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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아...언젠가는 만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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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아...언젠가는 만나게 되지"

입력
2018.05.04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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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 작가. 문학동네 제공
정용준 작가. 문학동네 제공

바다에서 실종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은 누구일까. 소설가 정용준(37)에겐 프랑스 작가이자 평생 비행을 앓은 비행사, 생텍쥐페리다. 1944년 7월 31일 정찰 비행 중 지중해 상공에서 그는 사라졌다. 생텍쥐베리의 ‘야간비행’ 종착지는 그래서 바다 깊은 곳일까, 아니면 천국일까.

정 작가의 장편소설 ‘프롬 토니오’(문학동네)에서 생텍쥐베리는 시간과 죽음을 건너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1997년 착륙한 곳은 포르투갈 화산섬 마데이라. 거대한 흰수염고래가 해변에 토해낸 괴이한 생명체가 생텍쥐베리다. 토니오(Tonnio)는 생명체가 기억해낸 자신의 이름이다. 그가 생텍쥐베리라는 건 이야기가 출발하고 한참 지나 밝혀진다(앙트완 마리 로저 드 생텍쥐베리가 본디 이름이다).

토니오는 땅에 발을 디딘 순간 급속도로 늙기 시작한다. 1900년생인 그가 97세 노인이 될 때까지. 53년의 시간과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영혼은 바로 그 곳에 머문다네. 그리고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토니오의 영혼이 지나온 곳은 바다 속의 바다, ‘유토’다. 태초의 신들이 창조한 세계, 고래가 지키는 아름다운 세계, 황금빛 신령한 물인 신수가 하늘이자 바다인 세계, 지상의 자연 법칙에 구속 받지 않는 세계. 유토를 그리는 정 작가의 묘사는 착실하고도 태연해서 이내 그 실재함을 설득 당한다. 이승우 작가는 추천사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엄연한 있음을 사유하게 하는 것이 소설임을 알게 된다”고 했다.

이름은 따왔지만 유토는 ‘유토피아’의 전형과는 다른 곳이다. 고통, 욕망, 미움, 쇠락, 죽음이 없는 유토는 무덤 같은 권태의 세계다. “이 세계는 완전무결하기에 모험도 충동도 위험하고 어리석은 기쁨도 없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아름답고 위태로운 감정은 사라지고 우정이라는 안전한 감정만 존재하는 평등하고 밋밋한 세계.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의미하게 남겨질 거라는 예감은 어떤 초월적 고통을 준다.” 정 작가는 3일 전화통화에서 “유토가 무책임하게 아름답기를 바라지 않았다”며 “내세가 이 세계를 닮아 있되 보다 좋은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토니오는 안온한 유토를 끝내 탈출한다. 연인 콘수엘라를 찾아서다. 토니오를 움직이게 한 건 끓어오르는 사랑이 아닌 그리움의 통증이다. 그는 사랑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회한을 견딜 수 없다. 누군가를 잃으면 잘못한 일들만 떠올라 괴로운 것처럼. 콘수엘라는 생텍쥐베리의 실제 부인이자 마지막 연인이다. “나는 토니오의 심장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 콘수엘라는 소설 안에서도 밖에서도 토니오를 그리워한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콘수엘라가 기다리는 프랑스 남부 그라스로의 여정이다. 저마다 이별의 상처를 지닌 미국 화산학자 시몬과 일본 지진학자 데쓰로가 토니오를 돕는다.

프롬 토니오

정용준 지음

문학동네 발행∙344쪽∙1만3,800원

시몬은 연인 앨런을 바다에 빼앗겼다. 토니오는 앨런의 죽음에 절망하는 시몬을 위해 바다 밑바닥에 ‘사는’ 앨런의 영혼을 만나고 돌아온다. “몸이란, 또 삶이란 영혼을 보존하기 위한 보조물에 불과하지.” 앨런이 존재함의 증거로 토니오에 들려 보낸 녹슨 은팔찌는 1998년 바다 깊은 곳에서 발견된 생텍쥐베리 팔찌의 오마쥬다.

앨런의 독백. “내 몸은 부패합니다. 가스가 차고 살점이 떨어지고 밖으로 나온 내장이 해초처럼 흔들립니다. 물고기들이 내 곁을 맴돕니다. 벗겨진 피부를 먹고 부패한 살점을 뜯고 내장을 헤집습니다. 어쩐지 나는 그것이 좋습니다. 물결에 흔들리며 조금씩 살점이 사라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드는 몸의 부피.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정 작가가 소설을 연재한 건 2016년, 세월호의 상처에서 쓰린 피가 흐를 때였다. 물에 잠긴 이들이 사라진 건 아니라는, 간절히 찾는다면 언젠가 만날 수밖에 없다는 위로를 앨런의 목소리에 담았다. 소설은 2009년 등단한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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