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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등록 : 2017.04.05 04:40
수정 : 2017.07.17 11:15

[박세진의 입기, 읽기] 지방시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 의미

등록 : 2017.04.05 04:40
수정 : 2017.07.17 11:15

클레어 웨이트 켈러.

패션 브랜드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얼마 전 클레어 웨이트 켈러로 바뀌었다. 하이 패션은 창조적 작업과 비즈니스가 결합된 복잡한 영역이고 규모와 범위도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또한 이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창조성과 화려함을 안고 인터넷 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중적 스타로 자리를 잡았다. 그 덕분에 마치 유럽 프로축구 리그 선수의 이적이나 K팝 스타의 소속사 이전처럼 디자이너의 이동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거장 디자이너의 이름을 가진 브랜드가 그 이름 아래에서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건 중요한 가치였다. 지금도 이런 면을 중시하는 브랜드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20세기 초의 거장 디자이너 세대가 물러 나면서 거의 끝났다. 큰 기업들이 개입해 있고 큰 자본이 돌아다닌다. 그리고 디자이너 한 명이 자기 개혁을 통해 발전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를 쇄신해 가며 신선함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고 확실하게 하우스의 이미지를 신선하고 개혁적으로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로 사람을 바꾸는 방법을 채택하게 된다.

예컨대 지방시의 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리카르도 티시였다. 그의 기반은 고딕과 힙합 등 거리 문화다. 그 덕분에 오드리 헵번으로 상징되던 고풍스러운 이미지의 지방시는 힙합 뮤지션과 ‘빅뱅’ 같은 스타가 입는 바이럴하고 트렌디한 브랜드로 변할 수 있었다.

'지방시' 인터넷 홈페이지

켈러는 보다 진중하고 안정적으로 패션을 탐구하는 디자이너다. 그러므로 앞으로 지방시의 색은 크게 변하게 될 거다. 이런 변화가 패션의 세계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더해줄 수 있을 테고 잘 된다면 지방시라는 이름의 수명은 더 연장될 수 있을 것이다.

켈러는 여성이다. 지방시 모기업인 LVMH는 디올에 이어 지방시에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여성 디자이너를 임명했다. 이 부분이 사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패션업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여성들의 활약이 많은 편이다. 코코 샤넬, 잔느 랑방, 엘자 스키아파렐리 같은 전설적 여성 디자이너들이 있었고, 미우치아 프라다와 스텔라 매카트니, 셀린느의 피비 필로 등이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사교 파티의 주인공 같은 고급 패션의 기성 역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보다 주체적으로 구시대의 관습을 타파하는 패션을 개척해 왔다. 그렇다 해도 최근 들어 최상층부에서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샤넬과 랑방, 엘자 스키아파렐리는 지금은 모두 남성 디자이너들이 책임지고 있다.

패션 세계에서 페미니즘 발언이 늘어나고 다양성이 많은 관심을 받고 높은 가치를 부여 받는 최근 경향에서 보자면 지방시의 켈리 영입은 상당히 중요한 움직임이다. 엉덩이가 무거울 것 같은 대형 브랜드들도 패션 시장을 계속 이끌어 가기 위해 세상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고급 패션은 옷의 한계점을 탐색하며 수많은 다양성을 흡수해 여태 생각하지 못했던 걸 발굴하는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다양성은 인종과 성별, 성 정체성의 차이 등에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보다 풍부해진다. 특히 브랜드의 고객이 전 세계를 아우르게 되면서 이런 태도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독자성을 지닌 기업들에게 억지로 간섭할 수는 없다. 닫힌 태도와 인습의 극복은 알아서 할 일이고 고객들은 눈을 크게 뜨고 뭘 하고 있는 지 바라보면 될 일이다. 설득은 필요 없는 일이고 시대를 읽어내지 못하면 그저 도태돼 사라질 뿐이다.

파리의 오트 쿠튀르 연합은 2017년 현재 14개의 공식 브랜드로 구성돼 있다. 자세히 따지고 들어가면 더 복잡해지지만 남녀 분류로만 보자면 이 디자이너 하우스의 디렉터들은 남성 12명 대 여성 2명이었다가 이번에 디올과 지방시가 바뀌면서 남성 10명 대 여성 4명으로 재편됐다. 이게 현재의 상황이고, 보다시피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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