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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외면하는 수사기관] 잘못 꿴 수사 첫 단추, 온 가족 19년을 앗아갔다

입력
2017.08.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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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

초동수사 부실해 교통사고사 단정

가족이 찾아낸 속옷 물증도 뭉개

공소시효 지나 범인 결국 무죄로

#2

이혼 앞두고 남편에 강간당한 30대

치욕 무릅쓰고 녹음해 당일 신고

신고 말린 경찰 탓 후속 수사 차질

"왜 더 적극 대처 못했을까" 자책

#3

경찰 직무태만에 징계 솜방망이

직무간 차별 등 조직 문제점 노출

“국가가 지켜줄 줄 알았는데 믿음 무너져”

1998년 일어난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 피해자 정은희씨의 아버지 정현조씨가 10일 오전 대구 중구 남산동 자택에서 가족들이 직접 증거물을 찾아 낸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대구=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1998년 일어난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 피해자 정은희씨의 아버지 정현조씨가 10일 오전 대구 중구 남산동 자택에서 가족들이 직접 증거물을 찾아 낸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대구=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꽃다운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 범인에 책임을 묻기 위한 19년에 걸친 싸움. 그리고 무죄 판결. 그러나 아버지는 결과를 예상했다는 듯 덤덤했다.

지난달 18일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998년 10월 17일 대구 계명대 1학년 정은희(당시 18세)씨를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특수강도강간)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A(51)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단순 교통사고라며 미적거리던 경찰의 초동 수사가 끝내 발목을 잡았다. 특수강간은 DNA 증거로 입증이 가능했지만 공소시효(10년)가 지났고, 공소시효가 15년이어서 기소가 가능했던 특수강도강간 혐의는 금품을 빼앗았다는 증거가 부족했다.

10일 대구 중구 자택에서 만난 은희씨의 아버지 정현조(69)씨는 5년 가까이 이어진 재판을 보면서 이미 체념했다고 했다. 그저 19년 전 그 때가 한스러울 뿐이었다. 사건 발생 6,800일이 넘었지만 정씨의 시계는 아직도 1998년 10월에 멈춰져 있었다. “그 때 왜 순진하게 ‘기다리세요’ 라는 경찰 말만 믿었을까, 그런 생각만 하면 딸한테 한 없이 미안합니다. 억울하고요.”

경찰이 잘못 꿴 첫 단추, 그것이 시작이었다

경찰은 집에서 7㎞ 떨어진 고속도로에서 숨진 은희씨를 처음부터 교통사고사로 단정했다. 트럭에 치여 사망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성폭행을 가리키는 정황들을 유족이 직접 찾아내 들이밀어도 이를 묵살한 경찰이었다.

사건 당일부터 정씨는 여러 경찰들로부터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라는 말을 들었다. 경찰과 함께 사고현장을 둘러보고 딸의 시신이 있는 병원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오후 사고현장을 찾아 간, 죽은 딸의 쌍둥이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30m 떨어진 지점에서 언니의 속옷(거들과 팬티)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디자인은 똑같고 색깔만 다른 속옷을 동생도 입고 있어서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죠. 그리고 시신을 봤더니 속옷을 입지 않고 있었습니다. 병원 사람들도 당황해 했습니다. 아 그냥 교통사고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어 부검을 하자고 했습니다.”

정씨가 알려 경찰은 다음날 현장에서 딸의 속옷을 수거했다. 딸의 시신을 부검한 경북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질 내에서 정액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속옷을 가져갔고 정액이 발견됐다는 의사의 말까지 있었으니 딸이 왜 죽었는지를 알 수 있겠구나 했죠. 의사로부터 정액 얘기를 같이 들었던 교통사고조사반 경찰도 ‘아버지 따님에 대해 걱정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하고 위로까지 했습니다.”

정씨는 딸을 화장한 뒤 이제 곧 경찰이 범인을 찾아낼 것으로 믿었다. 연락을 기다리는 정씨에게 경찰은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유족이 찾아 낸 증거 조차 무시해 버린 경찰

