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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생태!] 8만년 단절 깨고 교류 시작한 한ㆍ일 ‘개개비’

입력
2018.05.26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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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새는 550여종으로 일본의 630여종보다 적지만, 일본 새의 80%는 한국의 새와 동일한 종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거리가 가깝고, 철새의 이동경로도 동일 선상에 있지요. 새들 중 일부는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텃새로 정착하기도 하고 양국 간을 서로 이동하면서 서식지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날개가 있어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새들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죠.

이러한 종들은 과연 형태적ㆍ유전적으로 변하지 않았을까요? 필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일본의 연구자인 이사오 니시우미 박사와 공동으로 한일간 조류종 특성을 7년간 연구했습니다. 양국간 대부분의 종에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일부에서는 형태적 차이를 보였는데요. 특히 형태적ㆍ유전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종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개개비’입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개개비의 월동지로 알려진 동남아시아까지 조사범위를 넓혀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연구자들도 함께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노래하는 개개비 수컷. 국립생태원 제공
자신의 몸을 드러내고 노래하는 개개비 수컷. 국립생태원 제공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는 기준은 ‘노래 레퍼토리’

개개비는 중국 남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와 파푸아뉴기니에서 월동을 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봄에 찾아와 번식하고, 가을철에 월동지로 돌아가는 흔한 여름철새입니다. 윗면은 갈색 또는 회갈색이며, 아랫면은 흰색입니다. 몸 전체의 길이는 17~19㎝, 날개길이는 8.4~8.7㎝, 체중은 22~29g로 수컷이 암컷보다 약간 큽니다.

5월이 되면 강이나 호숫가, 하구의 갈대밭에서 “개-개-” 또는 “개-개-꺅-꺅-”하는 매우 시끄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노랫소리를 들어보면 개개비란 이름이 노랫소리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수컷은 암컷보다 2주 먼저 도착해 암컷에게 관심을 끌고 새끼를 키울 수 있는 세력권을 마련하기 위해 매우 분주하게 노래합니다. 개개비는 5~8월에 4~6개의 알을 낳고, 1년에 1~2회 번식합니다. 번식에 성공한 개체들은 대부분 매년 동일한 지역에 도래하죠.

초봄에 일찍 도래해 갈대 밀도가 높은 좋은 세력권을 확보한 수컷은 다수의 암컷과 일부다처제로 번식하고, 갈대 밀도가 낮은 나쁜 세력권을 확보한 수컷은 짝을 찾지 못하거나 번식을 하더라도 둥지의 알이나 새끼를 족제비나 뱀에게 잡아 먹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개개비 둥지 속 알. 국립생태원 제공
개개비 둥지 속 알. 국립생태원 제공

그래서 좋은 지역을 둘러싼 수컷간의 경쟁은 매우 심하게 나타납니다. 암컷은 도착하자마자 수컷들이 확보한 세력권이 좋은지 나쁜지, 노랫소리의 레퍼토리가 다양한지 어떤지 살핍니다.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기 위해 판단하는 척도가 세력권의 질과 다양한 노랫소리인 것이죠. 먼저 도착한 암컷은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수컷을 선택하여 짝을 이룹니다. 그러나 늦게 도착한 암컷은 이미 혼인한 수컷의 후처가 될지 아니면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수컷과 혼인을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전자를 선택하면 수컷의 도움이 없이 혼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자식을 많이 남길 수 없지만, 소수라도 부친의 우월한 유전자를 이어받은 자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후자를 선택하면 비록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자식이 아닐지라도 배우자의 도움을 받아 새끼를 부양하기 때문에 후처가 되는 것보다 많은 자식을 남길 수 있죠. 물론 이는 운 좋게 둥지가 포식자에게 발견되지 않았을 때 얘기입니다. 늦게 도착한 암컷은 자신이 놓인 처지를 다른 방법으로 극복하려는 개체도 있는데요. 일찍 도착한 암컷(본처)이 자신이 들어오는 것에 관대하면 후처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다른 수컷과 신혼둥지를 차리고 질이 좋은 수컷과 혼외 교미를 하려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늦게 도착한 개개비 수컷일수록 남의 자식을 키우는 경우가 많이 나타납니다.

