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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인권을 다룬 영화 4

입력
2017.04.29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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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대선후보 TV 토론회. 국회사진기자단
28일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대선후보 TV 토론회. 국회사진기자단

대선판이 ‘동성애ㆍ동성혼 이슈’로 후끈 달아올랐다.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군대 내 동성애를 찬성하냐”는 황당한 질문으로 불씨를 당겼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동성애를 차별해선 안 된다”면서도 동성혼엔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 불꽃을 활활 키웠다. 문 후보의 인권 감수성을 믿었던 유권자들은 요동쳤다. 일부는 싸늘하게 등을 돌리기도 했다. 동성애 이슈가 표심의 향방을 가를 주요 변수 중 하나로 급부상하는 분위기다.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성 정체성은 그야말로 정체성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발언이 크게 지지를 얻었다는 건, 심 후보의 견해가 보편과 상식에 한층 가깝다는 뜻이다. 설사 이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그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동성애 때문에 에이즈가 창궐한다고 주장하거나, 성 정체성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대선 후보들을 위해서 몇 편의 영화를 골라봤다.

필라델피아(1993)

성 소수자 담론이 사회적 화두가 될 때마다 첫 머리에 거론되는 영화다. 동성애자이자 에이즈 환자인 주인공 앤드류 베켓(톰 행크스)이 부당한 차별에 맞서 법정 투쟁을 벌이는 과정을 그렸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별세한 조너선 드미 감독이 연출했고, 행크스가 이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앤드류는 승승장구하던 변호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중대한 사건의 소송장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회사는 이를 빌미 삼아 그를 해고한다. 이 모든 게 사측의 계획이었다는 걸 알게 된 앤드류는 소송을 도와줄 변호사들을 찾아 다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싸늘한 시선뿐이다. 라이벌이었던 변호사 조 밀러(덴젤 워싱턴)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조는 인종차별을 겪는 흑인들을 떠올리며 앤드류의 변호를 맡고, 그 어떤 차별도 거부하며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앤드류를 보면서 그간 자신이 동성애자를 향해 가졌던 편견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깨닫는다. 인종과 종교로 인해 차별 받아선 안 되듯 성 정체성도 마찬가지라고 법정에서 조가 힘주어 변론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진한 여운을 남긴다.

필라델피아는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도시다. 영화가 자유와 인권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를 영화의 배경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편견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든다.

대선 주자들의 동성애 논쟁 이후, 온라인에서 1997년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동성애에 대한 견해를 밝힌 기사가 화제를 모았다.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권영길 등 당시 후보들 모두 동성애자 인권 보장에 공감했다. 그러면서 ‘필라델피아’를 예로 들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일부 대선 후보들에게도 이 영화가 필요할 것 같다.

‘밀크’(2009)

1970년대 미국의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실존인물 하비 밀크의 생애 마지막 8년의 이야기를 그린 전기 영화다. 영화 ‘굿 윌 헌팅’의 구스 반 산트 감독 작품이다. 하비를 연기한 숀 펜도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게이라는 사실을 감춘 채 뉴욕의 평범한 증권맨으로 살던 하비(숀 펜)는 마흔 살을 맞아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던 지난 삶을 돌아보며 연인 스콧(제임스 프랑코)과 자유로운 분위기의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다. 그곳에 작은 가게를 차린 하비는 상냥한 성품으로 이웃들과 어울리고, 그의 가게는 게이와 인권운동가, 소외된 청년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룬다. 그러나 게이들에 대한 공권력의 부당한 행태를 목격한 하비는 게이 인권 보호에 나서기로 결심하고 시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연거푸 세 번이나 낙선하며 좌절도 겪지만 그 과정에서 점차 게이들의 지지를 얻은 하비는 1977년 마침내 당선된다. 그는 커밍아웃을 한 미국 최초의 정치인이다. 이후 하비는 게이뿐 아니라 여성과 아시아인 등 소수자들의 권익 보호에도 앞장 서고, 폐지됐던 게이 인권 보호법도 부활시킨다.