하지만 해가 바뀌어도 경찰에선 아무 답이 없었다. 대신 사고 당시 상황을 듣고자 찾아간 트럭 운전사의 집에서 ‘딸의 사망은 교통사고에 의한 것이었고,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사고여서 기사는 과실이 없다’는 경찰의 통지서를 봤다. “알고 보니 경찰은 이미 1998년 12월에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으로 사건을 종결했더군요. 그래 놓고 기다리라고만 했습니다. 딸의 속옷과 부검의가 말한 정액 검사는 어떻게 됐냐고 물었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말해 주는 경찰은 없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직접 대구ㆍ부산과학수사연구소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경찰이 맡긴 정액 조사는 없다는 답을 들었을 뿐이다. 항의하러 경찰서를 찾아갔더니 경찰이 꺼내 든 서류는 딸의 혈중 알코올 농도와 혈액형 조사 결과 통지서였다. 그런데 서류에 적힌 이름이 ‘정은희’가 아니라 ‘김은희’였다. 딸의 이름마저 엉뚱하게 적어 놓고 할 만큼 했다는 경찰을 보고 정씨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심지어 정씨는 경찰로부터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기가 막힌 말까지 들어야 했다.

19년 전 정은희씨가 숨진 채 발견된 현장은 현재 남대구IC 요금소로 변해 있다. 대구=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19년 전 정은희씨가 숨진 채 발견된 현장은 현재 남대구IC 요금소로 변해 있다. 대구=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믿었던 경찰의 어이없는 모습에 정씨는 사건을 맡았던 경찰 3명과 이들이 속한 달서경찰서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했고, 항고, 재항고, 헌법소원까지 냈다. 법정싸움을 이어 가던 2001년에 정씨는 그동안 경찰이 단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던 각종 수사기록을 보게 됐다. 3년이 지나 알게 된 경찰의 수사과정은 기가 막혔다. 경찰은 사건 다음해인 1999년에야 딸의 속옷 분석을 국과수에 의뢰했다. 검사 결과는 ‘(속옷이) 오염돼 정확한 혈액형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2000년 국과수에 두 번째 의뢰한 검사에선 신원을 알 수 없는 자의 정액 성분이 검출됐다. 또 부검의의 감정서는 7쪽짜리와 8쪽짜리 2가지가 존재했는데 검찰이 정씨에게 보여준 7쪽짜리 감정서에는 정액 내용이 없었다. 부검의가 “고속도로를 횡단한 점, 집의 반대 방향으로 가려 한 점, 혈중 알코올 농도가 0.13%로 운동에 크게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라는 점 등은 흔히 보는 보행자의 교통사고와는 다르다. 사고 전 신변에 중대한 위협을 받아 매우 긴박한 상황임을 암시해 준다”고 밝힌 점도 정씨는 비로소 알았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철석 같이 믿다가 뒤통수 맞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죠. 경찰이 딸이 성폭행 당했음을 보여 주는 단서들을 유족들에게 한 번도 알려 준 적 없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단순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이 아닐 수 있다는 여러 증거와 정황을 다 무시하고 결론을 밀어붙였다는 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뒤늦게 국과수에 검사를 의뢰한 것도 당시 몇몇 언론에서 딸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 보도가 나오니까 한 것이었어요. 게다가 경찰이 국과수에 넘긴 딸의 속옷이 검게 그을렸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어요. 분명 현장에서 경찰이 가져간 속옷은 멀쩡한 밝은 색이었는데 말이죠.”

정씨는 청와대, 법무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수십차례 ‘제대로 수사해 딸이 죽은 진짜 이유를 밝히게 해달라’는 탄원서ㆍ진정서를 냈다. 사고 트럭 운전사의 행방을 쫓고, 사고 전날 밤 딸과 함께 대학 축제 현장에 있었던 친구들을 만나 당시 상황을 들었다. 물론 수사기관이 해야 할 일이었다. “안타까운 심정은 알겠지만 이제 그만 하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석연치 않은 게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경찰, 검찰, 정부 아무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니.”

2013년 검찰이 스리랑카인 A씨를 구속 기소할 수 있었던 것은 A씨가 2011년 성매매 권유 혐의로 검거돼 수사당국이 그의 DNA를 확보했고, 2012년 대검과 국과수가 DNA 정보 공유를 시작한 덕분이었다. 공범 2명은 2001년, 2005년 불법 체류가 발각돼 스리랑카로 추방된 뒤였다.

경찰, 아직도 사과조차 없다

15년 만에 범인은 지목됐지만, 부검의가 의심했듯 은희씨 죽음과의 관련성을 확인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사건 발생 당시 담당 형사들이 왜 그토록 교통사고사에 집착하며 성폭행 수사에 소극적이었는지 그 이유는 밝혀진 것이 없다. 그저 관행적인 태만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사건 당시 달서서장, 담당 형사반장과 형사는 아무 징계도 받지 않은 채 2002년, 2006년, 2005년 순차적으로 경찰을 떠났다. 경찰 차원에서 이 사건에 대한 진상 파악이 이뤄진 적도 없다.

