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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체험 실감나요…20년간 대통령 별장 청남대

입력
2017.04.0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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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대 가는 길은 30년 넘은 튤립나무가 터널을 만들었다. 본관은 입구에서 4km 떨어져 있다. 청주=최흥수기자
청남대 가는 길은 30년 넘은 튤립나무가 터널을 만들었다. 본관은 입구에서 4km 떨어져 있다. 청주=최흥수기자

“가보시면 알 겁니다. 아, 여기서부터구나 하고.”

한도희 청주해설사의 답변은 다소 모호했다. 경험은 때로 어떤 설명보다 명쾌하다. 절대권력의 음습함을 기억하는 몸이 알려주는 위치는 분명했다. 도로 양편의 벽돌기둥만 봐도 이곳에 큰 철문이 있었고,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섰을 거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1983년부터 20년간 대통령의 별장이었던 곳, 청남대의 첫 인상은 그렇게 다가왔다. 이곳에서 주차장까지는 또 4km를 더 들어가야 한다. 최고권력자가 그들만의 휴가를 즐겼던 장소를 찾아가는 길은 소통단절을 절감할 만큼 충분히 멀고 낯설었다.

2003년 일반에 개방한 이후 청남대에서 느끼는 이질감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민가 한 채 없는 한갓진 곳인데도 길은 깔끔히 정비돼 있다. 도로 양편으로 늘어선 30년 넘은 아름드리 튤립나무가 긴 터널을 만들었고, 개나리와 산수유가 피어난 산자락 맞은편으로 대청호의 푸른 물빛이 반짝인다.

대통령기념관 별관의 청와대 집무실 포토존.
대통령기념관 별관의 청와대 집무실 포토존.
파면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떻게 기록될까?
파면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떻게 기록될까?

주차장에서 호수를 따라 설치한 데크를 조금 걸으면 가장 먼저 대통령기념관 별관이 반긴다. 관광지로 개방하기 전까지 250명의 군인들이 사용하던 숙소였다. 중앙홀에서 오른편은 대통령관이고 왼편은 청남대관이다. 대통령관 입구 벽면은 재임기간 역대 대통령의 주요 일정을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이력은 2013년 7월 27일 ‘유엔군 참전ㆍ정전 60주년’ 기념식에 멈춰 있다. 파면된 대통령이 나머지 빈 칸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출구 쪽은 대통령집무실을 본 딴 포토존으로 꾸몄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비어있을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보는 느낌이 어느 때보다 묘하다. 청남대관에는 역대 대통령이 외국 정상들에게 받은 선물과 청남대에서 사용한 주방용품 등을 전시했다. 노란 스티커가 붙은 물품은 국가기록원에서 관리하는 전시물이다.

청남대의 핵심인 본관으로 통하는 철문 앞에는 둥그런 돌탑이 하나 서 있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남대의 관리를 충청북도로 이관하고 민간에 개방한 것에 감사해 청주시(당시 청원군) 문의면의 32개 마을 5,800명 전 주민이 하나씩 모은 돌로 쌓았다. 봉황 문장이 새겨진 철문을 통과하면 32그루의 반송이 가지런히 본관으로 통하는 길을 안내한다. 원래 62그루였는데 6공화국 시절 절반은 청와대로 이식했다는 설명문이 붙어 있다.

본관으로 통하는 길은 반송으로 장식돼 있다.
본관으로 통하는 길은 반송으로 장식돼 있다.
본관 앞 헬기장의 봉황조형물.
본관 앞 헬기장의 봉황조형물.
본관 건물은 미적 감각보다는 안정감에 무게를 둔 듯하다.
본관 건물은 미적 감각보다는 안정감에 무게를 둔 듯하다.
대통령기념관 앞 양어장.
대통령기념관 앞 양어장.

지상2층 지하1층으로 지은 본관은 견고하고 안정감 있다. 외관보다는 안전에 더 신경을 쓴 듯하다. 관람 동선은 넓은 창으로 분수가 보이는 1층 접견실에서 식당을 지나 2층으로 이어진다. 침실 서재 거실 가족실 한실 등으로 구성된 가족 전용공간이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침대를 교체한 것을 빼면 벽지와 가구는 지금까지 그대로다. 개방하기 전 단 한 차례 이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침대보만 갈았으니 현재 침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 때 들인 것이다. 아쉽게도 본관 내부의 사진촬영은 금지돼 있다.

