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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흔드는 여론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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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흔드는 여론 압박

입력
2017.02.1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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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 거액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6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 거액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6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이재용 구속 결정 영장판사

포털선 칭찬 댓글 넘쳐나고

법원 앞 보수단체는 비방전

국민도 비평할 권리 있지만

판사도 사람… 심적 부담 느껴

법원도 발부 여부 예측가능케

기준 세우고 상세 설명해야

“정의를 실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판사님만이 대한민국 희망입니다.”

한정석(40ㆍ사법연수원 31기) 영장전담판사가 17일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온라인에는 순식간에 이런 류의 댓글 수 천 개가 올라왔다. 한 판사 이름이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를 기록했고, 출신 지역과 학교, 그간의 판결 사건을 거론하며 영웅시하는 글도 쏟아져 나왔다. 반대로 법원 앞에서는 “길에서 눈에 띄면 바늘로 허벅지 찌르자”, “고작 서른아홉 살(실제는 1977년생)이 나라 망친다”는 등 보수단체들의 막말이 넘쳐났다.

‘국정농단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심화하고 있는 사회 갈등의 적나라한 단면이다. 법원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따라 법치주의와 사법부 독립권 훼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법원의 판단 하나 하나에 지나친 찬사와 비난이 교차하고 있다”며 “특히 판사 개인에게 대중적 관심이 쏟아지는 건 매우 우려되는 일”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19일 이 부회장 영장을 기각한 조의연(51ㆍ24기) 영장전담판사도 쏟아지는 비방과 욕설로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 ‘삼성 장학생’ ‘아들이 삼성에 취업했다’는 등의 허위사실과 악성루머에 조 판사는 물론 법원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법원이 이례적으로 우려와 유감을 표하는 공식 자료를 배포한 까닭이다.

여론의 편향적인 압박은 연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과 인용 시위로 몸살을 앓는 헌법재판소에서 더 심하다. 서울 재동 헌재 앞에서는 일부 재판관 정치 성향을 분석해 ‘악마 재판관’으로 지칭하는 피켓이 걸려 있다. 심지어 대통령측 대리인단 서석구 변호사는 법정 안팎에서 계속 태극기 퍼포먼스를 펼치며 편향적 여론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정미 재판관은 “탄핵심판 진행 동안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언행을 자제해달라”며 법정 밖 억측 등 심적 압박을 우회적으로 토로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확증편향과 인신공격, 칭찬이 범람하는 분위기에서 법원이 소신을 갖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도인’이 아닌 이상 법관 스스로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 한 판사는 “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판결도 하기 전에 개인에 대한 여론이 조성되면 심적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를 두고 영미권에 있는 ‘법관 모독죄’ 등 제도적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법원 안팎에서 나온다. 그러나 해법은 쉽지 않다. 판결에 대한 합리적 비판까지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 노희범 변호사(전 헌법재판소 재판연구관)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국민도 법원 판결을 얼마든지 비평할 권리가 있다”며 “다소 추상적인 영장 발부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세우고, 판사가 기각이나 발부할 때 그 사유를 더 상세하게 설명하는 등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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