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천종호의 판사의 길] 정의(正義ㆍJustice)의 권능(權能)

입력
2017.07.20 14:32
0 0

로마의 법률가 울피아누스가 “정의는 각자에게 그의 정당한 몫을 나누어주려는 변함없고 영원한 의지”라고 하였듯이, 정의란 각자에게 그의 몫에 해당하는 사회적 가치를 분배해 주고, 그 가치를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사회에서는 분배된 가치에 대한 침탈이 발생하기도 하고, 구성원간의 가치의 분배 격차가 심화되어 가기도 한다. 이러한 가치의 침탈과 분배 격차 심화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은 사회적 가치의 적법․공정한 분배라는 정의의 이상에 어긋난다. 이러한 상황을 앞에 두고 정의는 다음과 같은 권능을 행사한다.

첫째, 개인이 보유한 사회적 가치를 배타적으로 누리게 한다. 정의론의 출발점이 되는 권능으로, ‘향유적 정의’라고 하겠다. 이로 인해 각 사람은 생명, 자유, 재산 등 타인에게 분배된 가치에 대해 배려하고 존중할 의무를 진다. 더 가진 자에 대한 사람들의 시기는 막을 길이 없겠으나, 누구에 의해서도 어떤 명목으로도 타인이 보유한 가치에 대한 침탈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에는 정당방위권이나 저항권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는 있으나, 이 경우에도 그 본질적인 내용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가치 침탈이 있는 경우 바로잡게 한다. 이러한 권능을 ‘시정적 정의’라고 한다. 시민들의 삶 속에는 매매대금을 모두 지급받고 약속한 물건을 주지 않거나, 실제 가격에다 수십 배의 이익을 붙여 판매하여 과도한 폭리를 취하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신체나 생명을 해치는 등 사회적 가치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침탈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침탈자에게 면죄부, 다시 말하면 사회적 가치를 침탈해서 향유할 특권을 인정해주는 꼴이 될 뿐이고, 사회를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되돌아가게 만들 수도 있다. 때문에 개인의 자연권 보장을 기치로 하는 근대 법치국가 사상이 정립된 이후로는 이러한 불법과 탈법 행위들로 인한 부정의에 대해 실정법 규정을 통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하지만, 시정적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도 과도한 배상을 하게 하거나 죄와 형벌이 균형을 잃는 등 과잉대응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라는 사회적 가치를 새로이 침탈하는 부정의를 초래하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가치 분배의 격차를 조정하게 한다. 이러한 권능을 ‘배분적 정의’라고 한다. 근대 이후 유럽을 필두로 신분적 평등과 정치적 평등이 이루어졌으나, 경제적 평등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문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고, 이로 인해 인류 진보의 역사를 되돌리는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이라는 연쇄효과까지 발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빈익빈부익부’, ‘소득의 양극화’, ‘수저론’은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는 시대적 용어이다. 가치의 분배체계는 기본적으로는 개별 국가의 실정법 구조에 좌우되므로 분배의 불평등을 해소해 나가기 위해서는 관련법의 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정의관은 분배 규칙의 조정을 어렵게 만든다. 최저임금기준 설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청년수당 지급, 무상급식 실시, 독점과 불공정거래행위의 규제, 역차별의 실시 등 수많은 영역에서 사사건건 대립한다. 특히, 나누어야 할 파이의 크기가 그대로여서 누군가의 양보가 요청되는 경우에는 합의에 이르기가 아주 어렵다. 사실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분배 규칙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사회협동체를 통해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존 롤스의 견해를 수긍한다면 현재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분배체계를 계속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 아닐까?

끝으로, 미래세대 존중 의무를 부과한다. ‘미래세대를 위한 정의’의 문제다. 정의의 보장은 실정법에서부터 출발한다. 실정법은 주권자가 자신에게 내리는 명령이고 다른 주권자와의 관계에서는 약속을 의미하므로, 주권자는 자기명령에 대한 의무와 사회적 약속으로서 법을 지킨다. 하지만 법 제정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세대는 명시적으로 그러한 의무나 약속을 부담한 바가 없고, 단지 그들이 출생 시부터 당해 국가의 국민으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등의 이유로 앞 세대가 제정한 법을 수용(受容)하거나 수인(受忍)할 따름이다. 미래세대가 법을 승인하기 위한 최상의 유보조건은 법의 정의로움에 있다. 분배의 규칙으로서의 법이 정의롭지 않다면 그들은 앞 세대가 제정한 법을 주권자의 명령이나 약속으로서 승인하기 보다는 폭압으로 생각하고 거부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모든 세대의 몫인 희소 자원이나 환경 등과 관련한 분배의 규칙을 정함에 있어서는 미래세대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대못질이나 알박기를 해 두기보다는 그들을 존중하는 뜻에서 그들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