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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인공지능 시대의 ‘이재용 판결’

입력
2018.02.13 14:2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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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와 이과가 철벽으로 갈라진 한국사회이지만 유독 법조인들과 얘기할 때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곤 한다. 그건 아마도 법조인이나 과학자나 법, 또는 법칙(law)을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자의 궁극적 목표는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보편성과 일관성이다. 보편성은 언제 어디서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성질이다. 자연법칙의 원조라 할 만한 법칙은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 또는 보편중력의 법칙(law of universal gravitation)이다. 17세기에 뉴턴이 등장하기까지 2,000년 동안 유럽 사회를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서는 달 이상의 천상계와 인간이 살고 있는 지상계에는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된다. 그러나 뉴턴은 달이든 사과든 똑같은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했다. 즉, 뉴턴은 천상계와 지상계에 보편적으로 작동하는 자연의 법칙을 발견했다. 그래서 보편중력의 법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자연의 법칙은 그 자체적으로나 다른 법칙들과의 관계 속에서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보편중력의 법칙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잘 맞는 새로운 중력이론이 필요함을 직감했고 오랜 노력 끝에 현대화된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내놓기에 이른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수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는 과학이론이 법칙의 지위까지 오르지는 못할 것이다. 과학자들에게 법칙이란 보편성과 일관성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체계이다.

보편성과 일관성은 인간 세계의 법칙, 즉 사법체계에서도 아주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현행 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로 시작한다. 이는 법의 내용과 적용 및 집행이 보편적이어야 함을 뜻한다. 또한 법률은 그 내용 자체뿐만 아니라 다른 법률과의 관계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기준으로 유무죄를 판결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이 있었다. 이 재판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석방되었다. 나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어서 재판부의 구체적 법리를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이번 판결에 대한 사법부 내부 또는 검찰의 반발을 함께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더 보편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가에는 관심이 많았다. 무엇보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어떻게 36억여 원을 뇌물로 인정하고도 이재용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석방했느냐 하는 점이다. 똑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1억 원 미만의 뇌물로도 실형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여기에는 5,900만원의 뇌물로 징역 1년이 확정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김영재 원장의 아내 박채윤 씨도 포함된다)은 진작 석방됐어야 한다. 확실히 이번 항소심의 결정은 법의 적용과 집행에서 보편성을 잃었다. 힘 있는 재벌은 지상계의 법률이 미치지 않는 천상계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천상계에는 이른바 ‘3.5법칙’, 즉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보편법칙이 항상 작동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1심 선고 때부터 이 ‘보편집유의 법칙’을 예견했다.

법리의 일관성에도 의문이 많다. 항소심은 36억여 원을 뇌물로 인정하면서도 그 대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단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압에 못 이겨 뇌물을 준 피해자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36억여 원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어야 법리의 일관성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이 문제와 관련해 항소심은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문형표 전 장관에게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하도록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재판 결과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앞선 재판결과와 완전히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설명이 필요함에도 이재용 항소심에서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항소심 재판부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일관성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겠다는 집요한 의지뿐이다.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데이터를 짜 맞추는 과학은 사이비과학이다. 재판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을 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다 보니 인공지능을 도입했으면 하는 직업으로 판사를 꼽는 사람이 많다. 마침 판사는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가장 빨리 사리질 직업군 중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많은 사람의 기대대로 인공지능 판사가 공명정대하게 판결을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 인공지능 판사가 학습할 자료 중에는 분명히 이번 이재용 항소심 재판결과도 포함될 것이다. 아마도 똑똑한 인공지능이라면 보편성과 일관성을 상실한 판결문을 학습하면서 법조문보다 더 높은 단위의 천상계에서 작동하고 있는 ‘유전무죄의 법칙’이나 ‘3.5의 법칙’을 알아차리지 않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에겐 아직 상고심이라는 마지막 학습 자료가 남아 있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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