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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외유성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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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외유성 출장

입력
2018.04.16 17: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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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걸 봐도 보는 사람의 입장이나 내공에 따라 보이는 건 다를 것이다. 중국 양나라 혜왕은 입만 열면 인의(仁義)를 내세우며 고매한 척하는 맹자가 내심 고까웠다. 그래서 어느 날 기러기와 사슴이 노니는 정원의 아름다운 연못에서 맹자를 만나자 슬쩍 비꼰다. “현자께서도 이런 걸(감각의 사치) 즐기십니까?(賢者亦樂此乎)” 그러자 혜왕의 치기를 짐작한 맹자가 웃으며 답한다. “현자나 돼야 이런 걸 즐기지, 그렇지 못하면 아름다움이 있어도 즐기지 못하는 겁니다.(賢者而後樂此, 不賢者雖有此不樂也)”

▦ 요즘 말로 치면 왕이 “현자께서 이런 아름다운 경치나 보면서 놀러 다니면 되겠습니까”하고 비꼬자, 맹자가 “당신처럼 무식한 자는 경치 속에서 슬렁슬렁 놀 뿐이지만, 나 같은 현자는 더 심오한 걸 보고 즐긴다”고 받아친 것이다.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높은 안목까지는 아니라도, 그럴만한 사람에겐 노는 것처럼 보이는 여행도 공부가 된다. ‘수학여행’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국회의원이든 공직자든 자주 외국에 나가 견문을 넓히는 게 공익적으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그런데 언제부턴가 ‘해외출장’이 파렴치로 몰리기 시작했다. 공직자들이 해외출장이랍시고 나가 ‘놀자판’ 관광여행이나 하고 온다는 비난이 높아졌다. 기왕 해외에 나갔으니 출장 목적 외에 현지 사람들 사는 모습도 살펴보고, 근처 좋은 관광지를 둘러보는 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놀아도 공직자로서 뭔가 깨우치고 배우는 게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지 관광 같은 일정은 개인 경비로 부담하는 게 마땅한데 두루뭉술하게 ‘노는 일정’까지 나랏돈을 썼으니 욕을 먹게 된 것이다.

▦ 문제는 무분별한 ‘관광출장’이 그렇지 않은 해외출장이나 연수까지 아예 백안시하는 풍토를 낳았다는 것이다. 요즘 논란인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같은 이가 극단적이었다. 그는 의원 시절 기업 후원으로 해외출장을 간 공직자에게 “기업 돈으로 출장 가서 먹고, 자고 하는 게 정당하냐”며 막무가내로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그런 다그침이 결국 사회적 기여의 한 방식 정도로 용인될 수도 있었던 기업의 각종 견학성 해외출장이나 연수 후원을 말살시켜 버렸다. 일말의 양해조차 없이 바른생활만 강조했던 이가 정작 본인은 여기저기 ‘관광출장’을 마다 않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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