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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독재의 헛구호, 빈자의 권리를 빼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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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독재의 헛구호, 빈자의 권리를 빼앗다

입력
2016.12.0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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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일수록 오직 성장에 매달려

경제학자들 “먹고 사는 문제 해결”

논리로 독재자에게 충실히 부역

아시아ㆍ남미 등 사례 예시

장기적으론 성장 가져오지 않고

민주주의 통해 제대로 발전 가능

저개발 국가 아이들을 도우려는 뜻은 좋다. 그러나 경제개발 테크닉 보다는 정치적 자유를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게 윌리엄 이스털리의 제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저개발 국가 아이들을 도우려는 뜻은 좋다. 그러나 경제개발 테크닉 보다는 정치적 자유를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게 윌리엄 이스털리의 제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의 독재

윌리엄 이스털리 지음ㆍ김홍식 옮김

열린책들 발행ㆍ592쪽ㆍ2만5,000원

먼저 책 표지 날개에 붙은 저자 윌리엄 이스털리에게 붙은 설명 “제프리 삭스의 주장에 맞선”이 너무 짧은 요약이니 이에 대한 조금 긴 보충 설명부터. 알려진 바대로 제프리 삭스는, ‘하버드대’ ‘최우등’ 졸업생인데다 또 스물 아홉에 바로 그 ‘하버드대’의 ‘최연소’ 정교수가 된 경제학자다. 거기다 미국의 풍요를 넘어 세계의 빈곤을 고민한 학자다. 천재인데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다 좋다. 그런데 그에 걸맞는 처방을 내놓았느냐는 별개다.

1980년대말 현실 사회주의 붕괴에 따라 많은 동유럽 국가들이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을 추진했다. 똑똑한데다 자비롭기까지 한 제프리 삭스에게 자문 요청이 쏟아졌다. 그러나 별 효과를 못 봤을 뿐 아니라 되레 성장이 10년은 후퇴했다는 평이 나돌았다. 그의 처방이 대개는 시장경제의 단순 이식에 불과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무조건 시장, 시장, 시장 외치면 그 떡고물을 다 주워먹는 건 변신에 능한 ‘꺼삐딴 리’들이다. 가장 친숙한 예는 러시아다. 급속한 시장화를 추진한 옐친 때문에 올리가르히(신흥재벌)라는 특권층이 출현하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올리가르히와의 전쟁’을 내건 푸틴 같은 독재자가 재등장하는 악순환 말이다.

이 대목을 집중 비판한 인물이 바로 윌리엄 이스털리다. 이스털리는 세계은행에서 수십년간 개도국 지원 정책을 연구하고 집행한 경제학자. 현지 사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외부에서 경제전문가들이 기술적인 처방만 주입하는 것을 두고 “정치적 자유 대신 경제발전만 우선시하면서 사실상 독재정권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경제발전마저도 저해했다”고 맹비판하는 입장이다.

