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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내란과 빈곤 넘어 ‘젊은 민주주의’ 꿈꾸는 동티모르

입력
2017.07.1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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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선 투표할 때 지장을 찍는다. 2017년 3월 20일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 대선 투표를 마친 여성이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딜리=EPA 연합뉴스
동티모르에선 투표할 때 지장을 찍는다. 2017년 3월 20일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 대선 투표를 마친 여성이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딜리=EPA 연합뉴스

2002년 인도네시아의 강점에서 벗어나 ‘21세기 첫 독립국’이 된 동티모르는 독립 후에도 상당 기간 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15년이 흘러, 올해 3월 20일 동티모르는 건국 이래 네 번째 대선을 치렀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완전히 떠난 후 치러진 첫 대선은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달리 폭력 사태 없이 프란시스쿠 ‘루올루’ 구테흐스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국민은 동티모르에 마침내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도래했음을 자축했다. 그러나 여전한 빈곤과 부패,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동티모르가 안정된 민주 국가로서 고작 첫발을 뗀 것임을 절감하게 한다. 22일로 예정된 총선에서 전 유권자의 절반에 이르는 청년 세대의 표심이 정치구도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권력 놓고 경쟁하는 독립영웅

2007년 ‘사랑받는 나라(Beloved Land)’라는 책을 낸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의 동티모르 연구자 고든 피크는 동티모르를 “공적인 문서나 제도가 아니라 지도자를 둘러싼 정실주의와 비선이 이끄는 나라”라고 평했다. 이는 신생 독립국으로서는 필연적인 결과다.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들은 ‘독립영웅’이고, 모든 정치는 이들 인기 지도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동티모르의 역대 대통령과 총리도 모두 독립영웅 출신이다.

22일 동티모르 총선도 표면상으로는 이들 독립영웅의 행보가 좌지우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테흐스 대통령이 속한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프레틸린)은 초대 총리인 마리 알카티리가 사무총장으로 선거를 지휘한다. 동티모르재건국민회의(CNRT)는 대통령과 총리를 차례로 지낸 샤나나 구스망이 지도자다. 2015년 창당한 신생정당 민중자유당(PLP)의 지도자는 바로 직전 대통령이었던 타우르 마탄 루악으로, 퇴임하자마자 총리에 도전하고 있다.

이 세 인물은 ‘애증의 관계’로 엮여 있다. 알카티리 총리는 2006년 군인을 대거 해고했다가 발생한 군사반란을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구스망 당시 대통령이 “알카티리가 물러나지 않으면 내가 물러나겠다”며 총리를 압박했다. 프레틸린당 일각에서는 “알카티리를 축출하려고 일부러 혼란을 부추긴 세력이 있다“고 주장해 구스망을 겨냥했지만 여론을 뒤집지 못했다. 이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구스망은 CNRT를 창당해 스스로 총리를 맡으며 권력을 틀어쥐었다. 루악 전 대통령도 구스망 당시 총리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직에 오른 경우다.

그런데 2015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구스망이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프레틸린-CNRT ‘거국내각’을 출범시켰다. 이 과정에서 구스망과 알카티리가 다시 손을 잡았다. 알카티리는 연정 참여의 대가로 동티모르 본토와 동떨어져 인도네시아 영토로 둘러싸여 있는 서쪽 오에쿠시(Oecussi)주의 ‘특별경제사회시장구역(ZEESM)’ 행정감독을 맡아 막대한 재정을 주무르게 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거꾸로 루악 대통령이 불만을 품었다. 2015년 말에는 2016년 국가예산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2016년에는 새 군부 수장의 임명을 거부했다. 집권 연정은 한때 루악의 탄핵까지 논의하기도 했다.

