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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추방 위기 놓인 무국적 고통 고려인들 도운 ‘의리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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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추방 위기 놓인 무국적 고통 고려인들 도운 ‘의리의 친구’

입력
2018.06.01 18: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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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루첸코(왼쪽) 우크라이나 내무장관과 김도현 대사.
유리 루첸코(왼쪽) 우크라이나 내무장관과 김도현 대사.

나는 지금 인도차이나의 도시 하노이에서 살고 있다. 이 도시의 영혼은 비좁은 골목에 산다. 이글거리는 태양도 골목길에 들어오면 양순해진다. 먼지 낀 종려나무, 그리고 쌀 국수집의 가마솥에서 나오는 증기, 향초와 마늘냄새 그리고 오래된 생선과 열대과일을 쌓은 놓은 가판대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노인과 어린 손자. 이 골목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오토바이들의 풍경이 지금은 익숙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2007년 만난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흰 눈에 덮여 있는 자작나무에서 불어오는 시원하고 달콤한 공기가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곳, 그리고 때로는 한겨울의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 어느 목로주점에서 불한당 같은 놈들과 밤새도록 보드카를 마시면서 예세닌의 시를 읊어주었던 그런 분위기의 나라이다. 아직도 자신이 유럽에 속하는지 아니면 러시아에 속하는지 끊임없이 정체성의 위기와 역사와 직면해야 하는 나라이다.

나는 당시 영사였다. 한 무국적 고려인이 크림반도의 들판에서 경찰을 피하며 농사를 짓고 살다가 어느 작은 간이역에서 병들어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나의 임무는 그런 무국적 고려인들에게 법적 지위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이 불행한 고려인의 사연이 8.15 특집으로 TV 다큐멘터리로 나온 후 우리 국민들은 고려인들에게 역사적인 부채의식을 느꼈다. 정치인들은 예산을 만들어 강제로 대사관에 떠민 후 고려인들에게 국적을 찾아주라고 재촉했다.

나는 푸쉬킨 거리에 있는 영사관 건물에 앉아 매일 한숨을 쉬면서 창 밖으로 보이는 <테아트르 역>주변을 지나가는 군중들을 쳐다 보았다. 매주 수요일이되면 연금으로 생활을 하면서 소련 시절의 낭만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정장을 하고 나와 바이올린 가락에 사교춤을 추던 곳이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소피아 로렌이 전사 통보를 받은 후 소련에 남편이 살아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찾아온 곳이 바로 이 테아트르 역이다. 사이렌이 울리면 일을 끝낸 남편이 소련 노동자들의 무리들과 함께 걸어 나오던 곳이다.

그날도 사이렌이 울렸을 때 비서가 찾아왔다. 우크라이나 이민정책을 책임지고 있던 당시 유리 루첸코 내무장관의 이력서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현재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으로 일하는데, 반(反) 이민정책을 펼치는 민족주의자였다. ‘동양인들을 다 몰아내자’고 TV 토론회에 나와서 강변한 사람이다. 나는 그들 설득해야 했다. 나는 비서 아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신이 혼미하군요. 차를 한 잔 만들어주세요. 각설탕을 세게 넣은 홍차로 부탁해요. 그리고 루첸코의 친구를 찾아야 됩니다.”

루첸코의 친구는 루슬라나라는 여자가수였다. 루슬라나는 유로비젼 송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우크라이나 국민 가수였는데, 그녀도 민족주의자여서 나를 만났을 때 러시아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어를 썼다. 대사관은 루슬라나를 설득해서 루첸코와 함께 한국을 방문시키기로 주선했다. 한국에 가서 루첸코가 우리측 고위인사들을 만나고 고려인들을 방면하는 칙령을 만들게 한다는 게 나의 전략이었다.

루첸코는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민주혁명을 이끈 주역이었다. 그는 강인한 정치인이었다. 거리와 단상에서 연설을 하며 부정선거를 저지른 친러 정권을 무너뜨렸다. 붉은색이 감도는 밤색 머리에 푸르고 큰 눈을 갖고 있다. 어깨는 넓고 단단했다. 그의 얼굴에 풍기는 어떤 인상이 나를 끌었는데 그것은 장난기와 의리 그리고 고독이 섞인 묘한 표정이었다. 친구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질 혁명가의 얼굴이었다.

루첸코는 약속 시간에 두 시간이나 늦게 나타나 한국 대사관 사람들과 첫 만남에서 대사가 가져온 안동 소주 1리터를 비워버리는 두주불사 주량을 과시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려인들 중에는 범죄자가 없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고 소련 붕괴라는 지정학적 비극의 희생자들이다. 어렸을 때 같이 학교를 다니던 고려인들은 다 착하고 공부를 잘했다. 그러므로 역사적 소수민족인 고려인들은 중국인 이민과 다르다. 한국에 가겠다. 그리고 그들을 돕겠다.”

나는 루첸코 일행의 방한을 준비하기 위해서 먼저 한국에 들어왔다. 러시아를 싫어하는 루첸코는 굳이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서 방한하기로 했다. 루첸코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시간에 내게 전화가 왔다. 루첸코의 비서실장이었다. 돌연 한국에 가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루첸코는 비서들 그리고 아들과 함께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에 공항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 독일 항공안전요원이 탑승을 거부하자 루첸코는 화를 냈다. 그러자 공항 관계자들은 루첸코 일행을 연행했다. 이 사건은 우크라이나에 타전되었고 루첸코를 해임하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그 다음날 비서들은 키예프로 돌아가자고 장관에게 조언했다. 그러나 루첸코는 우리와 그리고 고려인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는 그 다음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서 공식일정을 수행하는 동안 우크라이나의 반대파들과 정적들은 그를 비판하는 기사를 매시간 쏟아냈다. 비서진들과 나는 우크라이나 기사를 보고 대응하는데 바빴다. 그런 상황에서 루첸코는 고려인들의 추방을 금지하고 영주권과 국적을 주도록 하는 내무부 칙령을 발표했다. 고려인들은 추방되지 않았고 그들은 영주권과 국적을 받았다.

김도현ㆍ주베트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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