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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프랑스가 아닌데 어떻게

입력
2016.07.2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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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아빠다 보니 뷔페를 좋아한다. 아이도 아빠를 닮아 뷔페를 좋아하는데 이유는 조금 다르다. 많이 먹을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음식을 접시에 담고, 마음대로 이곳저곳을 다녀도 되는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 때마다 난처한 일이 생긴다. 먹지 않을 음식까지 접시에 담다가 종업원에게 야단을 맞거나, 식당을 뛰어다니다 다른 손님과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노키즈 존’이 늘어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이를 다그쳐 봐도 그때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식당을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프랑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프랑스 아이들은 부모의 말에 순종적으로 행동하고, 공공장소에서 요란스럽게 장난을 치는 일도 없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본 파리의 풍경도 그랬다. 일요일은 조용했고,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은 차분했다. 식당에서 포크를 떨어뜨리고 물을 쏟고 음식 투정을 하는 아이는 내 아이뿐이었다.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기 때문에, 프랑스 아이들의 유아기는 ‘끝없는 기다림의 시기’라 한다. 아빠가 사주지 않는 장난감을 할아버지에게 졸라 얻고야 마는 우리 아이의 인내심과는 차이가 클 것이다. 내 아이는 기다림을 모른다. 아빠, 엄마는 뭐든지 마음대로면서 자신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화를 낸다. 내 아이가 프랑스 아이처럼 되지 않은 것은 나 자신이 ‘프랑스 부모처럼’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 부모들은 신생아를 혼자 재울 정도로 엄격하게 단호하게, ‘부모 중심’으로 육아하는 데 반해 우리 집 부부 침실은 아이가 차지한 지 벌써 6년째다.

나는 아이를 잘못 키워 온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프랑스 육아의 기준에서 보자면 좋은 육아를 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변명하자면, 거기에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 육아든 요즘 많이 회자하는 북유럽 육아든 그 사회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 육아가 추구하는 ‘규율 속에서의 자율’은 자유롭게 구사하는 외국어 하나와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 특별한 맛을 내는 요리 하나가 있는지로 중산층을 판단하는 사회, 대학들이 평준화되어 있는 프랑스 사회에서라면 부모의 가치관과 결합한 엄격한 양육 태도가 아이의 자율성을 크게 제한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채 없는 30평 이상의 아파트 소유, 월 급여 500만원 이상, 예금 잔고 1억원을 중산층의 조건으로 삼는 나라, 예전보다는 약해졌다고 해도 대학 간 서열이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와는 여건이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부모의 권위를 내려놓고 아이들의 자율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북유럽 육아도 마찬가지다.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급여 수준의 차이가 크지 않고, 또 직업을 가지지 않더라도 한 달에 200만원 내외를 지원받는다는 덴마크의 경우라면 아이에게 등수는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평생을 웨이터로 살면서도 높은 직업적 자존감을 가질 정도로 전체 사회가 매우 강력하게 ‘평등’을 지향한다. 이런 사회에서라면 부모가 아이들에게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점차 격차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부모가 북유럽 국가의 부모들처럼 친구 같은 아빠가 되는 것은 마음처럼 쉽게 되지만은 않는다.

한 사회의 육아는 그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프랑스 육아와 북유럽 육아를 만든 사회는 우리 사회와 아주 다르니 그대로 적용하기란 무리일 수밖에 없다. 복잡하고 정답이 없는 한국 육아는 복잡하고 정답이 없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프랑스 부모처럼, 북유럽 아빠처럼 아이를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한 내 변명이지만 말이다.

권영민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 저자ㆍ철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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