동티모르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상징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처럼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루악은 2016년 “빈곤한 국민을 만나면서 내가 옳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며 “누구도 나서지 않을 때는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스망-알카티리 거국내각 정부의 부패가 심각하다며 “무분별하게 국가 예산을 늘려 대규모 사업에 투자했을 뿐 실제 민중에게 혜택이 돌아갈 건강보험이나 교육, 행정 분야에는 인색했다”는 주장을 폈다. 다만 올해부터 그가 참여한 PLP가 아직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평화에서 경제로… ‘젊은 세대 표심’ 주목

루악의 문제 제기를 감안하더라도 동티모르는 신생 독립국 가운데서는 분명 사정이 나은 국가다. 독립투쟁집단 간 알력다툼으로 내전에 빠진 남수단이나 일당 독재국가로 ‘아프리카의 북한’이라고까지 불리는 에리트레아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동티모르 국민은 민주 정치를 구현하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지도자들도 “국민에 봉사하겠다”는 의식이 강하다. 총리직을 내려놓고 반대 정파인 프레틸린당과 손잡은 구스망의 결단은 더 이상의 정치폭력 사태를 막고 평화와 치안을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정파간 이권 분배는 그 결과 나타난 필요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빈곤과 고실업, 석유 기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구조, 수도 딜리에 집중된 개발혜택 등 경제분야 정책에 대한 불만은 조금씩 쌓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타톨리가 2016년 1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티모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란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58%로, 2014년 73%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또 응답자의 32%는 경제문제를 동티모르의 최대 당면 과제라고 답하기도 했다.

현재 동티모르 국가수입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석유자원은 낙관적으로 봐도 수십년이면 고갈되기 때문에 산업 구조 다변화가 절실하다. 심지어 현재 진행 중인 동티모르와 호주 정부 사이 해양개발경계선 재협상이 원활하지 않으면 당장 5년 뒤인 2022년부터 석유기금이 고갈될 수 있다. 최창원 동티모르국립대 개발경제학과 교수는 “호주는 동티모르와 영해권분쟁과 국제적 저원유가 추세로 인해 해양개발경계선 재협상에 소극적이어서, 그 이전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동티모르는 석유를 통한 국가수입확보에 불확실성이 증대되었다”고 했다.

특히 이런 불만은 청년세대에서 더 두드러진다. 싱크탱크 아시아재단이 진행한 동티모르 정치에 대한 집중토론 형태의 설문에 참여한 청년들은 동티모르의 정치 지도자들이 “각 지방에 공약을 남발하지만 하나도 지키지 않는” 존재라고 언급했다. 고실업과 일자리의 지역 격차도 극심해 “먹고 살려면 딜리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말이 나왔다. 최 교수는 “청년들이 체감하는 고실업률은 불과 5년 전과 비교해도 심각성이 2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활동했던 2012년까지만 해도 동티모르 내 최우수 인재로 불리는 동티모르국립대생의 취업률이 30~40% 정도였는데 현재는 고작 10%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정당들도 이런 요구에 어느 정도는 응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시아 정치전문지 더디플로매트는 “어느 나라든 ‘세대간 격차 해소’ 가 중요한 정치 과제지만 현재 동티모르에선 특히 막 성인이 된 ‘첫 투표자’의 표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체 인구의 70%가 30세 이하이며 전체 유권자의 51%가 청년 세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에 대한 세 정당의 입장은 미세하게 다르다. 현 내각을 주도하는 구스망의 CNRT는 2030년까지 동티모르를 중간수입국가(세계은행 분류상 1인당 국내총생산(GDP) 1,026달러 이상)로 올린다는 ‘전략개발계획 2030’을 추진 중이다. 프레틸린당은 ‘성장과 지속가능개발의 균형’을 제시하고 있고 PLP는 현재 개발계획을 근본에서 재검토해 부의 재분배와 사회투자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22일 총선 결과에 따라 기존 경제정책 노선이 이어질 수도 있고 뒤바뀔 수도 있지만 그 열쇠는 결국 ‘젊은 투표자’들이 쥐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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