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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서리 내린 아침

입력
2015.11.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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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내린 날 아침 들길에 나가 보니 누군가 “뚝뚝 흘리고 간 배추 겉잎”에도 허옇게 서리가 내려앉았다. 된서리가 덮인 배추밭은 배추를 모두 뽑아 가서 참 다행이다. 밭주인은 엊저녁에 서둘러 늦은 김장을 하고, 지금쯤은 불목(불길이 잘 드는 온돌방 아랫목의 가장 따뜻한 자리)에 편안히 앉아 쉬고 있을 듯하다. 미처 김장을 다 마치지 못했더라도 마음만은 느긋하리라. 서리 내린 날 아침 시골 풍경이 눈에 선히 그려지며, 제때에 맞춰 일을 마무리한 사람의 평안한 미소가 부러워지는 시이다.

전국 곳곳에 첫눈이 꽤 내렸다. 김장 나눔 소식도 들린다. 거리에 나가면 이탈리아, 멕시코, 인도, 태국 등 전 세계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고 퓨전 음식도 흔하지만, 김치의 깊은 맛을 대체할 만한 음식은 아직 없는 듯하다. 한 해 먹을 김장을 담그고 나면 잔 근심은 다 잊을 만큼 마음이 든든해진다.

서리는 눈보다도 더 매서운 시련을 상징한다. “혼자서 떠 헤매는/ 고추잠자리,/ 어디서 서리 찬 밤/ 잠을 잤느냐?”(권태응 ‘고추잠자리’),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 진 그 우에 서다”(이육사 ‘절정’). 성큼 다가온 겨울, 국민에게 호통 치고 오기 부리는 독선 정치는 그만 멈추고 된서리 맞기 전에 불목이나 따끈하게 데워줬으면 좋겠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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