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메아리]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아서야

입력
2015.11.11 20:00
0 0

착시 불러일으키는 청년실업 통계

일자리 창출 없이 문제해결 어려워

국회가 관련 법이라도 통과시켜야

만 27세에 직장을 잡았으니 나도 당시에는 꽤나 부모님 속을 썩인 셈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늦은 나이에 입대했다가 취직에 애매한 시기인 2월에 전역했다. 연말에 동시 채용시험을 치르던 대기업에 입사원서를 냈다. 당시만 해도 대기업 취직이 어렵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시험 당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시험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미 10개월을 놀았던 터에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된 것이다.

오히려 다행이랄까. 이 와중에 뒤늦게 언론의 길에 눈을 떠 이듬해 9월 용케 입사하기까지 제대 후 총 1년7개월이 걸렸다. 그때 청년실업의 공포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가족들의 눈총도 따가웠다. 중간중간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과외를 하면서 용돈을 벌었지만 “이러다가 영원히 취직을 못 하는 건 아닐까”라는 초조한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어제는 ‘빼빼로데이’라고 딸 아이가 직접 만든 초콜릿 과자를 책상 위에 몇 봉지 올려놓았다. 덕분에 부엌은 엉망이 됐고, 아내는 “빼빼로데이 같은 건 왜 있는 거야”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문득 중국에서 11월11일은 ‘광군제(光棍節)’임이 생각났다. ‘광군’은 혼자인 사람을 뜻하는 말로, 숫자 ‘1’이 외롭게 서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집안에 외로이 틀어박혀 있는 ‘나홀로족’을 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상술이라고도 한다. 광군은 그래서 결혼도 하지 않고 취직도 못 한 채 홀로 살아가는 실업 청년들을 연상시킨다.

딸 아이가 대학 2년생이니 대학생활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 “졸업하고는 뭘 할 것인지, 취직은 할 수 있는 것인지, 요즘 세태대로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려는 것은 아닌지” 등등 벌써 미래가 걱정스럽다.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몇 년째 실업생활을 한다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버지들마저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아이의 말대로라면 학과 특성으로 볼 때 정규직종에 취직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물론 본인이 재능을 충분히 발휘한다면 다른 세계가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청년실업 통계로 볼 때 이 척박한 세상에 비정규직으로 던져질 확률이 훨씬 높다.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자료는 뒤집어 봐야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지난달 청년실업률은 7.4%로 2013년 5월(7.4%)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여기까지는 ‘청년실업률 2년 5개월 만에 최저’라는 뉴스 제목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청년고용률을 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41.7%에 불과하고 여기에는 주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이면 모두 포함된다. 절반이상이 실업상태라는 것이다. 물론 이중에는 결혼, 육아 등으로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여성들도 포함되지만, 만혼이 대세라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또 취업 준비생이 63만7,000명으로 전월 동기대비 14.7%나 증가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취업실패에 실망한 청년들이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되돌아간 숫자가 늘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주변에서 자녀가 정규직으로 취직했다는 사례를 찾기가 힘든 것이다.

실업문제는 일자리 창출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희망펀드를 만들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활동보장사업에 발벗고 나서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정의당 심상정대표가 발의한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이 구체적이고 실효성이 있어 보인다. 현재 3%인 청년고용할당 비율을 5%로 확대하고,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으로 한정됐던 적용범위를 300인 이상 대기업도 포함시키는 내용이다. 부담이 되겠지만 우리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등이 통과되면 수십만 개의 청년 일자리가 나올 수 있다니 기대를 걸어 볼만하다.

결국 국회가 움직여야 청년실업 해소를 할 수 있다는 얘기지만 국회는 국정교과서의 역사논쟁에 갇혀있다. 미래가 과거에 딱 발목 잡혀있는 형국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