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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11월과 일반상대성이론

입력
2015.11.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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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0년 전인 1915년 11월 아인슈타인은 5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11월 25일자로 출판된 다섯 번째 논문의 제목은 ‘중력의 장 방정식’이다. 단 네 쪽의 이 논문 덕분에 인류는 사상 두 번째의 중력이론을 갖게 되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특수상대성이론을 일반화한 이론으로, 중력을 시공간의 뒤틀림으로 이해한다. 트램펄린 위에 사람이 올라서면 움푹 패듯이 태양 같은 무거운 천체가 있으면 주변의 시공간이 휜다. 지구는 그렇게 휘어진 시공간의 최단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중력장 방정식을 완성하기 일주일 전인 11월 18일자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거의 완성단계였던 방정식을 이용해 천문학의 해묵은 난제였던 수성 궤도 문제(100년에 43각도초만큼 궤도가 돌아감)를 해결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최초의 실험적 검증은 1919년에 있었다. 새 이론에 따르면 태양이 주변의 공간을 휘기 때문에 멀리서 오는 별빛이 원래 위치보다 1.75각도초만큼 떨어져 보인다. 이는 뉴턴역학의 예측보다 꼭 두 배 크다.

태양을 스쳐 지나오는 별빛을 관측하려면 일식을 이용해야 한다. 영국의 위대한 천문학자였던 에딩턴이 이끄는 탐사대는 1919년 5월 29일 일식 때 태양 주변의 별빛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그 해 11월 6일 에딩턴은 영국왕립학술원에서 자신의 관측 결과가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과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학계에서 처음으로 검증된 순간이었다. 이튿날 더 타임스는 “과학의 혁명?우주의 새 이론?뉴턴의 이론이 무너졌다(Newtonian ideas overthrown)”고 썼다.

1차 대전이 끝난 직후 적국의 과학자의 이론이 자국의 위대한 과학자의 이론을 무너뜨렸음을 학계가 발표하고 언론이 크게 보도한 셈이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만약 영국이 뉴턴의 위대함만 가르쳤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정부여당에서 “자랑스런 대한민국 올바른 역사를 씁니다”고 했을 때 나는 1919년 11월의 영국이 떠올랐다.

한편 일반상대성이론을 가장 확실하게 검증하려면 중력파의 본질인 시공간의 요동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최근 일본은 ‘카그라’라는 중력파 관측 장비를 완공했다. 유럽에서는 우주에서 중력파를 관측하기 위해 eLISA라는 계획 하에 오는 12월 초 시험관측위성을 발사할 예정이다. 비전문가들 눈에도 이런 실험들은 관측이 곧 노벨상 감임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왜 노벨과학상을 못 받느냐고 푸념하기 전에 우리는 중력파 관측에 돈과 인력을 투입할 의지가 있는지부터 먼저 자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 eLISA 예산이 1조원을 조금 넘는다. 4대강 사업을 떠올려 보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선진국들은 이렇게 21세기 과학문명의 첨단을 내달리고 있는데, 국정교과서와 물대포로 자꾸만 시대를 거슬러가는 조국의 현실이 안타까운 2015년의 11월이다.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BK사업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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