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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참사] “시커먼 연기 너무 짙어... 살려달란 소리에 사다리 버킷 갖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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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참사] “시커먼 연기 너무 짙어... 살려달란 소리에 사다리 버킷 갖다 대”

입력
2017.12.22 16:4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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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남성 사우나 이발사

연기 마셔가며 비상계단 안내

70대 할아버지ㆍ10대 손자와 함께

여성들 창문으로 대피 도와

[한국일보 자료사진] 충북 제천시 한 스포츠센터에서 21일 일어난 대형화재 현장에 고소작업차를 직접 몰고 와 시민을 구한 이양섭(오른쪽)·기현씨 부자. 이기현씨 제공
[한국일보 자료사진] 충북 제천시 한 스포츠센터에서 21일 일어난 대형화재 현장에 고소작업차를 직접 몰고 와 시민을 구한 이양섭(오른쪽)·기현씨 부자. 이기현씨 제공

충북 제천시에서 아들과 함께 흔히 사다리차량으로 오인 받는 고소(高所)작업차량 업체를 운영하는 이양섭(54)씨. 그는 21일 오후 4시30분쯤 하소동 노블 휘트니스 스파 화재 현장에 고소작업차량 일종인 ‘스카이’를 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스카이는 사다리 끝 부분에 버킷(bucket)이라 불리는 작업바구니가 있는 차량이다.

현장에서 3㎞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이씨는 화재 발생 30분이 지나서야 멀리서 검은 연기가 피워 오르는 걸 보고 한 눈에 대형 화재임을 직감했다. 현장 부근에 사는 친구는 수화기 너머로 “여러 명이 건물 옥상에서 구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다급한 상황을 전했다.

즉시 이날 간판 설치 작업을 위해 스카이를 몰고 간 아들 기현(28)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통 작업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5시, 게다가 이동 거리를 감안하면 아무리 빨라도 오후 5시30분은 되어야 화재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급한 맘에 다짜고짜 “작업 언제 끝나냐”고 기현씨에게 물었더니 뜻밖에도 “오늘 작업이 일찍 끝나서 (귀가하려고) 막 출발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씨는 22일 기자와 만나 “아들이 평소엔 없던 ‘조기퇴근’을 했다는 말이 생명을 살리라는 계시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당초 예측보다 30분 이른 5시쯤 현장에서 합류한 이씨 부자는 버킷을 8층 외벽 쪽에 붙여 베란다에 대피해 있던 3명을 구조했다. 이양섭씨는 “시커먼 연기가 너무 짙고 넓게 퍼져 사람들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듣고 간신히 버킷을 댔다”고 했다. 기현씨는 “연기 탓에 아버지가 (버킷을) 올린 지 1분 정도 지나 다시 내리는 과정에서야 3명이 구조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건물 안에선 3층 남성 사우나 이발소에서 근무하는 김종수(64)씨 활약이 빛났다. 2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했다는 그는 화재가 건물 내부로 급속히 번지기 시작한 4시쯤 3층에 있던 손님 10여명을 비상계단으로 대피하도록 유도했다. 이날 제천서울병원 병실에서 만난 그는 “입구 쪽 계단에서 불길이 올라오는 걸 확인하고 비상계단으로 대피해야 할 거라 판단했다”며 “(비상계단을) 못 찾고 헤매는 손님이 있을까 봐 5분 정도 대피 유도를 하다 연기를 마셨다”고 했다. 난리통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던 손님에겐 야단을 쳐가며 비상구를 안내했단다. 그는 수 많은 사람을 구하고도 “건물에 자주 오가던 분들이 숨졌다니 생전 모습들이 눈에 선해 잠이 안 온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 외에도 2층 계단 쪽에서 우왕좌왕 당황해 하던 여성 여러 명의 창문 대피를 도운 것으로 알려진 이상화(71)씨와 중학생 손자 재혁(15)군, 사고 직후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교통을 통제해 경찰차의 빠른 접근을 도왔다는 지찬규(56)씨 활약도 컸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제천=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 시민 10여명을 비상계단으로 대피시킨 남성 사우나 이발사 김종수씨. 박지윤 기자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 시민 10여명을 비상계단으로 대피시킨 남성 사우나 이발사 김종수씨. 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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