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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동아시아 출판사, 라는 현상

입력
2017.12.19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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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출판사 직원들이 사옥 안에서 그간 펴낸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시아 제공
동아시아 출판사 직원들이 사옥 안에서 그간 펴낸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시아 제공

다시 연말이다. 인쇄매체들끼리, 조금은 애처로운 연대감으로 서로를 꼭 끌어안는 시간. 각 신문사나 잡지사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책과 저자와 출판사를 뽑고 결산하는 시간이다. 저 회사에서는 왜 저런 책을? 딱 이 책인데 왜 빠졌을까? 이렇게 나름 품 들여 애써 뽑아둔다지만 요즘 사람들이 알아봐주기나 할까? 이런저런 쑥덕임도 이어지지만, 뭐 어떤가. 디지털 시대, 한시 바삐 제정신 차려야 마땅할 ‘프린트미디어 적폐’들끼리 마주 앉아 “그래, 올해도 네가 용케 살아남았구나”하고 서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또한 위로가 될 테니까.

이런 행사에 요즘 암초 하나가 등장했다. 바로 과학책에 강세를 보이는 동아시아 출판사다. 한국일보가 주관하는, 예심을 거쳐 본심 결과 발표만 앞둔 한국출판문화상 심사과정에서 ‘올해의 문제아’도 동아시아였다. 심사위원들 입에선 “동아시아 책을 후보작에서 빼고 빼고 또 뺐다”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뺐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왔다. 지난해에도 그랬다. 두 해 연속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이제 역차별 당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다. 상 욕심내볼 만한 책의 저자나 번역자라면 이제 동아시아를 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그럼에도 여러 매체들이 꼽은, 올 한해 최대 화제작은 사회역학의 눈으로 우리 시대를 풀어 쓴 김승섭 고려대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으로 쏠리는 분위기다. 동아시아에서 나온 책이다. 개인적으론 너무나 참신하게 새 단장하고 나온 ‘핀치의 부리’, 잘 빠진 SF시나리오 같던 ‘맥스 테크마크의 라이프 3.0’ 같은 책들은 보고 또 봐도 예쁘다.

그러면 이쯤에서 왜 동아시아인가, 라는 질문도 한번 해봄직하다. 과학책은 본디 작은 시장이다. 과학책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올해 교보문고에서 과학책 판매 비중은 1.5% 정도다. 과학분야 베스트셀러 목록도 1, 2위는 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차지다. 신간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적다. “과학책은 2,000~3,000부 시장”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이 한계를 뚫은 동아시아 책의 흥행 원인은 늘 두 가지가 꼽힌다. 하나는 과학을 교양으로 풀어내는 접근법, 다른 하나는 중력파ㆍ인공지능(AI) 같은 핫한 주제를 선점하는 기동력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말을 좀 보태고 싶다. 우리 사회엔 ‘대가’가 있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큰 이슈가 터졌을 때 말로써 한번 말끔히 정리해줄 만한 전문가들. 우리는 그들에게 기꺼이 ‘대가’라는 이름을 바쳤고, 대가의 호칭을 받은 이들은 그 권위에 기대어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들 전문가들의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민주주의 전문가, 시장 전문가라는 이들은 늘 “너희들이 아직 민주주의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인데 말이야”, “너희들이 아직 시장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말이야”로 말문을 연다.

이에 반해 과학 전문가들은, 최소한 책에서 만난 저자들은 “너희들이 과학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인데 말이야”라고 시작하지 않는다. 대개 “나도 아직 사실 답을 잘 모르겠지만, 이런 게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아?”라며 시작한다. 따지고 보면 김승섭 교수의 책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몹시 불편하게 여길 수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여기저기서 모두 올해 최고의 책으로 추어올리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게다. 함께 머리를 맞대어보자는, 어떤 뉘앙스 말이다. 동아시아 출판사라는 어떤 현상이 있다면, 기획력ㆍ기동력 외에 읽어내야 할 부분 아닐까. 그런 태도, 자세야 말로 교양으로서의 과학이 줄 수 있는 진짜 효능이라고 믿는다. ‘대가’의 시대는 갔다. ‘대화’의 시대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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