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기고] 출판은 국가 기간산업이 되어야 한다

입력
2017.09.17 14:37
0 0

내년이 황금개띠해라면서 특집을 마련 중인 한 방송국에서 찾아와 ‘58년 개띠’가 어떻게 살아왔냐고 물었다. 잘 살아왔다. 가난해서 밥을 많이 굶긴 했지만 근대화로 인한 고도성장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개인의 삶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기나긴 독재 정권의 종말을 이끌어내는 데도 한 몫을 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공부를 조금만 더했더라면 좀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 세대는 자식들에게 공부를 유난히 강조했다.

그러나 그들의 자식 세대인 ‘82년 개띠’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고성장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케아 세대’로 지칭되는 ‘78년생’의 아픔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케아 세대는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 유학 등을 경험하는 등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았지만 2년을 주기로 이사 갈 때마다 버리고 가면 그만인 이케아 가구 취급을 받은 비정규직 세대이다. 심지어 이들은 꿈과 희망 따위를 모두 잃어버린 ‘N포 세대’로 불렸다.

‘이케아 세대 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의 저자 전영수는 “지금 이 순간 잘 사는 것”을 선택한 이케아 세대가 기성사회에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복수가 ‘결혼 포기’라 했다. 덕분인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 이들이 결혼뿐만 아니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식에게 해줄 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의 자식인 10대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구글이 곧 완성할 ‘구글 프린트’는 인류가 만든 모든 지식을 하나로 모아놓은 다음 인간의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해줄 태세다. 세계 석학들은 이미 “2011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의 65%는 대학졸업 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라거나 “앞으로 10년에서 20년 정도면 미국 고용자의 절반 가까이가 하고 있는 일이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언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할 10대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이미 일본은 2020년부터 사지선다형 대학입시인 ‘센터시험’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교육계에서 오랫동안 대립해왔던 ‘학력’과 ‘생각하는 힘’이라는 두 가치관 중에서 ‘생각하는 힘’을 선택하기 위한 유일한 걸림돌인 객관식 대학입시부터 없앴다. 이제 대량의 지식을 암기하고 그 기억의 옳고 그름으로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되기 않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힘’은 정답이 없는 문제나 미지의 상황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다.

센터시험을 폐지한 일본의 문부성이 앞으로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익혀야 할 지식으로 제시한 학력은 “과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여 일하는 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힘” “창의적인 사고력” 등 세 가지다. 이런 능력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다. 공독과 토론이 바로 학문의 요체다. 이런 학습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교과서가 아닌 다양한 교양서가 출간되어야 한다. 고성장이 이뤄지던 근대화 시기에는 독서가 신분 상승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면 인간이 인공지능이라는 비서를 끼고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는 읽기와 쓰기가 생존을 위한 가장 원초적인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어찌된 일이지 문재인 정부가 취임 100일 맞이해 임기 중 해내겠다고 약속한 100대 국정 과제에 출판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교사와 시인으로 살아온 이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아닌가. 그럼에도 출판을 울면 젖이나 주면서 달래면 그만인 마이너리티 산업 취급을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출판을 ‘여사님 산업’으로 취급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출판 억압정책으로 일관했다. 출판은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최고의 기간산업이 되어야 마땅하다. 저소득층이 당장 먹고 살도록 만드는 ‘기본소득’ 이상으로 출판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문재인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