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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난민 이슈와 정치적 대응

입력
2018.07.0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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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한 장의 사진에 세계가 경악했다. 아일란 쿠르디라는 이름의 세 살배기 남자 아이가 모래에 얼굴을 묻은 싸늘한 주검이 된 모습이 찍힌 것이다. 사진은 전란의 공포에서 탈출해 안전한 삶을 갈구했던 시리아 난민의 좌절된 희망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전 세계가 슬픔에 빠졌고 인권을 지켜 내지 못한 책임을 통감했다.

최근 제주 예멘 난민 사태의 전개는 이와 대조적이다. 난민이 처한 불안과 공포에 대한 이해보다 논리와 계산이 앞서는 것 같다. 실현되지 않은 폭력에 기초한 부정적 인식과 한국 제도의 허점을 노렸다는 비난이 지배적이다. 불과 몇 년 전 함께 슬퍼하고 반성했던 경험으로부터의 급격한 변화다.

그러나 난민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 전성기를 맞고 있는 대부분의 극우 정당들은 반이민, 반난민 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다. 헝가리는 난민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반이민 정책을 표방하는 자유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며칠 전 미국 연방대법원은 6개 이슬람 국가와의 왕래를 금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적법하다는 평결을 내렸다. 전 세계가 자국 내 통합을 해칠 수 있는 타인을 봉쇄하는데 혈안이 된 듯하다.

난민에 대한 전 세계적 대응이 이처럼 변화한 데에는 난민유입에 따른 일자리 부족, 잠재적 테러 가능성, 히잡이나 부르카로 상징되는 문화적 이질성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난민이 수용국에 미치는 영향을 엄밀히 검증하기는 매우 힘들지만 모두 무시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유럽의 경험을 볼 때 이러한 변화의 근본적 원인은 기성 정치권의 대응 실패에 있는 것 같다. 난민 문제 해결의 장애가 된 극우 정당의 성장은 난민에 대한 기성 정당의 모호한 태도가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기성 정당 입장에서 난민 이슈에 대한 명시적인 정책적 입장은 언제 있을지 모를 난민과 수용 국민 간 갈등의 책임을 수반하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반면 극우 정당은 이와 같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기성 정당의 소극적 태도를 파고들었다고 볼 수 있다. 기성 정당이 난민에 대한 올바른 사회적 인식을 정립하는데 주저할 때, 난민은 위험한 집단, 봉쇄해야 하는 집단이라는 편협한 인식을 유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한국은 지금 사회 전체적으로 난민 이슈를 고민할 초기 단계에 진입해 있다. 일단 법무부의 발 빠른 대응으로 제주 난민에 대한 사회적 불안은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조치와는 별개로 정당과 정치인들이 난민에 대한 장기적인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쏟을 시점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정당들이 유럽 기성 정당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책적 책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수록 난민과 같이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적 이슈는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국제적으로 한국 사회는 봉쇄와 개방 가운데 어떠한 미래를 지향할 것인지, 국내적으로 난민이 일자리, 안전, 문화적 동질성 등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지와 같은 이슈를 포함한 포괄적 논의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한국 정당과 정치인들의 난민 문제에 대한 대응은 미비하다. 주요 정당들은 난민과 관련된 공식 논평이나 구체적인 정책적 입장을 내세우지 않고 있다. 사회적 현안에 대한 유권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정당의 역할을 찾아보기 어렵다. 유럽연합 정상들은 최근에서야 ‘합동난민센터’ 설치라는 공동 대응책을 마련했다. 그동안 다양한 대응 방안이 모색됐으나 기성 정당들의 주도권 상실로 인해 이제야 실질적인 합의안을 만든 것이다. 난민 이슈에 대해 고민하는 한국 정당들이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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