각국 외국정상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대통령기념관의 체험공간.
각국 외국정상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대통령기념관의 체험공간.
찍은 사진은 바로 자신의 이메일로 보낼 수 있다.
찍은 사진은 바로 자신의 이메일로 보낼 수 있다.
오늘은 내가 대통령? 대국민연설 단상에서도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오늘은 내가 대통령? 대국민연설 단상에서도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본관에서 대청호 쪽으로 내려가면 제법 큰 인공호수가 나온다. 겨울철에 스케이트장으로 이용했던 호수의 이름은 멋없게도 양어장이다. 하지만 단순히 물고기를 기르는 시설은 아니다. 위쪽 메타세쿼이아 숲을 기준으로 오른편엔 음악분수, 왼편에는 수상 데크를 설치했다. 데크 위를 걸으면 비단잉어 붕어 향어 등 다양한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외관으로만 따지면 청남대에서 가장 짜임새 있는 정원이다.

호수 언덕에는 또 하나의 대통령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외형은 청와대 본관을 본 땄고, 크기는 60%로 축소한 규모다. 1층은 역대 대통령의 기록화를 각 2점씩 전시했다. 박정희는 추수하는 들판에서 농부에게 막걸리를 따르는 장면, 김영삼은 등산, 김대중은 남북정상회담, 노무현은 이라크 파병장병을 끌어안는 장면, 이명박은 청계천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을 담았다. 역대 대통령을 기억하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들이다.

지하 1층은 대통령체험장으로 꾸몄다. 기념관 별관에도 있는 집무실 포토존 외에 대국민연설 단상, 국무회의장 등이 더해졌다. 관람객에게 가장 있기 있는 체험은 외국정상과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설이다. 두 개의 빈 의자 중 왼편 의자에 앉으면 직접 선택한 외국 정상과 나란히 앉은 모습이 가상 모니터에 표시되고, 실제 대화하는 듯한 포즈로 사진을 찍은 후 바로 자신의 이메일로 전송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아직 트럼프로 업데이트하지 않아 오바마가 나오는데도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재의 정치상황을 반영하듯 독일 메르켈 총리도 많이 선택된다.

9명 전직 대통령의 실물크기 동상이 세워진 대통령광장.
9명 전직 대통령의 실물크기 동상이 세워진 대통령광장.
대청호반의 그늘집.
대청호반의 그늘집.

이 정도면 청남대의 내부 시설은 거의 둘러본 셈이다. 청남대에는 전두환에서 이명박까지 6명의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딴 산책로가 있는데, 관람객이 가장 많이 걷는 코스는 ‘김영삼 대통령길’이다. 높낮이가 없는 평탄한 흙 길이고, 골프장과 대청호를 끼고 있어 경치도 빼어나다. 무엇보다 이 산책로 끝에는 대통령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이승만부터 노무현까지 9명의 실물모형 동상이 설치돼 있어 가장 상징적인 장소다. 광장 중앙에는 ‘미래의 대통령’ 단상을 설치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했다. 다음달 9일 어떤 후보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통령으로 선택될 지 자못 궁금하다.

[청남대 관람 요령]

●승용차로 바로 입장하려면 청남대 홈페이지(chnam.chungbuk.go.kr)에서 예약과 결제가 필수다. 주차료는 2,000원, 입장료는 성인기준 5,000원이다. 최소 하루 전에 예약해야 하고, 예약 당일 오전 10시 이후에는 취소가 불가능하다. ●예약 없이 당일 입장하려면 문의면소재지에 위치한 청남대문의매표소(043-220-6418)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후 시내버스(15분 소요)를 타야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주중에는 30분, 주말에는 10~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청남대는 주요시설만 둘러봐도 2시간 정도 걸린다. 전두환(1.5㎞)ㆍ노태우(2㎞)ㆍ김영삼(1㎞)ㆍ김대중(2.5㎞)ㆍ노무현(1㎞)ㆍ이명박(3.1㎞) 대통령길 등 6개 산책로를 하루 만에 걸어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방문 횟수에 관계없이 6개 코스 완주 스탬프를 찍으면 기념품으로 메달을 받을 수 있다.

청주=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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