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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동물 관련 글에 빠지지 않는 댓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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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동물 관련 글에 빠지지 않는 댓글들

입력
2017.10.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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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들

동물문제에 대해 의도적으로 무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게티 이미지뱅크
동물문제에 대해 의도적으로 무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게티 이미지뱅크

동물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나는 동물 기사를 거의 챙겨보는 편이고 꼭 댓글까지 읽는다. 누군가 작정하고 댓글 조작을 하지 않는 한 댓글로 동물 문제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도 똑같이 달리는 댓글은 ‘이런 내용 처음 알았어요’이다. 이런 댓글을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동물 문제는 늘 제자리인가 싶어서 힘이 빠지고, 의인화된 동물들의 감동 스토리에는 ‘인간보다 동물이 낫다’라는 선플이, ‘개만 먹지 말라고? 그럼 닭은? 돼지는?’, ‘채식? 식물도 고통을 느끼는데.’ 라는 반대를 위한 반대 댓글이 달린다. 반려동물 기사에 ‘니 부모한테나 그렇게 해라’라는 댓글은 외울 정도. 기사 자체가 틀린 정보와 잘못된 논점을 전하는 경우도 많지만 동물 관련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전형적인 댓글이 있다는 건 신기하다.

댓글 훔쳐보기는 늘 흥미롭다. 외국 단체의 모피, 야생동물 활동 기사에는 ‘동물에 미친 한국 동물단체들은 개, 고양이 얘기만 하지 말고 이런 동물들이나 신경 쓰라’는 훈계 댓글이 많다. 한국 단체도 실험동물, 전시 동물 등 여러 고통 받는 동물을 위해 싸우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적고, 그러다보니 언론도 기사화하지 않는다. 얼마 전 동물보호 활동가가 맹견에 대한 기사를 썼다가 악플 폭탄을 맞았다. 최근 사고는 인간의 책임이 크고, 규제 강화가 답은 아니라는 좋은 글이었다. 하지만 ‘니가 물려봐라’라는 댓글 폭탄이 쏟아졌다. 동물문제에 대한 이런 식의 표면적인 반응은 더 이상 깊게 알고 싶지 않다는 의도적인 무관심, 무시의 방증으로 보인다.

동물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미디어

최근 기사에 ‘펫퍼스트(pet first)’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게티 이미지뱅크
최근 기사에 ‘펫퍼스트(pet first)’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게티 이미지뱅크

최근 기사에 ‘펫퍼스트(pet first)’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개를 죽이겠다고 말한 남편을 부인이 죽인 사건, 진돗개에게 13개월 아기가 물려죽은 사건 등을 예로 들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엇나간 사랑’이라며 작성된 기사였다. 안타까운 사건들이고, 특히 아기가 죽은 사건은 예방이 가능한, 반려인구는 느는데 아기와 동물을 함께 키우는 방법에 대해 교육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어서 특히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게 반려동물을 우선으로 아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기사 방향은 잘못됐다. 사람 각자가 존중받지 못해 안 그래도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동물을 희생양으로 만들 셈인가.

미디어는 동물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지 않고 의도적으로 본질을 가리는 비가시화에 앞장선다. 이 글을 쓰면서 미래 농업을 다룬다는 TV 다큐를 틀어놓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축산 농가에서 돼지 꼬리를 자르는 관행에 대해서 ‘돼지끼리 장난을 치다가 꼬리를 물어서 상처를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틀렸다. 공장식 축산에서 돼지는 좁고 더럽고 단조로운 사육 공간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고, 이를 막기 위해서 태어나자마자 마취도 하지 않은 채 꼬리를 자른다. 잔인하고 명백한 동물 학대이다. 이런 식으로 언론은 동물 문제의 본질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비가시화 한다. 진실을 왜곡하는 내레이터의 설명이 역겹고 소름끼쳤다.

한때 미디어가 동물문제에 깊이 파고 들어가던 시절이 있었다. 동물문제 또한 동물을 이용해서 이윤을 얻는 산업자본과 맞닿아 있어서 동물문제의 심층 보도도 언론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 깊이 다루기가 쉽지 않다. 현재 한국의 언론 자유가 한참 퇴보된 상황이라서 동물문제를 다루는 수준도 궤를 같이하는 것 같다.

인간성을 상실한 사회

지난 해 부산에서 한 새끼고양이가 두개골이 파괴된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지난 해 부산에서 한 새끼고양이가 두개골이 파괴된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존 쿳시의 소설 <동물로 산다는 것>에서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이런 현상을 나치 시대의 유대인 학살과 비교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만 명이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할 때 수용소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수용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몰랐다고 말한다. 대략 추측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몰랐다고. 이런 무관심 덕분에 살아남았으니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된 셈이다. 그 순간 그들 모두는 인간성을 상실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실험실에서, 도살장에서, 개 농장에서 잔인하게 죽어가는 동물들이 있는데 우리는 모른척한다. 그런 모습이 나치 시대의 수용소 주변 사람들과 닮았다고 코스텔로는 말한다. 그들은 수용소 안 사람들과 입장 바꿔서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지금 우리도 그러고 있는 게 아닌가.

참고한 책: 동물로 산다는 것, 존 쿳시, 평사리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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