농원 등이 흑염소 요리로 이름난 식당이다. 탕도 좋지만 부추를 듬뿍 얹어서 나오는 흑염소 수육이 일품이다. 염소 고기 특유의 노린내가 없고 담백하다. 건강과 힐링 여행지 화순은 요즘 백신산업특구라는 점을 내세운다. 21일부터 이틀간 하니움문화스포츠센터에서 제2회 화순국제백신포럼이 열린다.

화순=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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