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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죽만 울리는 핑크빛 정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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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죽만 울리는 핑크빛 정책들

입력
2016.05.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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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버스좌석·전용택시 등

과보호·역차별 반발 속 폐지 축소

서울시 안심귀가스카우트도 삐걱

이용 늘었지만 도우미 안전 논란

"남성적 시각으로 보호에 방점

구체성 낮은 전시성 정책 시행"

2008년 경기 파주시와 고양시를 운영하는 일부 시외버스에 마련된 여성전용좌석. 인터넷 캡처
2008년 경기 파주시와 고양시를 운영하는 일부 시외버스에 마련된 여성전용좌석. 인터넷 캡처

2008년 경기 파주시와 고양시를 운행하는 일부 시외버스에 여성전용좌석제가 마련됐다. 버스 안에서 일어나는 성추행 등 여성 상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좌석 중 4~8개 등받이에 ‘이 좌석은 여성전용입니다’라는 문구를 붙여 여성들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도입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남성단체는 물론, 여성단체의 반발에 부딪쳐 논란을 빚다가 지난해 완전히 폐지됐다. 전용 좌석에 남성이 앉아도 제지할 방법이 없는 데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해 역차별만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서울 강남 20대 여성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안전 정책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남성중심 문화 속에서 여성을 단지 ‘보호’ 대상으로 간주해 나온 정책들이어서 근본적 해결 방안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거나 도입을 고려했던 ‘여성전용택시’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현재 충북 청주와 전북 익산 등에서 여성전용택시를 운영 중이나 정작 이용 주체인 여성들은 별로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여성전용택시를 이용한 적이 있는 안모(34)씨는 26일 “범죄 위협 탓에 마음 놓고 택시를 탈 수 없는 사회구조가 문제인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뭔가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편치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2007년 여성전용택시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가 역차별과 여성기사 배치 문제 등이 불거져 제대로 시행도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

2013년 시작된 서울시의 ‘여성안심귀가 스카우트’ 제도 역시 이용률은 늘고 있으나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지난해 이용자(23만3,290건)는 2014년(10만2,139건)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하긴 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이용하려는 여성은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도착 30분 전에 120 다산 콜센터로 전화를 한 뒤 구청 상황실이 연결해 준 2인1조의 스카우트 이름 정보를 미리 확인해야 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이용 절차가 번거로울 뿐 아니라 도우미 역할을 하는 40,50대 여성들의 안전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가 지난해 연말까지 공중전화 부스 50곳을 범죄에 대비한 대피소로 활용하겠다며 내놓은 ‘안심부스’는 현재 15곳밖에 설치되지 않아 실효성 논란에 직면했다. 대당 3,000만원에 이르는 설치 비용을 기업들로부터 지원받지 못해서다. 구모(27)씨는 “범죄는 항상 긴급한 상황에서 발생하는데 여기서 이 정도 규모로 과연 범죄 예방에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성을 배려하는 정책들이 오히려 외면 받는 이유는 한국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남성 중심의 사회인식 때문이라는 문제 제기도 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여성정책이란 외피를 두르고 발표된 제도를 보면 대개 ‘보호’에 방점을 두고 있다”며 “남성은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성불평등 인식에 기초하다 보니 구체성은 떨어지고 환경 개선과 같은 변죽만 울리는 정책이 시행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허민숙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도 “꽃을 심고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등 눈에 보이는 안전 조치들은 결국 여성들에게 심리적 안정만 유지하라고 강요하는 꼴”이라며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 남성중심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선행돼야만 여성정책도 내실을 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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