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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반도체 착시

입력
2017.10.0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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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인식에도 늘 착각과 오해가 작용한다. 경기변동에 관한 교과서 설명에도 착각이 거의 상수처럼 등장할 정도다. 경기가 호황을 타면 낙관이 만연한다. 기업가는 경기 확장을 기대하며 시설을 늘리고, 가계는 소득이 늘어나리라는 기대 속에서 씀씀이가 헤퍼진다. 돈이 흔해 너도 나도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나서면서 주가와 집값에도 거품이 끼게 마련이다. 이런 기대감은 경기가 절정에 달해도 결코 식지 않는다. 하지만 호경기가 끝없이 계속되리라는 이런 낙관이야말로 전형적 착각과 오해일 뿐이다.

▦ 착각과 오해는 과잉을 낳는다. 설비를 너무 많이 늘린 기업가는 어느 날 미처 팔리지 않은 재고가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걸 발견한다. 가계도 늘어난 빚이 갑자기 부담스러워진다. 투자자들은 너무 오른 주가와 집값이 크게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휩싸인다. 숨어 있던 과잉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잉 때문에 경기는 점점 나빠져 마침내 불황에 이르게 된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과잉을 낳는 이런 착각과 오해를 종종 ‘비이성적 과열’로 표현했다.

▦ 착각과 오해, 그리고 비이성적 과열보다 심각한 경제 인식의 오류 상태를 ‘광기(Mannias)’로 표현한 사람이 있다. 고전적 저술인 <광기, 패닉, 붕괴-금융위기의 역사>(굿모닝북스 발행)를 쓴 미국 경제학자 찰스 P. 킨들버거다. 그는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나 1929년 대공황 과정에서 튤립 알뿌리와 미국 주가를 천정부지로 끌어올렸던 투자자들의 근거 없는 집단적 낙관을 광기로 봤다. 그리고 그 광기의 끝에 ‘패닉(Panics)’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결국 금융시장이 ‘붕괴(Crashes)’하는 공황의 모델을 창안했다.

▦ 착각과 광기의 뿌리엔 판단을 흐리는 착시가 있다. 경제지표 아홉 개가 엉망이고 단 한 개만 괜찮아도 사람들은 그 한 개의 착시에 매달려 모든 게 괜찮을 것이라는 낙관을 만들어낸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 전후의 반도체 호황이 곪아터진 경제의 실상에 착시를 일으킨 끝에 97년 경제위기를 부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지난 9월 실적을 포함해 최근 반도체 슈퍼호황으로 우리 수출이 연일 기록을 갱신하면서 다시금 ‘반도체 착시’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의 내용이 97년 못지않게 위태롭다는 경고인 셈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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