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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호프(Hope) 다이아몬드 (11.10)

입력
2017.11.10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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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호프 다이아몬드가' 1958년 오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소장품이 됐다.
비극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호프 다이아몬드가' 1958년 오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소장품이 됐다.

미국 뉴욕의 보석상 해리 윈스턴(Harry Winston, 1869~1978)이 1958년 11월 10일, 다이아몬드 한 점을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측이 연구 및 영구 전시를 위해 기증해달라고 청하자 상인인 그가 흔쾌히 응했다는 것도 이채롭지만, 그 보석을 U.S메일 등기소포로 보낸 것도 흥미롭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격의 45.52캐럿(9.104g)짜리 그 블루 다이아몬드를 보내며 그가 들인 돈은 145.29달러(우표값 2.44달러와 보험료)였다고 한다. ‘왕의 보석’ ‘프랜치 블루’ ‘저주의 다이아몬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전설 같은 온갖 이야기를 품은 ‘호프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스미스소니언의 명물 소장품이 됐다.

11억년 된 그 보석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처음 손에 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 1666년 프랑스 보석상 장 밥티스트 타베르니(Jean-Baptiste Tavernier)가 그 보석을 지녔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그가 사들였는지 훔쳤거나 강탈했는지도 확인된 바 없다. 17세기 인도의 한 농부가 112캐럿(약 22g) 원석을 캐냈다가 페르시아 정복군에게 목숨과 함께 빼앗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그 보석을 사서 67.5캐럿 크기로 세공해 대물림 했지만, 프랑스 혁명 직후인 1792년 도둑맞았다. 보석을 지녔던 루이 15세의 애인 듀발리 자작부인과 보석을 물려받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에 희생됐다.

38년 뒤인 1830년 그 보석이 경매에 등장했다. 2차 세공으로 모습과 크기(45.52캐럿)가 바뀌었지만 깊고 푸른 특유의 빛은 바뀌지 않아 누구도 그 보석이 왕의 보석임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런던 은행가 헨리 필립 호프가 사들이면서 보석 이름은 ‘호프 다이아몬드’가 됐다. 호프 다이아몬드는 터키 황제 압둘 하미드 2세, 피에르 카르티에, 워싱턴포스트의 전 소유주인 에드워드 맥클린 부부를 거쳐 49년 해리 윈스턴의 손에 들어왔다. 잠시라도 그 보석을 소유했던 이들은 권력을 잃거나 파산하거나 급사했다는 이야기는 프랑스 왕가의 비극에서 유래한 관성적 서사거나 과장이다.

다이아몬드 상인인 만큼 그의 손이 깨끗하다고 장담할 수 없겠지만, 해리 윈스턴은 82년을 살고 별세했고, 아들이 운영하는 그의 보석 가게는 지금도 건재하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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