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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종섭의 ‘곡학아세’

입력
2016.05.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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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자인 정종섭 새누리당 당선자는 유신시대 법대를 다니면서 헌법의 정당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유신헌법의 정당성에 동원된 독일 헌법학자 카를 슈미트의 결단주의 이론을 비판하던 소장학자인 허영 교수를 좇아 경희대로 대학원을 옮긴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토론회에서 “법률지식과 이론을 동원해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학자의 도리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종섭은 지난해 행정자치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는 태도가 달라졌다. “5ㆍ16이 쿠데타가 맞느냐”는 질문에 “여기서 말하기 적절치 않다”고 모호한 답변을 늘어놓다가 손가락질을 받았다.

▦ 헌재 연구관, 서울대 법대 학장, 헌법학회장을 역임해 누구보다 헌법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냈다. 제주 4ㆍ3 사건을 ‘공산주의자 세력의 무장봉기’로 비하하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해 “시대착오적 이념타령으로 나라를 망쳤다”고 했다. 학자로서의 보수적 견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후 보여준 권력 추종 행태는 개탄스럽다. 새누리당 행사에 참석해 ‘총선 필승’ 건배사를 해 파문이 일었고, 총선 불출마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했다. 선거운동 기간에는‘진박 후보’답게 박근혜 대통령을 ‘예수’에 비유하며 “피를 흘리며 예수가 십자가를 지듯 어려운 언덕을 오르고 있다”고도 했다.

▦ 지난해 유승민 원내대표가 축출된 국회법 파동 당시 행자부 장관인 정종섭은 학자의 소신마저 팽개쳤다. 자신의 저서 ‘헌법학원론’에 ‘대통령이 위법인 대통령령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경우 탄핵 소추할 수 있다’고 쓴 데 대해 의견을 묻자 침묵을 지켰다. 그는 이번에 국회 청문회 활성화법이 논란이 되자 위헌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5년 유사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공청회에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밝힌 사실이 드러나 구설에 올랐다.

▦ 정 당선자가 기자회견까지 자청한 것은 거부권 행사를 놓고 고민하는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다. 평생을 노력해 이룬 학문적 성과는 권력 앞에서 잡설이 됐다. 소신이나 철학 없이 세상이나 권력에 아첨하는 것을 ‘곡학아세(曲學阿世)’라고 한다. 값싼 지식인의 뒤틀린 지식은 세상을 어지럽힌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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