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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가 괴물을 키우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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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가 괴물을 키우는 건 아닐까

입력
2018.05.04 18: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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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신문을 읽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접하다 보면 우울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일쑤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과 사익편취, 권력욕에 사로잡혀 검은 거래를 일삼는 정치인들, 성폭력과 성추행으로 얼룩진 문화계와 교육계 그리고 법조계, 계속되는 의료 사고에 종교 지도자들의 일탈까지 끊임없이 쏟아지는 사회 각 분야의 비리와 사건ㆍ사고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대형 교회 목사의 성폭력과 부정축재, 그리고 존경받던 대형 사찰 스님의 성추행과 사유재산 축적에 대한 의혹을 접하면 마지막에 기댈 곳마저 잃어버리는 느낌이다. 이 지경에 이른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리고 점점 혼탁해지는 세상에서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두렵기만 하다.

자신의 위치와 지위에 주어진 사명을 망각하고 반사회적 일탈 행위를 일삼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움과 분노가 교차한다. 자신의 가치관과 적성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성적에 따라 전공과 직업을 선택하고, 소명의식 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직업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입시제도 속에서 어쩌면 그들에게 소명의식이나 공공의 선을 위한 자비와 희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들이 그 자리에 가기까지 우리는 그들에게 주변을 돌아보고 외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간도 기회도 주지 못했다. 끊임없이 경쟁하고 경쟁을 이겨 내도록 채찍질했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교육도 받지 못하고 농사일을 거들거나 공장에서 일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함께 책임져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들이 존중받고 장래에 대한 꿈을 꾸면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방정환 선생은 1923년에 색동회를 조직하고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후 매년 기념 행사를 열었다. 어린이날 행사가 민족의식을 높일 수 있음을 염려한 일제는 1937년부터는 어린이날 행사를 열지 못하도록 했지만, 8ㆍ15광복 이듬해인 1946년부터 어린이날이 5월 5일로 바뀌어 행사가 열렸고 1970년에 공휴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일제 강점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래에 대한 꿈을 잃은 채 자라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6ㆍ25전쟁 이후 아이들은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내몰렸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교사, 의사, 법조인이 되기 위해 학원으로 내몰린 채 그들의 관심과 적성은 무시되고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의 육아와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오늘, 혹자들은 더 이상 어린이날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관심과 적성은 무시된 채 부모가 원하는 틀 속에서 미래에 대한 꿈조차 스스로 꾸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일제 강점기 만큼이나 어린이날을 기념하고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더 중요해 보인다.

지난 10년간 교육부가 매년 발표하는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보면 교사는 부동의 1위이고, 의사와 법조인이 늘 상위 순위에 위치해 있다.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미래를 꿈꾼다. 갈수록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가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고 굴곡 없는 삶을 살아가기 바라지만, 어느 부모도 자녀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주변에 상처를 주는 괴물로 성장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괴물을 키우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게 나라냐고 툭하면 탄식하는 우리가 이 나라를 바로 서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녀를 제대로 길러내는 일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자신의 꿈을 소중히 키워 가는 자녀를 길러낼 때 이 사회는 바로 설 수 있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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