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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농사만 지어선 망해요” 청년 농부들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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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농사만 지어선 망해요” 청년 농부들이 사는 법

입력
2017.10.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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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종쌀’ 판매하는 김창수씨

축구장 70개 넓이 50만㎡ 쌀농사

억대 수익 불구 6년째 전문 수업

# 치유농장 꿈꾸는 권두현씨

농업 세계 여행서 가능성 주목

심리치료 공간으로 활용 기대

# 자체 브랜드 만든 조민식씨

독학으로 농기계 정비 배워

단일 품종 쌀로 수익 기대

전세계적으로 대도시 인구 집중화 속도가 더뎌지고 탈도시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우리나라도 예외 없이 귀농ㆍ귀촌 바람이 거세다.

실직 등으로 어쩔 수 없이 귀농을 택하는 ‘생계형 귀농’이 대세였던 IMF 외환위기 직후와는 달리 지금의 귀농ㆍ귀촌은 20ㆍ30세대가 주축이다. 저성장 시대의 도시는 청년들에게 더 이상 충분한 일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청년들은 농촌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30대 이하 귀농가구 수는 2014년 1,110가구, 2015년 1,150가구, 지난해 1,340가구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공동체적인 더불어 사는 삶을 찾아 농촌으로 온 이들 청년 농부는 고령화로 성장동력을 잃어 ‘지방소멸’ 위기에 봉착한 농촌의 새 희망이다.

하지만 농업 경영은 진입장벽이 높다. 지난 20년 간 국내 농업인구수는 219만6,000여명이나 감소했다. 이는 2016년 전체 농업인구 249만6,000여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청년 귀농ㆍ귀촌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그에 못지않게 초기 창업자금과 농지, 영농기술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늘고 있다.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들어온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고된 노동 속에 이들이 찾은 것은 경제적 보상만이 아닌 땀 흘린 만큼 거두는 농사의 정직한 원리였다. 그것이 청년 귀농ㆍ귀촌이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선 사회현상이 된 이유가 아닐까.

쌀농사를 지어 연간 억대 수익을 얻는 청년농부 김창수(39)씨가 수억 원짜리 트랙터와 자신의 고급 외제승용차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씨는 15년 차의 베테랑 농부지만 6년째 경북도의 농민사관학교 영농 교육을 받는 등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칠곡=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쌀농사를 지어 연간 억대 수익을 얻는 청년농부 김창수(39)씨가 수억 원짜리 트랙터와 자신의 고급 외제승용차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씨는 15년 차의 베테랑 농부지만 6년째 경북도의 농민사관학교 영농 교육을 받는 등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칠곡=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청년 부농 김창수씨

경북 칠곡군 기산면에서 쌀브랜드 ‘금종쌀’을 판매하는 김창수(39)씨의 도정공장에는 억대의 고급 외제승용차 2대가 나란히 주차돼 있다.

그는 “고객이나 외부 손님들이 외제차를 보고 많이 놀라는데 농기계 창고에 있는 트랙터들이 훨씬 비싸다”며 “갖고 있는 장비 중에 우리나라에 5대뿐인 것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쌀농사를 짓는 땅 면적은 50만㎡가 넘는다. 국제공인 축구장(7,140㎡) 70개와 맞먹는 규모다. 하지만 농사의 대부분 아버지 김종기(68)씨와 둘이서 짓는다. 김씨 부자는 경북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쌀농사를 짓지만 본인들 명의의 땅은 6만㎡가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빌려서 짓고 있다. 대신 성능이 뛰어난 농기계를 적극 활용한다. 기계화로 경비를 크게 절감, 억대 수익을 내는 것이다.

작은 사업체를 꾸렸던 창수씨는 2003년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순전히 아버지 걱정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도시생활을 하다 귀촌한 농부로, 기계화 영농과 친환경 농법 등 다양한 농사법으로 큰 수익을 내 국내 쌀 전업농가에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쌀 브랜드 ‘금종쌀’도 아버지 김씨가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것이었다. 창수씨는 부친이 전 재산을 털어 만든 쌀 도정공장이 걱정돼 힘을 보탤 마음을 먹었다. 그는 “아버지가 단 한 번도 농사를 권유한 적 없었고 나 역시 성공한 아버지를 보면서도 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며 “아버지를 도울 수 있는 자식이 외아들인 나 하나뿐이어서 돕기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위에선 “쉽게 물려받았다”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창수씨가 고급 외제승용차까지 몰자 “아버지가 외제차로 아들을 꼬드겼다”는 말도 들려왔지만 농사 일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하는 부친의 논은 돌아서면 잡초로 뒤덮였다. 다른 농부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아버지의 농업 기술도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는 국내 쌀농사를 선도하던 부친의 말을 이해는커녕 따라가기도 벅찼다.

