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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규제 길 잃은 미국, 65만정 수거해 사고 확 줄인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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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규제 길 잃은 미국, 65만정 수거해 사고 확 줄인 호주

입력
2015.09.1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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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총기난사 전철 밟지 않겠다"

하워드 총리, 1996년 개혁 추진

환매·불법 총기 반납 때 면책 병행

7년간 자살 57%·총기살인 42% 급감

미국은 총기협 벽에 번번이 좌절

대부분 공화당 대선주자 규제 반대

호주의 총기 환매 정책으로 수거된 총기를 관계자가 살펴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호주의 총기 환매 정책으로 수거된 총기를 관계자가 살펴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당신은 언제나 지금이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 생각해왔다. 개비가 총에 맞았을 때, 뭔가가 일어날 거라고. 샌디 훅 사건이 발생했을 때, 뭔가가 벌어질 것이라고. 오로라 사건이 일어났을 때, 뭔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그러나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달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생방송 도중 피살된 지역 방송국 WDBJ7의 리포터 앨리슨 파커(24)의 아버지 앤디 파커가 CNN과의 인터뷰에서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벌어진 미국의 참혹한 총기 난사 사건들을 언급하며 사건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2011년 1월 애리조나주에서 개브리엘 기퍼즈(43) 전 연방하원의원이 현직 의원이던 당시 쇼핑센터에서 관자놀이에 총을 맞은 사건과 2012년 12월 코네티컷 주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로 어린이 20명을 포함한 28명이 사망한 일을, 그리고 2012년 7월 콜로라도주 오로라 쇼핑센터 인근 극장에서 영화 상영 중 발생한 총기 난사로 12명이 사망한 사건을 거론했다. 이 사건 들은 모두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총기 규제 논의를 촉발시켰으나, 번번히 미국 총기협회(NRA)의 방해 공작에 실패로 돌아갔다.

미국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개인 총기 보유율이 높다. 국제무기조사기관 ‘스몰 암스 서베이’의 2007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 100명중 89명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으며 이는 2위인 예멘에 2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지난해 퓨리서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가정 중 34%가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기 소지율이 높은 만큼 총기로 인한 사망률도 세계 최고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지난달 26일 칼럼에서 “미국 역사에서 발생한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보다 1968년 이후 총으로 인해 사망한 미국인 숫자가 더 많다”며 “미국 어린이들이 다른 선진국 어린이들보다 총으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이 14배나 높다”고 지적했다.

1996년 방탄조끼를 입은 존 하워드 당시 총리가 빅토리아수 세일에서 총기 찬성 시위를 벌이고 있는 총기 소유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6년 방탄조끼를 입은 존 하워드 당시 총리가 빅토리아수 세일에서 총기 찬성 시위를 벌이고 있는 총기 소유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호주에서 총기사망률이 줄어든 이유

미국에서 총기 규제 강화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총기소유 옹호론자들은 “총을 쏜 사람의 문제지 총은 무죄”라는 논리로 맞서왔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1996년 강력한 총기 수거정책을 펼쳐 총기 사망자와 자살자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호주의 총기규제 역시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1996년 4월 마틴 브라이언트(28)가 남부 타즈마니아섬 관광지의 한 카페에서 반자동 소총을 난사해 35명이 사망하고 28명이 다친 사건이 발생했다. 존 하워드 당시 총리(이후 총리로 표기)가 중도우파 연립정부를 구성한지 약 6주가 됐을 무렵이었다. 이 사건을 조사한 하워드 총리와 정부는 호주에 너무 많은 총기가 유통되고 있으며 총기를 얻는 과정도 너무나 쉽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워드 총리는 2013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나는 총리가 갖고 있는 권한을 사용해 무고한 시민 35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기 소유와 사용을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임을 역시 알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하워드 총리는 사건 발생 12일만에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전국적인 총기법 개혁안인 전국 총기 협약(National Firearms AgreementㆍNFA)을 발표하고 각 주와 준주 정부의 동의를 얻어 신속하게 행동에 나섰다. NFA는 전국적으로 합법적인 개인 총기소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협약으로, 국가 내 모든 총기를 등록하고, 총기 구입시 허가를 받도록 규정했다. NFA는 또 자동ㆍ반자동 소총과 산탄총 소유를 완전히 금지했는데, 정부는 이미 사용되고 있는 총기를 수거해야 하는 난제에 부딪쳤다.

사건 발생 약 5개월만인 1996년 10월부터 1년간 호주 정부는 두 차례 걸쳐 강력한 총기 수거 조치를 실행했다. 정부는 시장가격을 감안한 가격을 총기 소유자에게 지불하고 총기를 수거하는 환매 정책을 펼쳤다. 또 불법으로 총기를 소유했던 사람이 총기를 반납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유화책도 함께 구사했다. 환매를 통해 수거된 총기를 포함해 불법으로 규정된 총기 65만정이 수거돼 파기됐다.