자신의 세력권에 다른 수컷이 침입하자 바로 쫒아내는 수컷. 국립생태원 제공
자신의 세력권에 다른 수컷이 침입하자 바로 쫒아내는 수컷. 국립생태원 제공

더 멀리 날 수 있는 일본 개개비

우리는 여러 지역에서 새를 그물로 포획해 부리, 날개, 꼬리 등의 길이와 체중을 측정하고 몸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다음, 날개 하부정맥에서 혈액을 채취하고 방사했습니다. 연구 대상은 합동 또는 개인별로 포획한 65개체였습니다.

먼저 형태를 분석해보니 한국,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개개비(대륙 개개비)의 날개길이는 비슷했지만, 일본의 개개비와는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대륙 개개비의 날개길이는 일본의 개체보다 평균 5㎜나 짧았죠. 특히, 날개길이에서 큰 차이(3.5㎜)를 보인 것은 첫 번째 날개깃이었습니다. 첫째 날개깃은 이주거리에 적응하기 위해 발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에 날아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첫 번째 날개깃이 긴 일본 개체가 한국(대륙) 개체보다 한 번에 더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유전자 분석을 통해서는 대륙 개개비와 일본 개개비가 8만년 전에 분리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일한 종이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많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전자 교류가 중단되면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륙과 일본 개개비는 종 또는 아종 수준으로 분리될 정도의 차이는 아니었습니다.

수만년의 침묵을 깨고 교류를 시작한 한일 개개비

한국에 도래하는 개개비는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중국 대륙을 통하여 단거리를 반복해서 이동하기 때문에 날개길이가 짧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반면 일본에 도래하는 개개비는 가까운 남쪽 지역을 월동지로 정하고 바다를 통해서 한 번에 장거리 이동하기 때문에 첫째 날개깃의 날개길이가 길게 진화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죠. 그래서 일본 개체군은 필리핀이나 파푸아뉴기니와 같은 섬을 월동지로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한일 간의 개개비는 오랜 기간 동안 적응에 의해서 이동경로를 달리하고 서로 다른 집단분화의 길로 들어섰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 도래하는 개체군은 동남아시아의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개체군과 지속적으로 교류가 이루어져 왔으나, 일본에 도래하는 개체군과는 수만 년 동안 장벽(이동경로의 차이)에 가로막혀 교류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개개비에서 약간의 하플로타입(일련의 특이한 염기서열이나 여러 유전자들이 가깝게 연관돼 한 단위로 표시될 수 있는 유전자형)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한일 간의 개개비는 수만 년의 침묵을 깨고 최근에 교류를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의 갈대밭이 급속도로 감소하고 번식지가 파괴되어 일본의 개개비가 한국의 번식지를 찾아와 한국 개체와 번식하고 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한국 개개비는 동남아시아의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여러 집단과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결혼을 하여 다문화 가정을 이루어왔고, 일본 개개비 집단과는 최근에서야 국제결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오목눈이보다 깃털 색이 옅은 한국 오목눈이. 국립생태원 제공
일본 오목눈이보다 깃털 색이 옅은 한국 오목눈이. 국립생태원 제공

한일 텃새인 오목눈이와 멧새도 차이가 있다

개개비 이외에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텃새로 살고 있는 오목눈이와 멧새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깃털의 색깔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두 종류 모두 한국 개체의 깃털 색깔은 일본보다 전체적으로 옅고 밝은 갈색을 띠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색깔의 차이는 각 개체군이 살고 있는 환경에서의 포식자 회피를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깨와 배 부분의 색깔이 짙은 일본 오목눈이. 국립생태원 제공
어깨와 배 부분의 색깔이 짙은 일본 오목눈이. 국립생태원 제공

한국의 개체는 오랫동안 황폐한 산림의 밝은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밝고 옅은 색을 띠고, 일본의 개체는 어두운 산림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짙은 색깔을 띠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두운 깃털을 가진 개체는 어두운 환경에서 포식자를 피해 단독 또는 쌍으로 은밀하게 번식하는데 유리한 반면에, 옅고 밝은 깃털을 가진 개체는 포식압(잡아 먹혀 개체수가 감소하는 일)은 높지만 넓게 트인 환경에서 암컷을 유인하는데 좀 더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조류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적응하며, 형태적ㆍ유전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김창회 국립생태원 생태조사연구실 연구지원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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