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깃발 없는 선수들, 리우에서 희망의 상징 될까

알림

깃발 없는 선수들, 리우에서 희망의 상징 될까

입력
2016.07.30 02:39
0 0

[세계는 지금] 올림픽 난민 대표팀

유스라 마르디니. AP 연합뉴스
유스라 마르디니. AP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유스라 마르디니(18)는 언니 사라와 함께 시리아 다마스쿠스를 떠났다. 레바논 베이루트,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난민들이 그리스로 향하기 전 머무는 이즈미르 해안에 이른 자매는 그리스 레스보스로 건너가는 소형 모터보트를 탔다. 6~7명 정원인 보트에 20명이 탔으니 모터는 30분이 지나 멈춰버렸고, 배는 뒤집힐 위기에 처했다. 이 때 마르디니 자매와 다른 여성 1명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세 사람은 배를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밀며 마침내 레스보스 섬에 다다랐다.

올해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스라 마르디니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수영선수입니다. 바다에서 물에 빠져 죽는다면 억울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배에 탄 모두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바다 수영을 끔찍이 싫어한다고 말했다. 목숨을 건 수영이 결코 유쾌한 기억일 리 없다. 더구나 그에게 걸렸던 목숨은 자신뿐이 아니라 보트에 탄 20명 모두의 목숨이었다.

유스라 마르디니는 2012년 이스탄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 시리아 대표로 참가했던 선수다. 언니 사라 역시 시리아에서 국가대표급 실력으로 평가됐다. 두 선수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불안정한 조국 현실에서 국제무대에 출전하기 위해 망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언니 사라가 시리아에 남은 가족들을 독일로 데려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동생 유스라에게는 기회가 찾아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역사상 최초로 ‘난민 대표팀’을 결성해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참가시키면서 그 일원으로 유스라를 선발한 것이다.

남수단 출신 난민 대표팀 선수들은 대개 케냐 난민촌에서 성장했다. 파울로 아모툰 로코로(왼쪽부터), 로즈 나티케 로코니엔, 이에크 푸어 비엘, 안젤리나 나다이 로할리트, 제임스 니앙 치엥지엑. 로이터
남수단 출신 난민 대표팀 선수들은 대개 케냐 난민촌에서 성장했다. 파울로 아모툰 로코로(왼쪽부터), 로즈 나티케 로코니엔, 이에크 푸어 비엘, 안젤리나 나다이 로할리트, 제임스 니앙 치엥지엑. 로이터

난민촌에서 탄생한 난민 대표팀

마르디니를 비롯해 시리아, 남수단, 에티오피아,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3개 종목 10명으로 구성된 난민 대표팀은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를 역설한 창설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이상에 걸맞은 팀이라 할 수 있다.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세계적 난민 위기에 직면해 우리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난민 대표팀을 결성했다고 밝혔다.

난민 대표팀을 구성하자는 아이디어는 2013년부터 시작됐다. 케냐의 마라톤 챔피언 테글라 로로우페의 이름을 딴 ‘테글라 로로우페 평화재단’은 케냐 내 카쿠마와 다다브 난민촌에 머무는 남수단 난민들을 위한 육상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은 수도 나이로비 근교 은공 언덕에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로로우페 재단에서 남수단 난민들을 별도 국가 단위의 팀으로 출전시킬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은공 훈련장에 모인 선수들은 IOC가 난민 대표팀을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에크 푸어 비엘(21)은 불과 1년 만에 모든 선수들이 선망하는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다. 2005년 10세 때 집도 가족도 잃은 채 카쿠마 난민촌으로 흘러들어왔던 비엘에게는 이렇다 할 꿈도 없었다. ‘한 번 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던 육상으로 인해 인생의 대전환기를 맞이했다.

7월 9일 케냐 나이로비 근처 훈련장에서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훈련 중인 남수단 선수들. 로이터
7월 9일 케냐 나이로비 근처 훈련장에서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훈련 중인 남수단 선수들. 로이터

난민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은 난민 뿐

‘난민 대사’를 자처하는 비엘은 이제 책임감을 이야기한다. 비록 국가(國歌)도 국기도 없이 올림픽 주제가를 배경으로 올림픽기를 들고 개막식에 입장하지만, 유엔난민기구(UNHCR) 통계에 따르자면 전세계 122명 중 1명이 난민이다. 비엘은 이들을 대표해야 한다. “이제 모든 난민들이 우리(선수단)를 지켜보며 ‘당신들이 우리를 대표한다’고 말합니다. 금메달을 얻지 못한다 해도 세상에 우리가 살아 있음을 증명할 겁니다.”

난민 출신 선수가 올림픽에 등장한 것이 최초는 아니다. 하지만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는 난민 대표팀의 특별한 점은 실질적으로 난민이란 이름 아래 별도의 팀이 구성됐기 때문이다. 메달 숫자도 이들을 위해서만 별도로 집계된다.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중심으로 운영되는 올림픽에서 국가단위 경쟁의 틀이 팀 기획단계에서부터 깨진 것은 최초다. 구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직후 12개국 선수들이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과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에 ‘연합팀’이란 이름으로 출전한 적은 있지만 각국에 NOC가 수립되지 않은 과도기였기에 등장한 임시 팀일 뿐이었다.

난민 대표팀은 어느 국가도 아닌 ‘난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대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남수단 선수들은 대부분 집과 가족을 모두 잃고 유년기를 케냐에서 보냈기에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기 어렵다. 비엘은 “(난민촌에는) 음식도 약품도 부족했다”며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은 오로지 같은 난민 선수만이 대변할 수 있고, 난민 대표팀만이 난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유도선수 욜란데 마비카(왼쪽)가 동료 포폴레 미셍가와 6월 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난민팀의 출범을 공식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로이터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유도선수 욜란데 마비카(왼쪽)가 동료 포폴레 미셍가와 6월 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난민팀의 출범을 공식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로이터

과도한 관심으로 압박 우려… ‘미래’ 논의도 필요

난민 대표팀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유스라 마르디니는 현재 700회 이상의 언론 인터뷰를 거절했다. 다른 시리아 출신 수영선수 라미 아니스는 “시리아에서 탈출할 때 과거를 잊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 모두가 그 순간을 되살릴 것을 요구한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다문화 스포츠 전문연구자인 로버트 싱케 캐나다 로렌티안대 인간운동학 교수는 카타르 보도전문TV 알자지라에 “모든 선수들이 올림픽 등 큰 대회를 앞두고 언론의 조명에 시달리지만 난민 대표팀은 특히 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에 나선 언론이 난민 선수의 문화적 배경이나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도발적인 질문을 던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난민 대표팀의 불확실한 미래 역시 걱정거리다. IOC는 “올림픽 이후에도 난민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있진 않다. 현 단계에서 다음 올림픽인 평창 동계올림픽이나 도쿄 하계올림픽에 난민 대표팀이 출전한다는 보장도 없다. 싱케 교수는 “정신적 고점(高點)이 되는 세계대회 출전 후 선수들에게는 재조정 기간이 필요하다”며 “난민 선수단의 미래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마치고 이들이 ‘재조정 기간’을 보낼 장소는 있을까? 적어도 케냐에 머무는 남수단 난민들의 운명엔 물음표가 찍혀있다. 남수단에는 내전이 재발했고, 케냐는 난민촌 폐쇄를 시사하고 있다. 난민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국제앰네스티 나이로비지부의 빅터 니아모리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남수단 난민에 대한 지원금 모금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라며 “난민 대표팀이 남수단 난민들에 무관심한 국제사회에 주의를 환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난민팀 지지를 호소하는 영상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