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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성격 감시

입력
2015.06.2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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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은 누군가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요소다. 디테일이 뛰어난 사람은 상대의 행동을 ‘절약’시켜준다. 그래서 누군가의 디테일을 느낀 사람은 편안함을 얻는다. 허나 디테일이 과해도 문제다. 가령 어느 날 오후 3시. 지인이 직장을 그만두고 쉬는 중인 당신에게 전화를 했다고 치자. 당신은 전화를 받았을 당시 목이 잠겼을 뿐인데, 섬세한 지인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쉬고 있는데 깨운 것은 아닙니까?” 지인은 당신의 사정을 감안하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디테일은 ‘감안하는 마음’이다. 한데 이러한 감안이 지나치면 누군가의 디테일은 당신이 처한 상황과 그 맥락을 함부로 ‘생략’해버릴 수 있다. 단지 디테일과 결부된 매너를 통해 생활상의 쾌ㆍ불쾌를 말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디테일을 밑바탕으로 한 ‘심리(학)적 경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최근 몇 년간 ‘육감’‘직관’‘감지’ 등의 용어를 앞세워 누군가의 마음을 성공적으로 읽어내는 논의가 국내에 부쩍 유입되었다. 이 논의는 공통적으로 ‘마음의 시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꺼낸다. 당신은 마음의 시력을 키워 세심한 감각의 소유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둔감한 ‘마음맹’이 되고야 말 것인가. 마음의 시력에서 관찰이란 지금 내 눈앞에 놓인 모습이 아니라 그 모습의 이면을 꿰뚫어 보기 위한 수단이다. 특히 예민한 관찰력을 가진 현대인이란 설정 속에서 그 능력을 북돋워주려는 전문가들은 누군가의 내면을 계속 시각화하라고 제안한다. 감정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말처럼 이제 “디테일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대단히 정확하게 다른 사람을 평가하도록 심리화한 방식은 도처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사랑은 왜 아픈가’)

그 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상대의 마음을 짐작해 글로 표현한 다음, 타인에게 그 관찰의 우수함을 평가 받는 대표적 공간이다. SNS에서 디테일한 마음 관찰기는 냉소적인 감정과 섞여 더 풍부한 술어로 표현된다. 특히 트위터처럼 ‘비의’(悲意)와 새 관점에 예민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환영 받는 철학자들이 있다. 니체, 쇼펜하우어, 에밀 시오랑 등이다. 사람들의 그늘진 심리를 잘 포착해 명구가 된 그들의 기록은 대체로 리트윗이 많이 된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환영 받는 개인들의 어떤 관찰기가 있다. 다정한 사람은 곧 음흉한 사람이고, 착한 사람은 보통 갈등회피형이라는 성격 모델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관찰기를 올리는 개인이 아니다. 일정한 심리적 모델을 통해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 곧 자아 대결의 구도가 되어버리는 감정의 구조다. 짐작을 긍정적으로 보는 심리학적 논의는 낌새에 예민한 당신이 강한 자아라고 설파한다. 그러한 규정 속에서 관찰을 당하는 사람은 약한 자아로 분류되곤 한다.

이러한 가운데 마음의 시력은 우리가 한 사회를 ‘처신의 사회’라는 이미지로만 생각하게 만든다. 약한 자아로 분류된 사람은 강한 자아로 분류된 사람이 쓰는 ‘짐작의 기술’에 포착되지 않고자 만나기 전 미리 감정을 가다듬어야 한다. 반면 강한 자아로 분류된 사람은 약한 자아로 분류된 사람을 관찰하면서 뚜렷한 결과물이 보이지 않으면, 자신이 예상했던 몇몇 유형의 감정 중 하나를 현실로 앞당겨 끌어와 상대의 성격을 판단한다.

이를 ‘성격 감시’라고 부를 수 있다면, 디테일은 때론 의도치 않게 감시 수단이 된다. 오늘도 디테일한 ‘나’는 당신을 만나면 이런 말을 하고 싶어 한다. “당신, 참 흥미로운 성격을 지녔군요.” 여기서 흥미란 당신에게서 신선함을 ‘발견’했다는 게 아니다. 내 디테일한 예측에 당연히 들어맞는 당신을 ‘확인’했다는 자기도취일 뿐이다. 디테일한 자는 스스로 칭송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격 감시의 세계는 더욱더 은밀하다.

김신식 감정사회학도ㆍ‘말과활’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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