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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꾸는 연습생, ‘가학’을 견뎌라?

입력
2017.04.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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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101 시즌2' 제작발표회 현장. Mnet 제공
'프로듀스101 시즌2' 제작발표회 현장. Mnet 제공

작년 ‘프로듀스 101’이 처음 방영 됐을 때, 퍽이나 충격적이었다.

백 명이 넘는 여자 아이들이 짧은 교복치마를 입고 삼각형 대형으로 서서 ‘픽 미’를 부르는 장면은 ‘장관’이라 해야 할지, ‘기이한 광경’이라 해야 할지, ‘변태스러움의 절정’이라 해야 할지 헷갈렸다.

노래 제목도 하필 ‘픽 미’라니, 여자 애들을 진열대 위에 세워 놓고 ‘나를 골라 줘’라고 외치는 걸 보고 있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정말 무섭다. 처음 그 낯설고 기이했던 느낌이 지금은 없어져 버렸다.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란 구호 아래 걸그룹 아이오아이로 뽑히기까지의 스토리와 캐릭터들 하나하나에 감정이입을 하고, 응원을 하고, 관심을 보내다 보니 지금 프로듀스 101 시즌1의 첫 회를 다시 보면 그때의 낯선 느낌은 다 없어지고 ‘어, 쟤가 처음엔 저런 모습으로 화면에 잡혔군’이라고 재미나게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그 똑 같은 과정을, 이제 남자 아이돌로 성별만 바꿔서 또 한 번 진행하고 있다. 바로 ‘프로듀스 101 시즌2’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비교적 재미있게 보고 있는 시청자임에도 불구하고, 찬사를 늘어 놓고 싶지는 않다. 시즌1과 시즌2의 공통 단어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가학’이라고 할 것이다.

아이돌 연습생을 노골적으로 상품으로 만들어서 투표하게 만드는 것, 그 사이사이에 어린 연습생들의 욕망을 여과 없이 방송하거나 누구 한 명을 바보 만드는 ‘악마의 편집’이 들어가고, 출연자들의 진짜 실력을 가리기 위한 장치라며 연습생들을 극한까지 몰아 넣는 미션이 이어진다.

이렇게 실력이 짱짱해 보이는데도 아직 데뷔조차 하지 못한 현실, 그래도 끝 없이 도전하는 꿈과 좌절감, 그 안에서 힘든 과정을 겪으며 성장하는 드라마 같은 진지한 부분은 오히려 양념처럼 느껴진다.

‘프로듀스 101’의 진짜 핵심은 ‘국민 프로듀서님’ 운운하며 시청자를 띄워 주면서 마치 시청자 하나하나가 “저 아이는 내가 키웠어”라는 전지전능한 듯한 우월감을 주는 것 아닌가 싶다. 처음 ‘슈터스타 케이’에서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하며 느꼈던 짜릿함이 엇비슷한 프로그램이 난립하면서 희석되니까 이번엔 아예 화끈하게 직접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킬 멤버를 뽑는 것이다.

특정 기획사의 연습생 중 데뷔시킬 원석을 시청자가 가려내는 ‘위너’나 ‘식스틴’ 같은 프로그램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예 크고 작은 기획사들에서 쏟아져 나온 연습생들 사이에서 골라 내는, 어찌 보면 ‘아이돌 올림픽’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드니까 더 짜릿하다. 그렇게 해서 엠넷이 얻는 것은? 물론 시청률과 화제성, 그리고 ‘국민 프로듀서님’이 투표할 때마다 벌어들이는 돈 아닐까(시즌2는 두 가지 채널을 통해 중복 투표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짜릿한 ‘쇼’ 안에서 과연 연습생들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착잡한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연자들의 숙소 생활 영상. m net 영상 캡처.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연자들의 숙소 생활 영상. m net 영상 캡처.

시즌1의 전소미, 김세정, 최유정 등의 연습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기존 인기 아이돌 못지않은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내가 직접 뽑았다’라는 느낌이 들어가서 그런가. 분명 다른 아이돌과 차별화되는 애정과 감정이입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처럼 달콤한 열매를 얻어가는 건 출연자 중 10%가 채 안 되는 일부에 불과하다. 프로그램 안에서 ‘꿈을 꾸는 소년(소녀)들’이 견뎌내야 하는 가학적인 상황에 대해 때론 죄책감마저 들 정도다.

심사위원 평가에 의해 소고기 등급 나누듯 A, B, C, D, F 알파벳을 붙이고, 등급별로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등급별로 적나라한 표정을 보여주는 것이 ‘프로듀스 101’의 초반부 하이라이트다. 여기에 매 순간 한계까지 쥐어짜내야 하는 치열한 경쟁과 그룹 미션에서 ‘평균치 논란’이 나올 정도로 이게 대체 명확하고 공정한 기준이 맞는지 어리둥절한 상황들이 이어져서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프로듀스 101 시즌2’의 ‘화제 인물’인 ‘힙통령’ 장문복도 어찌 보면 7년 전 ‘슈스케’에서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개그 캐릭터로 포장돼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힘겹게 보냈다. 이 역시 방송사가 저지른 일종의 ‘가학’ 아닌가.

또 한 가지. 하필 이 시점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혼술남녀(tvN)’ 전 조연출의 자살 사건이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오버랩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조연출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해당 PD는 계약직들을 혹독하게 관리해야 했고, 상사들에게 폭언을 들어야 했다. 힘 없는 계약직들에게 ‘가학’을 행해야 했고, 사내에선 가장 힘 없는 막내로 ‘피학’ 당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프로듀스 101’을 보면서 그 사건이 떠오르는 건 두 프로그램이 모두 CJ E&M 계열사의 것이기 때문이다. 왜 인기 서바이벌 프로그램 내용도, 그리고 재미있고 신선했던 드라마의 제작진도, 모두가 이렇게 가학적인 상황일까. 비단 해당 회사만의 문제인가. 지상파건, 케이블이건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어느 방송사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가학’ 수치는 점점 높아지는 느낌이고, 억지스럽게 광고를 늘리고 PPL을 늘리느라 혈안이 된 분위기다.

누군가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가학적인 상황들이 ‘꿈을 꾸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로 포장되는 것도 착잡하다. 차라리 안 봐야 하는데, 리모컨을 들면 슬그머니 그쪽으로 채널을 돌리게 되는 상황도 죄책감이 든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방송사의 기획에 신나게 장단을 맞추고 그 이면의 이야기에는 1도 관심이 없던 시청자, 바로 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느껴진다. 왜 스트레스 풀려고 보는 쇼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를 보면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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