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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특사의 수모

입력
2017.11.27 15:5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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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김정은은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특사로 보냈다. 6개월 전 장성택 처형으로 심기가 불편해 진 중국을 달래기 위해서다. 방중을 원한다는 친서도 보냈다. 그러나 최룡해는 시진핑 주석 면담을 위해 하루 종일 숙소에 대기하는 등 온갖 수모를 당했다. 시 주석이 쓰촨성 지진피해 시찰을 이유로 면담을 피했기 때문이다. 막판에 겨우 만남은 성사됐지만 김정은의 방중도, 관계정상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4년 전에는 다이빙궈 국무위원이 후진타오 주석의 특사로 방북했다. 2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의 폭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김정일이 지방시찰을 가는 바람에 귀국 직전에야 만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후 주석의 친서를 전달할 수 있었다. 시진핑이 후진타오의 복수를 한 것이었을까.

▦ 최근 방북한 시 주석 특사가 김정은을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귀국했다. 당대회 후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권력을 장악한 시 주석의 첫 특사가 문전박대당하는 망신을 겪은 것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특사를 버려두고 지방시찰 차 간 평남의 자동차공장에서 크게 웃는 김정은의 사진을 실었다. 잇단 특사 수모에서 비쳐진 북중관계의 현주소다.

▦ 특사외교에서 실패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인사차 6월 방중한 이해찬 특사는 테이블 모서리에 앉아 마치 일개 행정구의 장이 알현하는 듯한 자세로 시 주석을 면담했다. 불과 사흘 전 방중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나 4년 전 김무성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특사가 시 주석과 동등한 위치에서 환담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실무적으로 대화를 많이 하기 위한 배치였다”는 관계자의 설명이 더 가관이었다.

▦ 1636년 홍타이지가 청나라 2대 황제로 등극하는 즉위식에서 각국 사절단이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극진한 예를 표할 때 조선의 두 사신만이 끝까지 머리 숙이기를 거부해 의복이 갈기갈기 찢기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오랑캐에게 사대의 예를 보여선 안 된다는 인조의 훈령 때문이었다. 두 사신은 살아 돌아왔지만, 8개월 뒤 청 태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 정벌에 나섰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의 굴욕을 당했다. 인조가 혜안을 발휘해 사신들에게 유연한 행동을 지시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특사를 하대하는 흉흉함이 다가올 불행의 전조가 아닌지 걱정스럽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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