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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나가도… 공간은 언제나 그를 기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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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나가도… 공간은 언제나 그를 기억하네

입력
2016.04.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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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정원

시바사키 도모카 지음·권영주 옮김

은행나무 발행·156쪽·1만원

봄의 정원
봄의 정원

젊고 아름다운 소극단의 여배우와 근사하고 세련된 광고 감독이 부부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저택이 있다. 정원에는 만 가지 꽃과 나무가 방창하고, 큰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자주 눈이 부신 곳이다. 흰 셔츠를 입고 무심하게 돌아보는 남자의 옆얼굴과 웃음을 터뜨리며 웃고 있는 여자의 지나치게 자연스런 모습들이 찍힌 사진집 제목은 ‘봄의 정원’. 매력적인 부부의 일상생활을 촬영한 20년 전 이 사진집은 당시 여고생들에게 “결혼이라든지 사랑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만들 만큼 꽤 인기가 있었다. 사진집 촬영 2년 후 부부는 이혼했지만.

2014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시바사키 도모카의 ‘봄의 정원’은 이 저택을 중심으로 인연을 맺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애잔하게 그린 소설이다. 사건의 전개가 아닌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데 소설은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화장한 아버지의 유골을 으깬 절구와 공이에 끼어있는 유골가루를 어쩌지 못한 채 그릇장에 넣어둔 젊은 이혼남 다로와 그의 연립주택 위층에 사는 호기심 많은 여성 만화가 니시가 주인공이지만, 연애 따윈 염두에 없다. 처음부터 ‘봄의 정원’에 대한 오랜 흠모로 이 저택과 담을 공유하고 있는 현재의 연립주택으로 세 들어온 니시는 세상만사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다로를 ‘저택 탐험’이라는 자신의 숙원사업에 연루시킨다. 화보 속에서 언제나 흰 셔츠 차림인 남자를 다로는 “늘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것부터 생각하는 남자”라 별로라고 여기지만, 정원의 매화나무 옆에서 땅을 파고 있는 컷에서는 한껏 집중한 얼굴이다. 이 남자는 무엇을 파묻기 위해 땅을 파고 있는 것일까.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주거지의 많은 집들이 빈 집으로 전락하고, 오랜 집들은 재건축을 이유로 허물어지고 있는 공동화된 마을. 이곳에서 잡지 속 찰나처럼 행복하고 싱그러워 보였던 부부와 그들의 집은 묘한 빛을 발한다. 산천은 유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 기억의 유일한 보존자로서 공간은 언제나 쓸쓸하다.

하지만 니시는 깨닫는다. 공간은 고유의 생명을 지니고 있어, 거주자들이 떠난 이후에도 자신의 삶을 이어나간다는 것을. 시간이 멈춘 듯 보이던 무표정은 새로운 주인이 들어서면 이내 활력의 표정으로 바뀐다. “집에 계절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에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살아 있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집 위로 흐르는 사계절을 담담하면서도 쾌활하게 묘사하던 소설은 재건축을 위해 연립주택의 세입자들이 거의 떠나는 마지막에 이르면 급작스런 반전의 분위기를 도모한다. 절구와 공이 없이도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절구에 들러붙은 가루와 원래는 같은 유골이었던 입자. 아버지의 어느 부분이었을까. …이제는 그것들이 신변에 남아 있는,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절구와 공이를 알지도 못한다.”

눈에 보일 듯 그려낸 낡은 주택가의 풍경과 그 위로 겹치는 인물들의 마음의 풍경이 이야기보다 더 강하게 잔상을 남기는 소설이다. ‘나 홀로 비장미’로 독자를 아연하게 하는 법이 없는 일본 소설의 장점이 잘 드러나 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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