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책과 세상] 내륙 아시아를 제패한 청 제국의 상징, 열하

알림

[책과 세상] 내륙 아시아를 제패한 청 제국의 상징, 열하

입력
2018.06.01 04:40
21면
0 0
열하피서산장도. 황제가 머무는 중앙 행궁을 중심으로 왼쪽 위부터 들어선 건물들이 나한당, 수상사 등의 사찰이다. 한족의 명나라 뿐 아니라 내륙 아시아의 각국을 제패한 다민족 제국으로서 청의 위상을 드러내는 공간 연출이다. 너머북스 제공.
열하피서산장도. 황제가 머무는 중앙 행궁을 중심으로 왼쪽 위부터 들어선 건물들이 나한당, 수상사 등의 사찰이다. 한족의 명나라 뿐 아니라 내륙 아시아의 각국을 제패한 다민족 제국으로서 청의 위상을 드러내는 공간 연출이다. 너머북스 제공.

청 황제는 열하(熱河)로 피서를 간다.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는, 피서지로 청 황제를 찾아간 기록이다. 그 시절 이미 지구온난화라서 북경의 여름이 더웠나 싶지만, 속사정은 따로 있다.

만주족의 상징은 활, 곧 수렵생활에서 나온 전투력이다. 입관, 그러니까 명 정복 이후 100만명의 만주족이 산해관 안쪽 중국 땅으로 이동해간 뒤 북경에 50만명, 지방 요충지에 50만명이 배치됐다. 중국 땅에서도 전투력을 잃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만든 게 사냥터, ‘무란위장’이다. 이전 한족 황제들도 사냥터를 만들었으나 고급 오락 수준이었다. 청은 5만명의 군사를 동원해 몇 백리, 몇 천리에 걸쳐 사냥토록 했다. 사냥을 빙자한 군사훈련이자 무력시위다.

왜 열하였던가. 대규모 병력이 기동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하나의 이유였다면, 다른 이유는 지정학이었다. 건륭제(1711~1799) 80세 생일 축하사절로 열하를 찾았던 유득공(1749~1907)이 간파했듯, 열하는 “동으로 요동과 통하고 서로 이슬람과 통하며, 북으로는 몽고를 제압하고, 남으로는 천하를 제어”하는 위치에 있었다. 열하는 시원한 피서지도, 황제의 군사훈련장도 아니다. 만주족이 사방 이민족을 제압했음을 만천하에 과시하는 공간이었다.

‘북경의 청 황제’가 ‘한인(漢人)들의 황제(皇帝)’를 상징한다면, ‘열하의 청 황제’는 ‘한인들의 황제’이자, ‘만주족의 한(汗)’이자, ‘몽고인의 카간(可汗)’이자, ‘티베트인의 차크라바르틴(전륜법왕ㆍ轉輪法王)’임을 드러낸다. 한족 이외 내륙 아시아 전역을 제패한 다민족 제국이라는 청의 위상은 열하 주변에 조성한, ‘외팔묘’라 불린 12개 대형사찰에서도 잘 드러난다. 준가르 등 내륙 아시아 국가를 복속시킬 때마다 기념이나 축하의 의미에서 사찰을 하나씩 만드는데, 이 사찰들의 존재 자체가 ‘다민족 제국 청’을 웅변한다. 신해혁명 이후 ‘만주족이 중국을 말아먹었다’는 한족의 공세 속에 이런 사실은 잊혀졌다. 정작 만주족이 만들어낸 ‘내륙 아시아 제국으로서의 중국’은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면서 말이다.

만주족이야기

이훈 지음

너머북스 발행ㆍ460쪽ㆍ2만6,500원

저자는 “글 솜씨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지만 웹진 연재 글에서 출발한 책이라 통사 형식보다 대중적이고, 그 덕에 만주족을 부각시키는 신청사(新淸史)가 더 가깝게 와 닿는다.

참, 청 황실의 성씨 ‘아이신기오로’을 한자음으로 표기한 ‘애신각라(愛新覺羅)’를 두고 청이 신라와 관계 있다는 둥 하는 얘기가 아직도 있다. 저자 설명은 이렇다. 아이신은 금, 기오로는 누루하치가 만든 성씨다. ‘아이신기오로’는 ‘위대한 기오로 집안’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적당하다. 위대한 것을 금이라 표현하는 건 북방민족의 오랜 관습이다. 또 만주족의 발원지가 장백산(백두산)이란 신화를 두고도 저자는 그 장백산이 실은 백두산과 1,000㎞나 떨어진 북쪽에 위치한 ‘부쿠리산’이며, 40~50여 년에 걸쳐 부쿠리산과 장백산을 교묘하게 뒤섞어버린 청 황실의 ‘역사공정’이 있었음을 지적해뒀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