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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리하르트 니콜라우스 아이지로( 11월 16일)

입력
2017.11.16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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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리하르트 니콜라우스 에이지로가 1894년 오늘 태어났다.
유럽연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리하르트 니콜라우스 에이지로가 1894년 오늘 태어났다.

리하르트 니콜라우스 에이지로(Richard Nikolaus Eijiro, 1894.11.16~ 1972.7.27)는 단일 유럽의 미래를 꿈꾼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출신 정치철학자로, 유럽연합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한다. 그가 덜 유명한 까닭은 그의 구상이 몽상이라 해도 될 만큼 이상주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공식 이름은 리하르트 폰 쿠덴호베 칼레르기, 줄여서 쿠덴호베 칼레르기(Coudenhove- Kalergi) 백작이었다. 일본명 에이지로(榮次郞)까지 붙어 이름이 복잡하다.

그는 다섯 개의 강대국이 지배하는 세계를 꿈꾸었다. 유럽 합중국(아프리카 식민지 포함)과 남북아메리카 대륙을 포괄하는 범아메리카연합, 세계 연방국가를 아우른 영국연방, 일본과 중국이 통치하는 태평양국가들의 범아시아연합, 나머지 유라시아 대륙을 관장하는 러시아였다. 그는 개인주의와 사회주의가 서로 맞서지 않고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재편되기를 염원했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도 프로테스탄트가 가톨릭교회의 쇄신에 기여했듯이 공존하며 서로 자극하고 협력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의 아버지 하인리히 백작(1859~1906)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외교관으로서, 알려진 바 16개 언어에 능통했고 엄청난 자산가였다. 그는 공식 외교 업무 못지않게 세계를 여행하는 데 열중해 안 가본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리하르트는 도쿄 주재 대사 시절 대주주의 딸인 아오먀마 미쓰(1874~1941)와 결혼해 낳았다. 그는 프랑스에 살다가 혁명기에 오스트리아로 이주했지만, 가문의 뿌리는 그리스였고 더 멀리는 북유럽과 폴란드 발트해 여러 국가와 민족의 피가 섞여 있었다고 한다.

리하르트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논문 주제가 ‘도덕의 근본원리로서의 객관적 실재’였다. 발흥하던 유럽의 순혈 민족주의에 대한 반감이 그의 몸에 구현된 범유럽주의, 범민족ㆍ범인종주의를 강화했을 것이다.

오랜 귀족가의 정치철학자인 리하르트에겐 막강한 재력과 인맥과 정치적 영향력이 있었다.그는 1921년 12월 범유럽연합(PEU)을 창설했고, 23년 범유럽운동 발기선언문 격의 책자 ‘Pan-Europa’를 발간했다. 24년 잡지 ‘범유럽 창설을 위한 투쟁’이란 제목의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26년 빈에서 연 첫 범유럽연합의회에는 2,000여 명의 명사들이 참석했는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토마스 만,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도 동참했다.

그가 55년 제안해 채택된 범유럽 국가(國歌)가 실러의 시를 가사로 한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 ‘환희의 송가’였다. 그는 선민의식을 지닌 귀족주의자였지만, 평화ㆍ번영을 위한 유럽 통합의 가치와 민족ㆍ인종이 아닌 개인의 차이를 중시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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