보통사람이었던 하비를 움직인 건 희망이었다. 희망은 하비의 삶을 바꿨고 사회를 변화시켰다. 하비가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상의 견고한 벽에 부딪혀 번번이 깨지면서도 여유와 낭만을 잃지 않는 모습 때문이다. 그의 투쟁은 경직돼 있지 않았다.

‘밀크’는 게이에 대한 이야기면서 인권에 대한 이야기이고,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던 한 인간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다. 하비의 뜨거운 삶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비록 상상이지만 하비가 지금 한국의 대선 후보들을 만난다면 어떤 얘기를 할까 궁금해진다.

‘캐롤’(2015)

지난해 초 한국에서 개봉해 마니아 관객을 양산하며 ‘재관람 열풍’을 일으켰던 영화다. 시대의 억압 속에 피어난 두 여자의 운명적 사랑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백화점에서 점원과 손님으로 마주친 테레즈(루니 마라)와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첫눈에 강한 끌림을 느낀다. 테레즈에겐 남자친구가 있고 캐롤에겐 남편과 딸이 있지만, 두 사람은 현실의 장벽들을 잊은 채 감정의 격랑에 빠져든다. 테레즈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사랑 앞에 주저하지 않고, 캐롤은 확신에 찬 눈길로 묵묵히 테레즈를 응시한다.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은 두 여자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출발한다는 것, 그리고 이성애든 동성애든 사랑으로 인해 인간은 자유로워진다는 것. 캐롤과 테레즈처럼.

영화는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보수적인 분위기도 담아낸다. 당시만 해도 동성애는 정신병 취급을 받았다. 캐롤의 남편은 이혼 소송에서 캐롤의 성 정체성을 문제 삼아 딸의 양육권을 빼앗으려 하고, 캐롤과 테레즈의 여행에 사설 탐정을 붙여 도청까지 한다. 딸을 포기할 수 없어 테레즈를 떠난 캐롤은 결국 “나를 부정하며 산다면 아이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라며 울부짖는다. 고통을 견뎌내는 캐롤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온다.

‘캐롤’을 보고도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겐 사랑할 자격이 없다.

‘마이 페어 웨딩’(2014)

퀴어영화 ‘친구 사이?’와 ‘원나잇 온리’를 연출한 감독이자 ‘조선명탐정’ 시리즈의 제작자 김조광수와 영화제작사 레인보우팩토리 대표 김승환이 공개 결혼식을 올리기까지의 파란만장한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3년 9월 7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열린 결혼식 타이틀은 ‘김조광수와 김승환의 당연한 결혼식, 어느 멋진 날’이다. 이성애자들에겐 ‘당연한 결혼’이 두 사람에겐 애써 노력해 얻어내야 하는 일이다. 영화는 결혼을 결심한 두 사람이 양가 가족을 만나 가까워지는 과정부터 부모님에게 공개 결혼식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설득하는 모습, 세간의 관심을 모은 결혼 발표 기자회견 등 결혼의 전 과정을 따라간다. 결혼식 행사를 준비하며 서로 다투고 화내고 다독이는 모습이 여느 커플들과 다르지 않다. ‘세상의 모든 결혼엔 용기가 필요하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무척 유쾌하다.

결혼식은 축제였다. 두 사람은 뜨거운 축하를 받으며 혼인 서약을 하고, 하객들을 위해 뮤지컬도 선보인다. 식장에 난입해 욕설을 퍼붓는 이들도 있었지만 ‘당연한 결혼식’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이들의 결혼은 일종의 정치적 투쟁이기도 했다. 동성애자들에게도 이성애자들과 똑같은 법적 권리가 있다는 준엄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이들 부부는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지금도 싸우고 있다. 성 정체성 문제를 찬반 논쟁에 붙인 대선 후보들이 이 영화를 보면 그날의 토론을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싶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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