이 정책이 시행되자 총기 소유 옹호자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하워드 총리는 전통적으로 총기 소유 옹호자들이 지지하는 보수진영이었기 때문에 지지율 하락이 심각했고, 당시 베트남전 반대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인 약 7만명이 멜버른에서 법안 반대 집회를 열었다. 하워드 총리가 총기 소유 옹호자들을 설득하러 나설 때면 방탄조끼를 착용할 정도였다. 그러나 호주 국민 대다수가 이 개혁안을 지지했으며 총기 개혁의 효과가 가시화되면서 반발은 점차 수그러들었다. 한 학술연구는 이 총기 환매 정책을 통해 호주에서 개인 소유 총기의 20%가 수거돼 파기됐다고 발표했다. 이후 18년간 호주로 수입된 총기의 숫자도 이 당시 줄어든 총기 숫자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NFA가 성공적으로 실행되자, 호주 내 자살률과 살인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책 시행 이후 7년간 호주에서 총기를 이용한 자살은 그 이전과 비교해 평균 57% 감소했다. 총기를 이용한 살인도 약 42%나 줄었다. 이미 호주에서 살인율이 감소추세였다는 것을 감안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수치다. 2011년 NFA 시행 후 호주의 자살률 및 살인율을 조사한 하버드대 다니엘 헤멘웨이와 메리 그리니오티스는 “NFA가 자살률 및 살인율을 낮추는데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1915년~2004년까지 살인율 변동에서 NFA 시행 직후 2년간 살인율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으며, 특히 인구대비 총기 환매율이 높은 주의 총기 사망자 숫자가 총기 환매율이 낮은 주보다 더 큰 폭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총기 구매자 신원 확인 강화도 힘든 미국

반면 미국에서는 호주와 같은 권총 매매 금지는커녕 총을 사기 위한 신원 확인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것조차 거센 반대에 부딪쳐 실행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2012년 12월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총기 규제 입법화의 가장 큰 기회였다. 어린이 20명 등 28명이 사망한 참사에 총기 규제 강화 여론이 크게 반등했고, 미국 상원은 총기 거래자에 대해 예외 없는 신원ㆍ전과 조회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초당파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2013년 4월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피하는데 필요한 60표조차 얻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버지니아 총격 사건이 발생하기 약 한 달 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총기규제 입법화 실패를 임기 중 가장 뼈아픈 좌절로 꼽기도 했다.

미국의 총기 규제 법제화는 총기 구매 전 경찰의 배경 조사를 받도록 하는 ‘브래디 법안’이 1993년 통과된 후 큰 진전이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 법안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에서 크게 부상을 입은 후 총기규제 운동가로 변신한 제임스 브래디 전 백악관 대변인의 이름을 땄다. 당시에도 총기 소유 옹호자들은 경찰의 배경조사가 합법적으로 총을 산 이들의 편의성을 침해한다며 크게 반발했었다.

현재 대부분의 공화당 대선주자들은 총기 규제에 반대하고 있다. 공화당 내 지지율 1위인 도널드 트럼프는 버지니아 총격 사건과 관련 살해범 베스터 리 플래내건을 겨냥해 “그는 일반 대중에게 재앙과 같은 인물이다, 거대한 증오와 적대감으로 뭉쳐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총기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건강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다른 공화당 주자들도 마찬가지다. 올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교회에서 백인청년이 9명의 흑인 신도를 총기로 살해한 사건 뒤에도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과 랜드 폴 상원의원(캔터키)은 무기 소유 권리를 옹호하고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는 거꾸로 총기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법안에 서명하는 등 몰지각한 행보를 보여 규탄을 샀다. 그로부터 두 달 만에 버지니아주에서 또 총기 사건이 발생했지만 공화당 대선 주자들은 대부분 트위터에 희생자를 애도하는 글만 올릴 뿐 총기 규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생방송 도중 딸이 총에 맞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아버지 앤디 파커는 총기 규제 강화 운동에 투신할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NRA의 눈치를 보며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는 정치인들을 맹비난했다. 그는 지난달 27일 CNN에 기퍼즈 전 하원의원의 남편 마크 켈리와 총기 규제 활동을 벌여 온 마크 워너 민주당 상원의원, 총기규제 지지단체 ‘에브리타운’을 후원하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히며 “(총기 소유 권리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2조를 지지하지만, NRA의 호주머니 안에서 겁쟁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정치인들을 끌어내 더 이상 미치광이들이 총에 손댈 수 없게끔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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