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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불교사상, 터놓고 얘기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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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불교사상, 터놓고 얘기해볼까요

입력
2016.03.1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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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론은 인도 계급 사회를 안정화한 일종의 최면제라고 본다" 라는 도발적 생물학자에게 고대 인도철학자는 맞선다. "불교는 계급사회를 부정하는데서 출발했어요. 윤회론이나 업(보)설이 심리적 위안은 줄 수 있었죠." ©게티이미지 뱅크
"윤회론은 인도 계급 사회를 안정화한 일종의 최면제라고 본다" 라는 도발적 생물학자에게 고대 인도철학자는 맞선다. "불교는 계급사회를 부정하는데서 출발했어요. 윤회론이나 업(보)설이 심리적 위안은 줄 수 있었죠." ©게티이미지 뱅크

승려와 원숭이

심재관ㆍ최종덕 지음

동녘 발행ㆍ392쪽ㆍ1만8,000원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질문들이 있다. 적잖은 이에겐 관심 밖이며, 관심 있는 이에겐 도발이나 무례가 될까 꺼려지는 탓이다. 신은 정말 전지전능한가. 그런데 왜 세상에는 악과 고통이 창궐하는가. 무고한 저 아이의 학대를 신은 왜 방치하는가. 이런 고통의 기원이 전생의 업보라는 해석은 온당한가. 불교가 무아(無我)를 기본으로 하는데도 왜 스님은 자꾸 ‘참된 나’를 찾으라는 걸까. 힘든 것은 구름처럼 다 지나간다고요? 대체 언제요!

‘승려와 원숭이’(동녘)는 종교를 둘러싼 이런 난문(難問)들을 거침없이 꺼내 드는 책이다. 각각 종교와 과학, 좁게는 고대 인도철학(심재관 박사)과 생물학, 과학철학(최종덕 상지대 교수)을 연구해 온 두 학자가 만나 종교와 철학을 주제로 나눈 대담을 담았다. 10여 년 전 우연히 만나 서로 철학적 고민이 맞닿아 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이러다 불교계에서 배척당하지 않겠냐”는 우려에 아랑곳 않고 날 선 대담을 펼쳤다.

예컨대 “불교에서는 ‘고정된 내가 없다’면서도 왜 한국 스님들은 ‘참 자아’를 찾기 위해 출가했다고 하느냐”는 생물학자의 질문에, 인도철학자가 “(한국)절 집 안에서만 쓰는 상투어구다. 한국 스님들은 불교적 교리에 따라 무언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없다”고 못박은 뒤 불교의 무아론에 대한 역사, 철학적 해설을 차근차근 풀어내는 식이다.

책이 두 사람의 대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다, 추상적 개념어가 자주 등장하는 탓에 적잖은 집중력을 요하지만, 미제상태로 뇌리에 켜켜이 쌓여있었던 의구심이 대화 마디마디에서 뛰쳐나오는 장면들이 꽤 통렬하다.

고대 인도 문헌 연구에 주력해 온 심 박사가 보는 불교 사상의 본질은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 아닌 자아를 버리는 길”이다. 붓다가 추구한 것은 자아를 신비하고 초험적인 무엇으로 포장한 형이상학이 아니라, 이 형이상학을 완전히 버리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고대 인도의 힌두 철학의 핵심인 자아론(모든 사물안에 궁극적인 본질, 우주의 원리가 들어있다는 사고)이 차별 받는 당대인들의 불만을 잠재웠다면, 이 눈속임을 정면 부정한 무아론이 불교의 근간이 됐다는 것. 자아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오온(五蘊ㆍ색, 수, 상, 행, 식)의 흐름일 뿐이다. 즉,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집착, 욕망에서 비롯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불교가 유독 한반도 일각에서 ‘참선하며 나를 찾는’것으로, 즉 불교라기 보다 붓다가 부정한 고대 힌두 철학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됐다.

생물학자인 최 교수의 원숭이 비유가 절묘하다. “양파를 쥔 원숭이는 껍질을 깝니다. 벗기니 또 껍질이 있는 겁니다. 다시 깝니다. 이러다 보면 원숭이는 결국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죠. 껍질 그 자체가 알맹이라는 것을 원숭이는 모르는 거에요. 자아는 양파와 같아요. 껍질을 벗겨서 그 안에 참 자아가 따로 숨겨져 있다는 생각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합니다. 추상적 자아 혹은 진리가 따로 먼 별천지에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자아, 윤회, 감정, 미학, 진화, 문화, 고독 등 열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어지는데, 주로 불교철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주안점을 뒀지만 종교일반, 진화생물학 등 종교와 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한다. 시종일관 ‘종교에 호의적이지 않은’ 최 교수는 심 박사를 향해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근본적 질문들을 건네며 우리가 짐짓 아는 척, 묻지 않고 넘어갔던 의문들을 짚어간다. 진화론 등 과학의 영역을 다룰 때는 문답자의 역할을 바꿔 뚜벅뚜벅 사유를 펼친다. 그러다 내 자신이 모든 다른 생명, 물질과 얽혀 존재한다는 불교의 연기설과 인간이 60조의 세포와 그 5배의 박테리아로 구성된다는 생물학의 접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 발짝 떨어져 불교를 조망하는 두 사람의 솔직담백한 대화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철학의 본질과 기능에 접근하게 된다. “윤회설은 불교 자체의 창안물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인도 땅에서 형성된 것”, “말하자면 업보, 윤회의 개념은 불교의 본질적 측면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수단, 방편이다”, “불교에서 가장 혐오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건 ‘절대’나 ‘영원’이라는 단어”, “감정을 부정하진 않지만 굴곡 없이 단순하게, 혹은 요동치지 않게 만드는 상태를 강조하는 불교는 일면 차가운 종교다.”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종교의 기능과 의미다. 우리는 불교, 또는 여타 종교의 근원과 근본철학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이해는커녕 내 신앙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도 모르는 채 ‘소원을 들어 달다’, ‘고민을 덜어 달라’고 떼를 쓰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지난달 나온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설전’(책읽는 섬)과 나란히 읽어도 좋겠다. 한국 불교 사상에 가장 깊이 파고든 스님들의 대화의 결과 지향이 두 학자의 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도발적일 만큼 근본적 질문을 던져 불교사상의 근간을 차근차근 짚어간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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