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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의 반려배려] 노령견 수발 들기

입력
2016.11.1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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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는 쿠키로 유도해야만 겨우 한 발짝 씩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일러스트 꼬닐리오. 책비 제공
다케는 쿠키로 유도해야만 겨우 한 발짝 씩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일러스트 꼬닐리오. 책비 제공

열네 살 저먼 셰퍼드 종 ‘다케’는 한 때는 경찰견도 교육시키는 훈련소에도 다니고 축구공은 보는 족족 작살을 내는 활동적인 개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차에 오르는 것도 산책하는 것도 힘들어지고 급기야는 배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게 된다. 주위의 안락사 권유에도 시인은 다케의 똥오줌을 치우고, 쿠키로 유혹하며 조금이라도 걷도록 노력하면서 정성껏 돌본다. 그 과정은 87세에 숨을 거둔 시인 아버지의 말년 속 모습과 오버랩 된다. 일본 시단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 이토 히로미(伊藤比呂美)가 반려견과의 마지막 2년을 기록한 ‘개의 마음’의 내용이다.

책에는 유독 똥 얘기가 많이 나온다. 작가는 어머니뿐 아니라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아버지를 부축해 용변을 보게 하고 엉덩이를 닦아 주며 부모님과의 관계가 한 차원 올라간 느낌마저 들었다고 했다. 작가는 다케의 경우 14년간 똥오줌을 받아왔지만 설사 뒤처리만큼은 힘들다고 토로한다. 이런 사례를 통해 노인이나 노령견을 보살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간접적으로나마 상상이 갔고, 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반려견을 2년이나 돌본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칼럼과 기사에 종종 등장하는 우리 집 반려견 ‘꿀꿀’도 이제 곧 만 14세가 된다. 작가의 반려견 다케와 같은 나이다. 꿀꿀은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배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다케만큼은 아니라도 올해 들어 부쩍 손이 많이 간다. 저녁 산책 도중 평소에는 잘 걷던 길에서 갑자기 발목을 삐끗해 24시 동물병원에 달려가기도 하고, 사람의 요실금처럼 오줌을 잘 참지 못하기 시작해 방광염약을 먹였다. 입맛이 떨어질 땐 평소 잘 먹던 사료도 습식 사료나 바나나, 고구마를 섞어 대령해야 하고, 맛있는 걸 내놓으라며 10분 넘게 짖으며 호령하기도 한다. 뭐든 살살 달래가며 눈치를 봐가며 한다. ‘상전’이라고 적힌 반려견 옷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옷을 입히면 딱 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노령견을 돌보는 반려인들이 투덜대긴 하지만 마음 속 한편에서는 반려견 나름의 의사표현으로 이해하면서, 뒤치다꺼리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저기 계속 설사를 해대고 고비를 넘겨야 하는 경우까지 오게 된다면 이를 감당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다케는 동이 튼 새벽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일러스트 꼬닐리오. 책비 제공
다케는 동이 튼 새벽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일러스트 꼬닐리오. 책비 제공

꿀꿀은 방광염 진단을 받으면서 신장에 결석이 있다는 문제를 알게 됐고, 수술 권유를 받았다. 막연하게 ‘언젠간 꿀꿀도 무지개다리를 건너겠지’라고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막상 주변에서 “평균 수명은 다 살았다” “내일 어떻게 잘못되어도 이상한 게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언젠가 겪게 될 꿀꿀과의 이별이 다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함께 잠들던 침대 한쪽, 볕이 드는 베란다에 있는 꿀꿀 전용 (반려동물이 한번 앉으면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포근하다는) ‘마약 방석’에 꿀꿀이 없다는 건 아직 상상하기 힘들다. 이 때 힘이 되어준 것은 바로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 해준 사람들이다. 본인 반려견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그 절박한 마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반려견의 뒤치다꺼리를 해도 좋으니 오래 함께하자는 건 반려인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노령견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반려인이다. 또 개를 키운다는 것은 개를 잘 보내주는 법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개를 키우는 책임은 무겁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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