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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의 神軍' 영원히 죽지 않는 망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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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의 神軍' 영원히 죽지 않는 망령인가

입력
2014.08.1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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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 필드 지음ㆍ박이엽 옮김

창비ㆍ404면ㆍ1만7,000원

전쟁의 참화에 눈을 감으면서도 군국주의에 강한 향수 느끼는 일본

히로히토 죽어 가던 1988년 배경

우익에 대항한 3인의 일화 통해 日 국민들의 깊은 의식을 읽어내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가자 가자 신군’(1987)은 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이었던 오쿠자키 겐조의 행적을 좇는다. 천황을 신으로 여겼던 오쿠자키는 뉴기니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뒤 천황제에 강한 회의를 품었다. 생업을 등한시한 채 천황의 이름으로 전시에 저질러진 범죄를 조사했다. 어느 날 오쿠자키는 종전 직후 뉴기니에서 탈영죄로 총살당한 두 일본 병사의 사연을 접한다. 죽은 병사들의 옛 동료와 상관을 만나 총살 뒤에 숨겨진 끔찍한 비밀을 알아낸다. 부대 내 식량이 떨어지자 부대원들이 가장 허약하고 계급이 낮았던 두 사람을 제물로 삼은 것이었다.

오쿠자키는 총살을 주도한 상관을 찾아가 죄를 추궁하나 당사자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관의 얼굴 위로 일본 정부의 모습이 겹친다. 일본 제국주의가 낳은 갖은 참화에 곧잘 눈을 감으면서도 군국주의에 강한 향수를 느끼는 현대 일본인의 이중적 심리를 ‘가자 가자 신군’은 고발한다.

열도에 우경화 파도가 거세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동학혁명 등으로 요동치던 19세기말 동아시아의 모습이 현 정세와 닮은꼴이라는 주장도 심심찮다. 전쟁 책임을 외면하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이 지역의 주요 위협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도 분석이 나온다.

일본 우익은 현인신 천황을 중심에 둔다. 천황에 대한 일본인들의 뿌리 깊은 인식을 알아야 국민의식 저변에 깔린 군국주의의 근원을 가늠할 수 있다. 일본인의 심리를 읽기에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가 적합하다. 히로히토 천황이 병상에서 겨우 생명을 이어가던 1988년을 배경으로 천황 국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가 곤경에 처한 세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우경화의 망령에 깃든 일본의 현실을 파헤친다.

1987년 일본 오키나와의 슈퍼마켓 여주인 치바나 쇼오이치는 일본 국민체육대회(한국의 전국체전) 개막 전날 소프트볼 경기장에 들어간다. 그리고 게양돼 있던 일장기를 내려 불태운다. 치바나가 경찰의 조사 뒤 재판을 받는 동안 일본 우익의 살해 협박에 시달린다. 슈퍼마켓에 방화가 있었고 손님의 발길은 뚝 끊긴다. 주민들은 치바나를 외면하고 가족까지 바깥 출입에 애를 먹는다.

책은 일장기를 불태울 수 밖에 없었던 치바나의 개인사를 파고들며 오키나와의 아픈 과거를 소개한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일장기 아래에서 오키나와가 열도의 최후 저지선 역할을 하며 벌어진 집단 자결과 학살의 실상이 전해진다. 17세기에 일본에 강제 병합됐던 오키나와는 천황을 앞세운 일본 군국주의의 애꿎은 피해자였다. 책은 피해자들의 처절한 과거를 들추며 일본 군국주의의 허상을 제시한다.

1988년 천황의 전쟁 책임론을 거론한 모토시마 히토시 나가사키 시장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모토시마는 치바나처럼 우익의 공격을 받는다. 거센 항의와 살해위협이 이어진다. 1990년엔 저격까지 당한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자위대 출신 남편을 둔 나카야 야스코의 이야기도 군국주의 논리가 여전히 작동하는 일본의 현실을 비춘다. 기독교 신자인 나카야는 남편이 호국신사에 강제 합사되자 소송을 제기하나 대법원 패소 판결을 받는다.

책은 1991년 첫 출간됐고 2011년 재출간됐다. 국내에서는 1995년 번역 출판됐고 최근 개정판이 발간됐다. 저자는 일본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천황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일본 사회를 매우 가까이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20년 넘게 묵은 책이나 담고 있는 내용은 여전히 서늘하고 오히려 더 현실을 직시한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패전일인 15일(현지시간) 일 군국주의 상징인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서 옛 일본군 복장을 한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광복절이자 일본의 패전일인 15일(현지시간) 일 군국주의 상징인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서 옛 일본군 복장을 한 사람들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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