이 비판의 사정권 안에는 제프리 삭스 뿐만이 아니라 지구 빈곤 종식 운동을 요란하게 벌이는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U2의 리드보컬 보노 같은 각계 명사들이 다 포함된다. 중국의 경이적 성장을 격찬하면서 “지도부의 지혜와 강인함, 그리고 확고한 의지”를 내세우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 스스로 자유시장을 옹호한다면서도 “중국식 일당 독재에는 단점이 있지만 계몽된 이들이 한다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따위의 해괴한 소리를 늘어놓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 같은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책 제목 ‘전문가의 독재’, 부제 ‘경제학자, 독재자, 그리고 빈자의 잊혀진 권리’는 이비판의 압축이다. 독재자일수록 오직 ‘성장’ 그 자체에만 매달리고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일단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 아래 그 독재자들에게 충실하게 부역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인자한 독재자’이자 ‘뛰어난 테크노크라트’임을 내세우지만, 그 아래서 가장 억압받는 이들은 다름 아닌 빈자들이다. 성장이란 이름으로 빈자들의 민주적 요구를 밟아누르는 게 인자한 독재자와 경제 테크노크라트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성장은 민주주의가 가능케 한다. 인자한 독재자와 경제적 테크노크라트가 내놓은 경제개발계획이란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경제성장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한번은 저자가 직접 세계은행에 물어봤단다. 세계은행 공식보고서와 연설 등에서 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없느냐고. 그러니 세계은행이 독재정권에 돈 퍼준다 욕 먹어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니냐고. 세계은행의 공식적 답변은 놀랍게도 “세계은행 설립헌장은 민주주의라는 말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서 그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철저히 경제적 테크닉만 제공한다는 원칙 아래 움직인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인종적 이중 잣대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부유한 선진국의 전문가들이 자기 나라에서는 민주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가치를 지지하면서도 빈곤한 나라들에 대해서는 권위주의적 노선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그렇다. 쉽게 말해 “너희들에게야 정치적 자유 같은 고귀한 것을 줘봤자 별 쓸모도 없을테니, 시키는 대로 경제만 좀 개발해놓으면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을 게다”라는 태도가 깔려 있다는 얘기다. 요즘 유행어에 따르자면 일종의 ‘글로벌 개돼지론’이다.

세계은행 근무경험이 오래된 저자답게 책에는 아시아,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다양한 대륙을 넘나드는 국가들의 역사적 사례가 넘쳐난다. 한 예만 들자면, 미국은 일제에 맞서는 중국 쑨원 정권에 엄청난 지원을 쏟아 붓는다. 그런데 지원을 하던 그 때에 정작 미국 내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극심한 인종차별 정책이 진행된다. 이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무슨 의미였을까. 결국 중국 인민의 성장과 발전은 일제 대항의 도구였을 뿐이다. 그 결과는? 중국을 공산당에게 통째 넘겨주는 비참한 패배로 끝났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출진흥확대회의'. '박정희의 리더십'을 강조할 때 쓰이는 장면이다. 그러나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하이에크는 이런 장면을 찬양하는 자칭 보수주의자들을 ‘반자유주의적’이라며 경멸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1년 박정희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출진흥확대회의'. '박정희의 리더십'을 강조할 때 쓰이는 장면이다. 그러나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하이에크는 이런 장면을 찬양하는 자칭 보수주의자들을 ‘반자유주의적’이라며 경멸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 관심도 없을 세계의 빈곤과 발전 문제를 다루는 책임에도, 남의 얘기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다만, 책에서 한국의 위치는 기묘하다. 어쨌든 세계적 시선에서 보자면 한국은 그 와중에서도 극히 예외적인 성공사례이기 때문이다. 반공전선의 필요성 때문에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는 불가피했다는 의미도 된다. 동시에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민주화되어 세계적 예외 사례가 된 것은 소위 말하는 ‘종북 좌파’들이 날뛰어 주고 화염병이라도 던져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성장은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 덕분’이 아니라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에도 불구하고’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원조 방법론을 두고 왈가왈부가 많은 세계빈곤에 대한 저자의 해법은 이것이다. “빈자가 부자와 똑 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이다. 당신의 정부가 나머지 세계 사람들의 권리를 원조기관이나 군사적, 외교적 행동을 통해서 짓밟을 때 소리 높여 그에 항의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포인트는 하이에크의 복권이다. 우리에겐 ‘노예의 길’를 통해 계획경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자유시장의 맹신자로만 입력되어 있는데, 의외의 면모를 길어올린다. 한 대목만 옮기자면 이렇다. “(하이에크는) 유난히 권위를 밝히는 사람과 요란한 국가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을 맹렬히 배격했다. 하이에크를 우파의 상징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공교로운 일이겠지만, 이러한 하이에크의 비판은 바로 보수주의자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던 박근혜정부가 창조경제와 문화융복합도 하겠다는, 혼이 비정상 같은 소리를 늘어놓은 건 반드시 유체이탈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태성기자 amoraf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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