그는 “관두기로 마음먹고 보름 넘게 집을 나간 적 있는데 어느 날 ‘아버지한테 인정받기만 하면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때부터 미친 듯 농사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9시까지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일했다. 부친의 경험과 기술을 전수받는데 그치지 않고 쌀 유통과 판매, 수익 관리 등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교를 두 군데나 다니며 경영 공부를 했다. 창수씨는 올해로 경력 15년이 넘는 베테랑 농부이자 억대 수익까지 내지만 경북도가 운영하는 농민사관학교에서 6년째 농업 수업을 듣고 있다.

10년쯤 농사에 매달리자 그는 부친도 생각하지 못한 영농 기술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일부 퇴비로만 쓰고 버리는 벼 부산물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전체 매출액을 10%나 늘렸다. 아버지도 그의 농사 실력을 인정했다.

창수씨는 자신처럼 억대 농부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요즘 농부는 옛날처럼 농사만 잘 지어선 안되고 고정 판로 확보와 고객 응대에 세계 농산물 시장 흐름까지 주시해야 한다”며 “무조건 땅만 일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씨앗을 뿌린 뒤 수확까지 많은 자본이 필요하고 판매를 하더라도 제때 팔지 못하면 수익은커녕 빚더미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온나농장에서 권두현(30)씨가 본보와의 인터뷰를 가진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산청=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지난달 28일 오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온나농장에서 권두현(30)씨가 본보와의 인터뷰를 가진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산청=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흐릿한 꿈, 또렷해지다’ 권두현씨의 농업여행

“농장은 이제 단순히 생산만 하는 곳이 아니에요. 심리치유 공간으로도 활용될 수 있어요. 앞으로 ‘온나농장’도 공동체 역할, 심리치유 공간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요.”

지난달 28일 오후 1시 경남 산청군 단성면 ‘온나농장’에서 만난 청년 농부 권두현(30)씨는 대뜸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권씨가 본격적으로 농업을 시작한 것은 2015년 9월 농업 세계여행을 다녀온 직후다. 유지황(31), 김하석(30)씨와 의기투합해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등 12개국 ‘우프(WWOOFㆍ유기농장 네트워크)’ 농장 35곳을 돌며 농장에서 하루 4~6시간을 일하며 숙식을 제공받았다. 특히 리더격인 유지황씨가 온라인 블로그에 올린 농업 세계여행기를 접한 영화사에서 제안을 해 이들의 여정은 영화 ‘파밍보이즈’로도 제작됐다.

그가 농업 세계여행의 백미로 꼽는 장소는 네덜란드 정부가 지정한 치유농장(care farmㆍ케어팜)인 ‘샤펜스트릭(Schapenstreek)’이다. 권씨는 “아침 일찍 농장을 방문한 차량에서 지체장애인,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 교도소를 갓 출소한 사람 6~7명이 우르르 내려 일하며 심리적 안정도 얻어갔다”고 회상했다.

온나농장의 이름은 경상도 방언인 ‘온나(오세요)’에서 따왔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을 소망한 것이다. 온나농장은 딸기를 재배하는 660㎡(200평) 규모의 하우스 2동, 딸기 모종을 키우는 같은 규모의 하우스 1동으로 운영 중이다. 권씨는 최근 차로 2~3분 거리에 대학 후배 2명과 함께 ‘두리온나(둘이서 오세요)’ 농장도 만들었다.

지난달 28일 오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온나농장에서 권두현(30)씨가 본보와의 인터뷰를 가진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산청=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지난달 28일 오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온나농장에서 권두현(30)씨가 본보와의 인터뷰를 가진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산청=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권씨는 세계여행 직후 모친의 지병으로 엉겁결에 첫 딸기농사를 맡았을 때보다는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권씨는 “2015년 9월 갑자기 딸기농사를 도맡았을 때 수익이 40% 정도 줄었다”며 “이론 공부는 많이 했어도 실전 경험이 부족했던 탓에 약과 비료를 제때 주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권씨는 “딸기는 자식과 같아서 항상 신경 쓰고 돌봐줘야 한다”며 “보통 밤 온도는 15도, 낮은 20~25도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젊은층의 귀농ㆍ귀촌 현상에 대해 권씨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는 여유와 만족감을 갖고 살고 싶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며 “나도 조선공학과에 다니다 군대를 다녀와 2011년 고향 산청의 들녘을 보고 ‘여기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원예학과로 편입해 농가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고 경험을 털어놨다.

