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입력
2017.03.28 17:25
0 0

잠시 세상일에 눈과 귀를 닫아두고 있었다.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친구를 대신해 그가 이승에 남긴 생의 이력들을 정리하거나 혹여 누가 될 만한 일이 있는지 살피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여기에 집중하느라 얼마 동안은 외부의 소식들에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 즈음 도통 잠마저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밤잠을 청하고 깨어난 지난 23일 아침, 나는 난데없이 들려온 소식에 놀라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난 3년간 바람만 가졌을 뿐 거의 불가능하다 싶었던 일이 하룻밤 사이에 떡 하니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밤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세월호가, 세월호가 물 위로 올라와 있다니! 더없이 기다리고 고대하던 상황이었음에도 느닷없이 벌어진 상황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인양을 준비하는 척 시늉이나 하던 정부의 발표들에 몸서리를 쳐왔던 터였다. 이렇게 하룻밤이면 충분히 가능했을 일을 대통령이 탄핵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서두르는 꼴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의 그 처연한 형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같은 날 원주 하늘에 나타났다는 리본 모양의 구름 형상까지 더해지면서 더 한층 숙연한 감정이 일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온 신경을 두들기며 새로운 소식에 집중했다.

무려 1073일 동안 검은 바다에 잠겨 있던 세월호는 참사가 벌어진 형상 그대로 옆으로 누운 채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그 거칠다는 진도 앞바다 아래에서 녹슬고 찢겨진 선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처절했다. 학생들이, 또 다른 승객들이 손이 부서져라 두들겼을 사각 유리창들이 제일 아프게 눈에 꽂혔다. 눈으로 보면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엉성한 사회체제에 순응하고만 기성세대의 한 구성원으로서 나는 책임이 없다며 물러설 일이 아니었다.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여태 뭍에 오르지 못한 미수습 희생자 아홉 명의 선연한 얼굴들도 하나하나 타는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이제 그들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을 것인가. 모두 유실 없이 돌아오길 비는 동안 내 일인 양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나 자신조차 이러할진대 유가족들의 심정은 가히 가늠하기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일뿐이다.

세월호가 반잠수식 선박 위로 오르고 다시 뭍을 향하는 과정이 이어지는 내내 살피고 또 살피는 중이다. 또다시 진실을 가리는 건 아닌지, 어떤 후속조치들이 뒤를 이을지 관련 소식들까지 빠짐없이 듣고 또 듣는다. 새까맣게 타 들어가던 속내가 다소 안정을 찾기는 했지만 진실의 문이 열리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그저 진실이 완전히 밝혀질 때까지 눈과 귀를 열고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만이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다.

얼마 전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지하철역을 나와 광화문 광장을 향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 18개월 째 생을 살고 있는 딸아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늘 찾던 이곳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뚱거리는 몸짓으로 광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아내는 행여 넘어질까 온 신경을 담아 아이의 바로 곁을 지켰다. 연대와 공감의 상징이 된 광화문 광장에서 나는 살짝 달아오른 감동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삶이 행복을 향한 걸음이라 할 수 있다면 이 소박한 일상의 풍경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었다. 늘 눈과 귀를 열어놓고 이 삶을 지키고 싶다. 더불어 어느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도 눈과 귀를 닫지 않겠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