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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자유 영웅’ 무가베의 몰락

입력
2017.11.22 17: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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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이나 짐바브웨를 철권 통치해 온 세계 최고령(93세)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마침내 권좌에서 물러났다. 젊은 시절의 무가베는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존경을 받던 ‘자유의 영웅’이었다. 영국 런던대학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인텔리인 그는 영국계 소수 백인이 통치하던 로디지아 정부에 맞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연합의 최고 지도자로서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게릴라 투쟁을 벌였고, 10년 옥살이도 했다. 젊은 무가베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존경은 이 같은 헌신적인 독립운동에서 비롯했다.

▦ 신생 독립국가에서 추앙받던 독립영웅이 종신집권 독재자의 길을 걷다 국민에게 버림받고 몰락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19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짐바브웨의 초대 총리가 된 무가베도 그 같은 불행한 길을 걸었다. 무제한 연임이 가능한 제왕적 대통령으로 말을 갈아탄 그가 잇단 실정과 부패, 사치를 일삼아 짐바브웨를 세계 최빈국으로 떨어뜨리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국민은 굶주리는데 초호화 별장과 쇼핑, 수백만 달러를 들여 생일 잔치를 벌이는 등의 기행으로 지구촌에 웃음거리를 선사했다.

▦ 무가베와 북한 정권의 유난스러운 관계도 잘 알려져 있다. 무가베는 짐바브웨 독립 전부터 1990년 중반까지 북한을 8차례나 방문해 김일성과 친분을 쌓았다. 그는 수령에 대한 절대적 숭배를 이끌어내는 북한 체제와 통치 방식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고, 이를 자국에서 재현하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북한은 그동안 짐바브웨에 각종 무기를 지원했고, 군사 교관도 파견하는 등 다방면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무가베 축출로 북한은 아프리카에서 주요 거점 하나를 잃은 셈이다.

▦ 중국도 북한 못지않게 무가베 정권을 직간접적으로 도와왔다. 내정불간섭을 앞세워 독재 정권에 눈감고 경제적 실리를 취했던 것이다. 2015년에는 온갖 논란을 무릅쓰고 제 6회 공자평화상 수상자로 무가베를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 중국이 무가베를 축출한 군사 쿠데타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친중파인 음낭가과 전 부통령이 권력을 이어받는 것을 조건으로 쿠데타를 묵인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제 3국에서 이런 방식의 정치 개입을 금기시해 왔던 중국이 짐바브웨 군부의 쿠데타를 지원한 게 사실이라면 스트레스를 받을 나라가 또 있을 것이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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