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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농부’ 루시드폴 “다음엔 꽃씨를 나눌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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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농부’ 루시드폴 “다음엔 꽃씨를 나눌까 싶다”

입력
2017.11.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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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루시드폴이 올 초 과수원에 지은 오두막을 배경으로 8집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16㎡(5평)의 터에 1층은 13㎡(4평), 2층은 29㎡(9평)규모로 지었다. 1층은 창고, 2층은 녹음을 하는 음악 작업실로 쓴다. 안테나뮤직 제공
가수 루시드폴이 올 초 과수원에 지은 오두막을 배경으로 8집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16㎡(5평)의 터에 1층은 13㎡(4평), 2층은 29㎡(9평)규모로 지었다. 1층은 창고, 2층은 녹음을 하는 음악 작업실로 쓴다. 안테나뮤직 제공

‘휴지보다 못한 너희들 종이 사지 않겠어’. 홍익대 인근 인디신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1998년, 록밴드 미선이는 1집 ‘미선이’ 수록곡 ‘치질’에서 일부 주류 언론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꽃다운 밴드 이름과 달리 곡엔 서슬 퍼런 풍자가 가득했다. 밴드의 세 청년들에게 집 문밖에 놓인 특정 신문은 화장실 휴지 대용일 뿐이다. 휴지가 없어 신문을 한 장 찢어 곱게 구긴 뒤 대충 처리(?)를 했더니 결국 탈(치질)이 났단다. 지글대는 기타 연주와 다음과 같이 날린 일갈이 압권이다. “너희들의 거짓말 듣지 않겠어. 단돈 300원도 주지 않겠어, 보지 않겠어”.

당시 300원이던 신문 한 부 값도 아깝다며 사회 비판적인 곡을 썼던 이는 루시드폴(42ㆍ본명 조윤석)이다. 요즘 ‘음악 농부’라 불리는, 그 사내가 맞다.

제주에 살며 통기타로 세상 낭만을 다 길어 올리는 것 같은 루시드폴은 대학생 때 피 끓는 로커였다. “개 같은 세상에 너무 정직하게 꽃이 피네”(‘진달래 타이머’)란 가사처럼 그에겐 반골의 피가 흘렀다.

루시드폴의 삶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스위스로 유학까지 가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딴 그는 2009년 돌연 공부를 접었다.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이처에 논문이 실려 화학 교수가 될 수도 있었던 그는 2014년 후 제주로 내려가 귤 농사를 지었다. 지난달 30일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를 책(예담)으로 엮어 낸 그를 서울 강남구 안테나뮤직 사옥에서 최근 만났다. 앨범 발매 간담회(“과수원의 풀벌레ㆍ새소리 음악에 고스란히 담았어요”ㆍ본보 10월 30일자 28면) 후 이뤄진 두 번째 깜짝 조우였다.

최근 무농약 재배 인증을 받은 루시드폴은 정작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우고 있었다. ‘유기농 농부’가 서울에 올라와서 하는 소소한 ‘일탈’이었다.

루시드폴과 그의 앨범 제목처럼 작고 큰 삶과 음악 그리고 책 얘기를 나눴다. “속이 경상북도 울릉하네요”란 썰렁한 ‘스위스 농담’으로 유명한 그의 넉살을 마주하며.

루시드폴은 CD를 책과 함께 냈다. 곡을 만들며 든 단상을 수필로 엮었다. 팬에게서 받은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썼다. 안테나뮤직 제공
루시드폴은 CD를 책과 함께 냈다. 곡을 만들며 든 단상을 수필로 엮었다. 팬에게서 받은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썼다. 안테나뮤직 제공

-책에 가수를 ‘여행가이드’로 표현했더라. 멜로디로 누군가를 어떤 곳으로 인도하는 개념으로. 당신에게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루시드폴은 소설 ‘무국적 요리’(나무,나무)를 비롯해 마종기 시인과 서간집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문학동네) 등을 출간했다.)

“음악도 창작물이니 큰 의미에선 작가라 볼 순 있지만, 스스로 글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난 싱어송라이터다. 그간 여러 곳에서 기고 제안이 들어왔는데도 모두 고사했다. 물론 예전엔 시인이 되고 싶었다. 노랫말이 불안정하다고 느껴 문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가사를 쓰고 싶은 바람에서다. 어느 순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멜로디 안에 운문처럼 이야기를 담는 게 가장 완성된 형태가 아닐까였다. 음악에 대한 존중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고.”