막연했던 꿈은 세계 농장 탐방 이후 또렷해졌다. 권씨는 “농업의 미래는 곧 농업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라고 강조했다. “유럽은 농부들이 직접 ‘파머스마켓(Farmers Market)’에서 키운 농작물을 판매해요. 사람들이 재배과정을 체험하며 농업을 이해하고 신뢰하게 되죠.”

그는 “유럽과 한국의 먹거리 인식에 차이가 있다”며 “소비자들이 농업을 체험하며 먹거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유럽처럼 농부의 이름이 하나의 대표브랜드가 돼 소비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천 강화군 내가면 구하리 논에서 벼를 수확 중인 조민식씨.
인천 강화군 내가면 구하리 논에서 벼를 수확 중인 조민식씨.

‘내가 혁신의 시작’ 강화 10년차 농부 조민식씨

가을비가 오락가락한 지난달 27일 오후 인천 강화군 내가면 구하리 이승덕(76)씨의 논에선 콤바인 한대가 큰 원을 그리며 부지런히 황금색 벼를 수확하고 있었다. 이씨는 콤바인 운전석 쪽을 눈으로 가리키며 “5년째 논을 맡기고 있는데 우렁이를 쓴 친환경(농업)이라서 그런지 수확량이 늘었다”며 “2년 더 맡기고 그 이후에는 논을 아주 넘길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논을 5년째 맡아 농사를 짓는 이는 10년차 농부 조민식(34)씨다. 탈곡한 쌀알을 트럭에 쏟아 붓는 작업을 마치고 콤바인을 내려온 조씨는 “농부는 가을이 제일 좋다”며 웃었다.

그가 내가면 일대에서 농사를 짓는 땅만 104만7,000㎡. 이중 본인 땅은 2만3,000㎡이고 나머지는 임대나 농사를 대행해 주는 땅이다. 조씨가 사촌 동생 조민상(30)씨, 아버지(57)와 함께 벌어들이는 연 수입은 2억5,000만원 정도.

조씨가 농부가 된 건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하고 2년이 지난 2007년이다. 조씨는 “그 2년은 준비 기간이었다”며 “또래들이 등록금과 자취방을 구하느라 허덕이고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집 한 채 사기 어려운 현실에서 학비와 기숙사비가 들지 않는 농수산대학은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농부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우선은 힘이 부쳐 농사를 짓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논을 일터로 삼았다. 번 돈으로는 모를 논에 옮겨 심는 이앙기를 비롯해 트럭과 트랙터, 벼 건조기 등을 하나하나 사들였다. 그렇게 농기계 구입에만 5억원이 들었다. 인터넷을 보고 직접 뜯어보면서 농기계 정비를 독학으로 배워 비용을 아꼈다.

지난 6월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가 놓여 부모님이 운영하는 떡 방앗간 앞을 지나는 승용차가 늘자 자신의 이름을 건 ‘맛있는 보리 인절미’ ‘건강한 보리곡물 미숫가루’ 등도 내놨는데 적지 않은 수입이 되고 있다고 한다. 조씨는 “맛있다고 전화로 재구매를 하시는 분도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웃었다.

조씨는 이달 중에 ‘강화도의 조민식 조민상 정직한 농부의 쌀’이라는 자체 브랜드도 내놓는다. 정미 시설까지 갖춰 가면서 브랜드를 만든 배경에는 우리 농촌의 현실이 있다.

그는 “농사 대행 일을 하려면 인력을 써야 하는데 하루 14만원을 준다 해도 ‘일이 힘들다’며 국내나 외국인 노동자 다 기피한다”라며 “인건비로 한해 5,000만원 가까이 쓸 정도로 일은 많은데 사람은 점점 구하기 힘들어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농작물을 키운 농민보다 중간 상인들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도 조씨가 자체 브랜드를 만든 이유다. 쌀이 여러 품종을 섞은 혼합미인지 단일 품종인지, 질이 좋은지 나쁜지 관계없이 정해진 가격에 농협이나 대형정미소가 사들이는 구조도 농민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는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면 좋겠지만 현재는 유통과정에서 다 빠져나가는 상황”이라며 “내 브랜드를 붙여 좋은 단일 품종의 쌀을 직접 팔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쌀도 제값을 주고 사서 팔아주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조씨는 귀농ㆍ귀촌과 농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조언도 했다.

“1~3년 정도 본인이 재배하고 싶은 농작물을 키우는 농가에서 배우고 몸으로 느낀 뒤에 귀농ㆍ귀촌을 결정했으면 한다”라며 “블루베리, 아로니아 등 키우기 쉬운 작물에 너도 나도 뛰어들다 보니 과잉 생산돼 제값을 못 받아 결국 망하는 분들도 있는데 농업은 어렵고 공부가 필요하다라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칠곡=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산청=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강화=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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