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이충재 칼럼] 세월호 진상규명 이제 시작이다

알림

[이충재 칼럼] 세월호 진상규명 이제 시작이다

입력
2015.01.05 16:42
0 0

특별조사위 이달 중 본격 활동 시작

새누리당 추천위원 극우ㆍ친박 일색

국민 관심만이 진실 밝혀 낼 수 있어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교실. 깨끗하게 닦인 유리창으로 넘어온 짧은 겨울 햇살이 교실 안에 너울 거린다. 책상 위에 놓인 추모 꽃다발이 수업을 듣는 듯 칠판을 향해 가지런히 자리 잡았다. 너무 보고 싶어, 사랑해, 미안해, 꼭 돌아와, 우리반 이제 다 모였네…. 칠판 에는 수학공식 대신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사고이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교실 풍경이다. 희생 학생들의 책걸상과 유품 추모 꽃다발과 편지로 가득한 2~3층 10개 교실을 유족들과 생존학생 부모들은 이들이 졸업하는 내년까지 유지되길 희망하고 있다. 이곳을 찾은 한 방문자가 말한다. "가슴 먹먹한 이 교실을 나라일 맡은 공직자 임명식장으로 이용합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상징으로요. 잊지 말고 가슴에 깊게 새겨야죠". 20141208.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2014-12-08(한국일보)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교실. 깨끗하게 닦인 유리창으로 넘어온 짧은 겨울 햇살이 교실 안에 너울 거린다. 책상 위에 놓인 추모 꽃다발이 수업을 듣는 듯 칠판을 향해 가지런히 자리 잡았다. 너무 보고 싶어, 사랑해, 미안해, 꼭 돌아와, 우리반 이제 다 모였네…. 칠판 에는 수학공식 대신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사고이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교실 풍경이다. 희생 학생들의 책걸상과 유품 추모 꽃다발과 편지로 가득한 2~3층 10개 교실을 유족들과 생존학생 부모들은 이들이 졸업하는 내년까지 유지되길 희망하고 있다. 이곳을 찾은 한 방문자가 말한다. "가슴 먹먹한 이 교실을 나라일 맡은 공직자 임명식장으로 이용합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상징으로요. 잊지 말고 가슴에 깊게 새겨야죠". 20141208.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2014-12-08(한국일보)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지금도 세월호 유족들의 천막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는 유족들이 남아있고, 진도 팽목항에도 실종자 가족들이 자식을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는 여전히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다.

세월호의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에선 선박 감독기관은 직무를 태만했고, 해운사는 탐욕스러웠으며, 선원들은 자기 목숨만 생각했고, 해경은 구조를 소홀히 한 사실이 드러났으니 모든 게 밝혀진 것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세월호는 국가가 ‘국민을 버린’ 사건이다. 그 실체와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렸는지,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 정부 관련부처는 적절히 대응을 했는지 등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초기 부실 대처와 구조 실패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가림으로써 비극의 재발을 막는 항구적인 대책을 세워야 비로소 세월호는 마무리된다.

이런 막중한 역할이 부여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이달 중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기대가 한낱 공허한 희망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구성이 완료된 특별조사위 일부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17명의 특위위원 가운데 새누리당이 추천한 5명의 위원은 하나같이 정치적ㆍ이념적으로 편향된 인사들이다.

차기환 변호사는 세월호 유가족 폄훼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고 극우사이트 ‘일베’의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퍼 나른 인물이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된 ‘부림사건’ 담당 공안검사 출신인 고영주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 조대환 변호사는 박 대통령의 과거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이자 대통령인수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친박’ 법조인이다. 황전원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과 석동현 변호사는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한 전력이 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게 아니라 진상규명에 맞서겠다는 진용이다.

이런 인사들을 추천한 새누리당의 의도는 너무도 분명하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의 책임론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려는 속셈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느냐”며 특별법 제정에 반대했던 인물들이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 설 리 만무하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배ㆍ보상 협상에서도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내심 원하는 건 특별조사위가 지루한 공방 끝에 파행으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그럴듯하게 출발했지만 목소리만 높이다 흐지부지된 숱한 국회 특위를 보아온 터라 단순한 기우는 아닐 것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박 대통령이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사건 때처럼 수시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 제정 과정에서도 중요한 국면마다 관여를 해 협상을 정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전력으로 보면 이번 조사에 청와대가 포함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된다’는 식으로 개입을 할 가능성이 있다.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모든 부패와 비리가 응축된 사건이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내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세월호 참사의 진정한 해결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한 단원고 희생자의 누나는 “우리 아이들이 수학여행 가다 불쌍하게 죽은 게 아닌, 이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키고 움직이게 한 아이들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세월호 희생자 비방 글을 인터넷에 올려 유가족들로부터 고소를 당했던 10대가 며칠 전 유가족들을 찾았다. 이 학생이 선처를 호소해 유가족들이 사과를 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하자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으나 전혀 잘못했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분향소나 들러보라”는 권유에 마지못해 들어갔다 온 이 학생은 수많은 아이들의 영정을 보고 펑펑 울며 참회했다. 세월호를 잊었거나 지겹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안산의 분향소나 광화문광장을 찾아가 수백 명의 아이들 얼굴을 보길 권한다. 그러면 누구도 세월호를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국민의 부릅뜬 눈만이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