-1집에 실린 ‘나의 하류를 지나’의 가사는 시에 가깝다. 요즘엔 음악이 이야기를 잃어버린 시대라, 가사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미국 유명 포크 가수 밥 딜런도 노랫말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더 음악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날 잘 몰랐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성장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음악밖에 없더라. 난 문학 소년도, ‘시네마 키드’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를 키운 8할은 음악이었다. 난 문장의 아름다움에 둔감한 편이다. 즐겨 읽었던 그리고 읽는 책도 문학보단 인문, 사회 서적이 많았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보단 산림학자가 쓴 나무 얘기에 끌렸다. 문학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건 마종기 시인의 작품과 일본 농부 작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정도였던 것 같다. ‘유행가 가사처럼’이란 말이 있었잖나. 예전엔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깎아 내리는 시선이 싫었다. 그 분위기에 노랫말에 대한 열등감이 생겼던 것 같다. 이젠 그 틀에서 벗어나 (창작하는 데) 자유롭다. 음악이 (글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가수 루시드폴은 “농부가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안테나뮤직 제공
가수 루시드폴은 “농부가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안테나뮤직 제공

-‘내가 그렇게 동화를 쓰기 시작할 무렵, 그녀(아내)는 동시를 쓰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무언가를 절실하게 써야만 했던 시간이었다’고 썼다. 제주 생활에 위기가 있었던 건가.

“처음(2014)에 제주에 내려가서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으니까. 외국이 아무리 살기 좋다고 해도 환경이 바뀌면 기본적으로 따라오는 스트레스들이 있다. 40년 가까이 도시에 살다 시골로 내려오니 인간 관계를 맺는 방식부터 변해야 했다. 제주에 가니 이웃들 모든 집에 대문이 열려 있더라. ‘어디까지 내 삶을 남과 공유해야 하나’란 고민이 생겼다. 처음엔 이웃들 따라 무조건 오픈하고 살아보자 마음 먹었다. 도시에선 내 공간이 철저히 분리되지 않나. 주거 환경도 직장 환경도. 농사하려면 주고 받는 일이 전제가 돼야 한다. 관계 맺기에 대한 긴장이 쌓이니 어느 순간 우리도 모르게 우울증 같이 게 생겼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 제주 집에 오셨을 때 한 번 운 적이 있다. 제주에 팔삭이란 과일이 있다. 귤과 자몽을 섞은 것 같은 맛이 난다. 원래 색다른 걸 좋아해 이걸 사 놓고 먹었는데, 어머니께선 ‘얘들이 돈이 없어 한라봉을 못 사먹고 이걸(팔삭) 먹나 보다’라고 생각해 서글프셨나 보다. 팔삭 표면이 귤과 비교해 좀 거치니까. 일상의 변화와 오해들이 쌓이면서 힘들었고,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난 멜로디를 떠올리거나 동화를 쓰고 아내는 시를 쓰고 번역을 했다. 우리 나름대로 탈출구였던 거다. 지금은 물론 안정을 찾았고, 이웃 분들에 너무 고맙지만.”

-농사를 인더스트리얼 록음악(금속성의 거친 소리를 강조한 록 음악의 한 장르)에 비유한 게 흥미롭다. 정말 고된가 보다.

“일을 시작할 때부터 전쟁이다. 책에 농사할 때 찍은 사진이 없다. 찍을 시간이 없어서다. 농사하면 밀짚모자 쓰고 목에 수건 하나 두른 뒤 여유롭게 일할 것 같지만, 아니다. 우리 부부가 11월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식 직전까지 귤을 땄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도 귤을 수확했고. 다만, 삶은 단순해졌다. 하루에 해야 하는 일이 정해져 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둘 중 한 명이 밥을 차리면 상대방은 커피를 내린다. 설거지 한 뒤 보현(반려견 이름)이와 산책하러 간 뒤 과수원 일을 하고...”

-제주에서 생활하며 정한 규칙 같은 게 있나.

“음식물 버리지 않기다. 한동안 식당에 안 갔다. 반찬이 너무 많이 남으니까. 처음엔 남은 반찬을 싸 와 집에서 먹었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제주에 내려간 뒤 낸 첫 앨범 ‘누군가를 위한,’(2015)을 귤과 함께 팔았다. 이번엔 책과 함께 CD를 냈고. 다음 앨범은 어떻게 낼지 궁금하다.

“‘꽃씨를 나누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청취자들이 내가 키운 꽃씨로 내 음악을 들으며 집에서 각각 키운 뒤 자라는 모습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 어떨까’하는 상상이다. 음악이 온라인에 꽃처럼 퍼질 것 같았다. 농사를 둘러싼 나를 향한 사람들의 엇갈린 시선을 알고 있다. 음악하면서 농사 짓는다고 하니 ‘취미로 하는 거 아냐’ ‘농부 코스프레 하는 거지’란 말도 있다. 난 허브 하나를 심어도 그 씨를 뿌린 사람은 농부라고 생각한다. 대농이든 나처럼 과수원을 하는 소농이든 농부는 많으면 많을수록 무조건 좋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일구는 일이지 않나. 난 농부라서 자랑스럽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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