정씨는 딸 은희씨가 사망 직전까지 쓰던 침대를 지난해에야 치웠다. “쌍둥이 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제발 치우자고 했습니다. 저는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새 출발을 했으면 하는 딸의 바람이 강해 그러자고 했죠. 떠난 자식 못지않게 자라는 자식들(아들과 두 딸)도 소중한데 남은 가족들이 그만 자기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수사기관이 죽은 딸을 살아 돌아오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보다 더 괴로운 것은 풀리지 않은 억울함이다.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수사기관과 사법부로부터 외면당한 이들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느낌으로 평생을 회한 속에 산다. 정씨는 이제라도 경찰이 초동 수사의 미흡함을 인정하고, 딸의 죽음에서 남은 의문점을 풀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살인사건 피해자 아버지 정현조씨가 10일 오후 검찰이 범행 현장으로 지목한 대구 달서구 월성동 인근 굴다리 앞에 섰다. 그는 이곳이 실제 범행 현장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많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대구=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살인사건 피해자 아버지 정현조씨가 10일 오후 검찰이 범행 현장으로 지목한 대구 달서구 월성동 인근 굴다리 앞에 섰다. 그는 이곳이 실제 범행 현장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많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대구=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범죄 피해자가 자책감에 시달려야 하나

태만한 수사기관은 범죄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넣기도 한다. 이혼을 앞두고 별거 중 남편에게 강간을 당한 30대 여성 B씨는 “내가 왜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을까”하며 자신을 책망하고 있다.

B씨는 올봄 혼수 및 살림살이를 가지러 별거 중인 남편 C씨가 홀로 머무르는 집을 찾았다가 일을 당했다. 거구의 남편은 말다툼 도중 “이래야 널 잊을 수 있을 것 같다”며 B씨를 성폭행했다. 극도의 치욕감을 느낀 B씨가 “이건 명백한 범죄”라고 말하고 신고를 하려 했지만 C씨가 휴대폰을 빼앗아 이를 저지했고, 당시 상황이 B씨의 휴대폰에 고스란히 녹음됐다.

밖으로 나와 경찰에 신고한 B씨는 경찰의 반응에 더 당황했다. “경찰의 설명에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부부 사이라서 강간 입증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비친고죄이므로 한번 수사가 진행되면 멈출 수 없다’ ‘무고죄로 맞고소 당할 수 있으니 잘 생각해야 한다’ ‘남자들이 절대 그렇게 쉽게 성폭행범으로 몰리지 않는다’ ‘치열한 법적 공방을 치를 거다’ 등등이요.”

어안이 벙벙해진 B씨는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잘못된 행동은 꼭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아는 변호사에게 문자로 자문을 구했고 당장 원스톱센터를 찾아 증거 채취부터 하라는 조언에 다음날 새벽 병원으로 향했다. 증거채취부터 변호사 자문, 신고 접수 등을 모두 홀로 해야 했던 것. 며칠 후 사건을 재차 신고한 후 C씨가 강간 혐의로 출석조사를 받은 것은 2주일도 더 지나서였다. 그 사이 C씨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다행히 C씨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B씨는 검찰 조사에서 “정말 강간을 당한 게 맞다면, 왜 당일에 바로 신고하지 않고 며칠이 걸렸냐, 이상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으면서, 뭔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즉시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억울한 피해자가 아닐 거라고 의심하는 거죠. 저는 피해 순간 자체도 끔찍한데, 자책까지 끊임없이 하게 돼요. 왜 현장조사를 해 달라 하지 않았을까, 왜 가해자 조사를 요구하지 않았을까, 이러다 처벌은 물 건너 가는 게 아닌가…. 신고와 접수 과정이 그렇게 중요한 국면이었다면 국가의 도움 없이 왜 모든 걸 나 혼자 고민하고 결정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첫 신고 당시 B씨를 만났던 경찰관은 “순찰차 안에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고 신고와 증거채취 절차에 대한 안내를 했다”며 “비친고죄이긴 하지만 생판 모르는 남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 만큼, 피해자가 명확히 처벌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적 개입이나 (가해자 면담, 현장조사 등) 추가 조사를 진행하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B씨는 말했다. “범죄 피해를 입으면 당연히 국가에서, 수사기관에서 나를 도와줄 거라고 믿었는데, 사실 여러 단계에서 그 믿음이 무너졌어요. 하지만 정부 시스템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국선변호사가 국가에 대한 일종의 마지막 기대 같은 겁니다.”

대구=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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